공간·가구·예술… 경계를 넘어 시퀀스를 만드는 프로젝트 디렉터, 시몬 조

단정함과 균형감을 기반으로 공간의 시퀀스를 만들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는 말했다. '위대한 일을 이루기 위해선 단지 행동할 뿐 아니라 꿈꾸어야 하고, 계획할 뿐 아니라 믿어야 한다'라고. 누구나 한 번쯤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새로운 길로 나아갈 필요성을 느낄 때가 있다. 프로젝트 디렉터 시몬 조(조남인)는 10년 넘게 익숙해진 자신의 일을 딛고, 공간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들였다. 단정함과 균형감 두 가지 요소를 기반으로 남들과는 다른 고유한 디자인 언어를 정립해 나가는 그를 업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소개한다. 그는 지금도 자신을 한정된 영역에 가두지 않고 시각 예술을 향해 또 한 번 경계를 넘을 준비를 하고 있다. 계속해서 시도하는 이에겐 새로운 길이 열리기 마련일 테다.

공간·가구·예술… 경계를 넘어 시퀀스를 만드는 프로젝트 디렉터, 시몬 조

Interview

시몬 조(조남인) 프로젝트 디렉터

시몬 조 프로젝트 디렉터

경계를 넘나드는 디렉터가 되기까지 : or이 아닌 and

디렉터님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려요.

저는 지금 서울을 기반으로 공간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고, 프로젝트에 따라 가구 디자인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에 다니면서 시각 예술 쪽으로 작업을 조금씩 진행 중이에요. 저는 모든 디자인을 할 때 ‘공간이나 가구를 디자인한다’라는 개념보다도 연출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디자이너’라는 호칭보다는 ‘프로젝트 디렉터’라는 호칭으로 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공간과 가구, 시각적인 모든 부분의 시퀀스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Spatial design : Simone Cho (조남인)
Photography : Son Mihyun (손미현)
디렉터님은 이제 막 고유한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업계의 샛별입니다. 그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사실 원래 커피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사람이었어요. 개인 커피 브랜드가 있었고, 한 10년 정도를 커피만 했으니 20대를 거기에 모두 다 받친 셈이죠. 그러다 어떠한 계기로 나의 영역을 더 확장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때가 있었어요. 그때 마침 더 퍼스트 펭귄에서 채용 공고가 올라온 걸 보게 됐고, 내 삶의 전환점이 되어줄 큰 기회라고 생각해 지원을 됐었죠. 그 당시 더 퍼스트 펭귄의 최재영 대표님과는 안면이 있던 사이였던 터라 제가 지원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나중에 말씀해 주시더라고요.(웃음) 사람 일은 참 신기한 게 그 당시 더 퍼스트 펭귄에 카페 프로젝트 의뢰가 빗발치던 때였고, 바의 높이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음료를 만들기 위해선 동선이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 등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하더라고요. 타이밍이 정말 좋았던 거죠. 운이 좋게도 더 퍼스트 펭귄에 합류하게 됐고 저의 경력을 배경 삼아 공간 디자인이라는 영역에 발을 들인 진짜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거죠. 그때 처음 프로젝트 디렉터라는 직함을 받았고, 제가 이 업계에 발을 들이면서 받은 첫 직함이었던 터라 이 타이틀을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후 회사로부터 독립해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공간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이하 파티)*을 다니게 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제가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내면에서는 여러 갈등이 있었어요. 전문 지식이나 배움이 더 필요하다는…. 그러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저와 협업하거나 제가 좋아하는 디자이너님들을 보면 모두 파티 출신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다른 예술대학이나 유학까지도 넓게 고민했던 저에게 파티는 그들만이 가진 자유로움이라고 할까요? 경계가 없는 학교라는 점이 크게 와닿았어요. 저라는 사람 자체가 보이지 않는 영역의 경계를 뛰어넘어 공간 디자인, 디렉팅을 시작했다 보니 결이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디자인 필드에 나와서 활동하는 분들 중에 ‘어, 이분 작업 되게 특이하네’ 생각한 분들은 모두 파티 출신이었다는 점 또한 미루어 봤을 때 파티만이 가지고 있는 힘이 분명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대외적으로는 파주타이포그래피배곳이라는 말을 쓰지만 학생들끼리는 그냥 시각예술 학교라고 부르고 있어요.

*파티(PaTi)는 한글꼴 ‘안상수체’로 잘 알려진,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안상수와 새로운 디자인 교육을 꿈꾸는 조합원 60여 명이 함께 만든 배곳(학교)이자 협동조합. 디자이너, 화가, 영화인 등 다양한 각계 예술 분야의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에 힘입어 시작한 대학 과정의 비인가 독립학교로, 파주출판도시에 자리 잡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는 10년 차 디자인 배곳.

지금 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작품도 그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걸까요?

작년 가을 학기에 만든 작품인데 한국적인 것과 ‘나’라는 인물을 연결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수업이 있었어요. 작품을 고민하다가 ‘도장’이라는 매개체를 떠올리게 됐어요. 한국에서는 이 도장이 한 사람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도장, 낙관, 인장 등 무언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이 도장이라고 생각했고 제가 회사에서 독립한 후 첫 프로젝트 계약을 맺을 때 계약서에 도장을 찍잖아요. 그때 뭐랄까 굉장히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요. 도장을 찍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의미와 도장을 찍음으로써 따라오는 큰 사회적 책임감 같은 것들이 스쳐 가더라고요. 이러한 한국 도장 문화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 이 도장이라는 매개체에 저라는 사람을 나타낼 수 있는 속성 9가지를 새겨서 ‘Simone’s Symbols’라는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죠.

디렉터님의 영역이 ‘or’이 아닌 공간과 가구 그리고 시각 예술까지 ‘and’의 개념으로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는 셈이네요.

맞아요. 신(Scene)이 바뀐다거나 공간 혹은 시각 예술이 아니니까요. 세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and’의 개념을 향해 점진적으로 확장을 해가는 거예요. 세계관을 구축하고 넓히는 방향으로 가고 있죠. 이러한 과정이 비전공자인 저에게 큰 도움이 되어줄 거라 생각하고요.

현재 전개하고 있는 작업들도 일반 공간 디자이너의 영역과는 사뭇 달라서일까요. 디자이너라는 직함 대신 디렉터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어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요.

제가 하는 일의 영역이 디자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공간을 완성하기 위해 가구, 집기, 무드 등 다양한 걸 디렉팅하고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라는 명칭 대신 디렉터라 불리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것도 그렇고 제가 디자이너로 불리는 게 아직은 스스로가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고요.

Space design : Simone Cho (조남인)
Photography : Jin YooJeong (진유정)
Space design : Simone Cho (조남인)
Photography : Son Mihyun (손미현)
공간 디자인 이외 영역에 대한 디렉팅은 가령 어떤 작업들이 있을까요?

만약 공간에 그래픽이 필요하다면 톤앤무드가 맞는 그래픽 디자이너를 찾아서 함께 작업을 하고, 식물 큐레이팅이 어울릴 것 같은 공간에는 클라이언트를 설득해 감도 있는 식물을 잘 소개하는 분을 데려오고, 음악이나 유니폼도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하는 거죠. 다만, 공간에 들어가는 이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의 손길로 완성된 것처럼 일관된 톤을 유지하는 게 디렉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클라이언트에게 어울리도록 테일러링을 하고 연출을 하는 일이 제 일인 건데,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건 사실 클라이언트가 저를 온전히 믿어주셔야 가능한 부분이잖아요.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함께 했던 클라이언트분들은 제 작업을 알아봐 주고 연락 주신 분들이 대부분이라 정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모두 다 디렉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단정함과 균형감으로 채워진 무드 보드

Spatial & Furniture design : Simone Cho (조남인)
Photography : Son Mihyun (손미현)
작업하신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디렉터님 특유의 무드가 묻어나는 걸 느껴요. 지향하는 공간의 무드나 공간적 톤 앤 매너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느낌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단정함이에요. 정확하게 표현하긴 어렵지만 일단 단정해야 해요. 무채색을 써서 색의 단정함을 찾는 것이 아닌, 형태적 단정함도 있을 테고 높이, 소재 등이 주는 단정함이 있겠죠. 이러한 요소들이 한 공간에 묶였을 때 느껴지는 단정함의 무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단정함의 상위 개념으로는 균형감이 있고요. 이 또한 비율적으로 대칭이 되는 균형감이 아닌 각각의 구성 요소가 자신의 자리에 잘 들어가 있다는 안정감에 가까운 것을 의미해요. 제가 균형감을 선호하는 이유는 너무 뻔한 명언일 수 있지만 알바 알토(Alva Alto)라는 건축가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어요. ‘아름다움은 기능과 형식의 균형에서 온다’고요. 저 같은 경우는 공간에 강한 컬러를 사용했다면, 이를 살짝 눌러줄 수 있는 소재를 가까이에 두어 중화를 시킨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균형감을 맞추려 하죠.

지금까지 카페, 오피스, 쇼룸, 주거 공간 등 다양한 공간의 디렉팅 작업을 진행하셨잖아요. 남들과는 다른 디렉터님만의 한 끗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술을 먹고 밤에 일한다?(웃음) 농담이고요. 저는 채우는 것보단 덜어내려고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앞의 대답과 이어지는 내용인데 단정함과 균형감을 큰 축으로 두되 너무 많은 디테일을 넣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단순화된 걸 좋아하는 편이죠.

Spatial design : Simone Cho (조남인)
Photography : Son Mihyun (손미현)
디렉터님의 결과물을 보다 보면 공통적으로 눈에 띄는 것이 있어요. ‘아연’ 소재를 자주 사용하시더라고요.

맞아요. 아연이 주는 고유한 느낌을 좋아해서 공간에 자주 사용하는 편이에요. 뭐랄까요. 금속인데도 먹먹한 느낌이 좋아요. 불투명 금속 같은 느낌이잖아요. 그런데 햇빛을 받으면 또 빛을 또 잘 먹어서 빛이 나기도 하고요. 다만 용접을 하면 소재가 타는 현상이 있다거나, 물에 약하다는 특징이 있어 가공이나 관리가 쉽지 않은 타입이고요. 하지만 이 소재의 양면성이 자꾸 저를 사로잡는 것 같아요. 분명히 차가운 성질인데 단정하고 따뜻한 느낌. 따뜻해 보이고 예뻐 보이는데 엄청 예민한 느낌이죠. 스테인리스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매력을 가지고 있죠. 이러한 특징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의뢰인과 창작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탄생한 결과물

여러 클라이언트와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계시잖아요. 최상의 결과물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있다면요?

대부분의 클라이언트가 첫 미팅에서 공간을 어떻게 완성하고 싶은지 말씀을 하세요. 그러면 저는 그걸 듣고 여러 가지를 고려해 역제안을 드리고요. 아주 필요한 요소는 살려서 가되 추가적으로 공간적인 부분에서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제안 드리죠. 처음에는 공간에 대한 전방위적인 큰 방향성을 얘기하면서 공통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을 추출하고, 그 과정에서 이 공간에 어울리는 명사나 부사 같은 단어를 추출해요. 뉘앙스적인 부분들의 조합이라고 할까요? 디저트로 예를 들면, 하얀 필링이 채워진 타르트만 놓여 있으면 이게 무슨 맛인지 가늠하기 어렵잖아요. 하지만 그 위에 레몬 필을 살짝 뿌리면 재료를 통해 레몬 타르트라는 걸 알기 쉽듯 제가 공간에 녹여내고자 하는 느낌의 뉘앙스가 스치듯 지나가는 표현을 공유하려 하는 편이에요. 구상하는 것들의 정확한 레퍼런스를 제시하는 게 아닌, 제가 생각하는 비슷한 공간 무드가 담긴 이미지를 여러 장 보여드리는 거죠. 클라이언트가 저에게 레퍼런스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도, 반대로 제가 레퍼런스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도 그리 즐겨하지 않는 일이에요. 디자인이면 디자인, 테이블이면 테이블, 조명이면 조명 각 역할과 위치 그리고 어떤 무드를 완성할 수 있는지 방향성을 참고할 수 있는 정도로만 공유하는 거죠.

최근 삼성전자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협업 부스 디렉팅을 담당하셨었죠. 어떤 프로젝트였나요?

해당 프로젝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최한 행사로 삼성전자와 AI칩이 탑재된 갤럭시 노트북 프로를 출시하면서 선보인 VIP,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진행된 콜라보 팝업이었어요. 이번 행사의 공간 PM으로 참여해 전체 공간과 체험 부스를 디자인했어요. 해당 작업에는 브랜드 쿼터백을 운영하는 이규빈 디자이너님과 함께했고요. 사람들이 직접 노트북을 사용하고 체험하는 체험 부스가 메인 공간이었는데 원래는 사전에 두 가지 디자인을 제안했었어요. 이날의 주인공이었던 신제품의 소재가 제가 즐겨 쓰는 아연과 흡사한 알루미늄 아노다이징인만큼 체험부스 디자인을 아연 소재로 만드는 1안과 금속 프레임 골조 2안으로 제안 드렸는데 2안에서 컬러가 조금 더 들어가는 방향으로 진행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셔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상징 컬러를 체험 부스의 골조에 입혔었죠.

제가 디렉터님의 작업을 처음 접한 건 최혜진 편집장님의 아장스망 오피스 프로젝트를 통해서였어요. 디렉터님께도 이 프로젝트가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요.

아장스망 같은 경우는 정말 너무 즐겁게 작업했던 프로젝트였어요. 처음에 편집장님께서 친한 지인을 통해 먼저 연락을 주셨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 사무실 이미지를 보고 오피스 작업을 저에게 의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시더라고요. ‘이런 공간 있으면 나도 글 잘 써질 것 같아!’라고 생각하셨대요.(웃음)

Space design : Simone Cho (조남인)
Photography : Jin YooJeong (진유정)
정말 디렉터님의 오피스 공간처럼 완성됐나요?(웃음) 어떤 과정을 통해 공간이 완성됐는지 궁금해요.

편집장님이 원하는 니즈는 크게 세 가지였어요. 가장 크게는 저의 사무실과 같은 무드의 공간을 원하셨고, 그다음으로는 정말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원하셨어요. 그렇지만 너무 작업실 같은 느낌보다는 개더링을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를 바랐고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 편집장님, 즉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느껴지는 공간이라는 거를 잘 표현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편집장님과 한창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바로 도시 ‘코펜하겐’을 좋아한다는 거였어요. 2년 전에 다녀온 코펜하겐은 저에게 가히 충격적이었거든요. 각 나라마다 자신만의 결이 있지만, 코펜하겐은 자신들만의 방법론으로 색을 참 잘 쓴다고 생각하는데 편집장님도 코펜하겐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서 우리의 공통점이 여기에 있었구나! 깨달았죠. 사실 편집장님이 마음에 들어 하셨던 제 사무실도 코펜하겐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공간이었거든요. 그래서 아장스망 작업이 다른 작업들보다도 더 즐거웠는지도 모르겠어요. 원래는 스타일링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프로젝트였는데, 아무리 봐도 해당 공간이 스타일링만으로는 원하는 느낌을 내는 게 어려울 것 같아 공간적 변화가 전반적으로 필요하다는 설득을 드리게 되었죠. 뿐만 아니라 편집장님이 그림책 번역도 자주 하시는데 거기서 모티브를 얻어 약간의 리듬감을 주고자 했어요. 블라인드 컬러를 다르게 쓴다든지, 서랍장 컬러만 따로 포인트를 준다든지 등의 방법으로요. 주방에 두어야 할 기물도 무드에 맞춰 제가 어떤 걸로 구매해야 할지 다 알려드렸고요.

카페 프리힐리, 아장스망 등에 들어간 조명도 직접 디자인하신 거라고요.

예전에 쿼츠 커피라는 커피숍 작업할 때 처음 만든 조명인데요. 벽 거치형 조명으로 처마 같은 느낌으로 떨어지면 좋겠더라고요. 아연 소재랑 불투명 유리를 사용한 공간의 무드를 받쳐주면서 해치지 않는 디자인으로 완성한 조명이에요.

머지(MERGE) 쇼룸 작업의 경우 가구의 색채가 두드러지거나, 조형미가 두드러지는 형태로 완성했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원했던 방향과 디렉터님의 의도한 방향은 무엇이었나요?

머지 대표님이 시각디자인 출신인데 머지와 무드가 어울리는 가구를 만들고 싶어 하셨어요. 브랜드 자체 상품들이 워낙 조형적이고 푹신푹신해서 이들과 어울릴 딱딱한 조형을 만들자는 것이 포인트였죠. 유리와 금속 소재의 조화를 떠올렸고, 컬러를 조금 낮은 채도로 바꿀까 생각도 하다가 색을 쓰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오히려 색을 더 재미있게 쓰는 것도 방법이겠다고 생각했고요.

Space design : Simone Cho (조남인)
Photography : Jin YooJeong (진유정)
아연에 이어 반투명 유리도 공간 재료로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맞아요. 보일 듯 말 듯한 그 묘한 느낌이 좋은데 창작을 하는 과정이랑 되게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처음에는 그림이 뚜렷하지 않은 채로 스케치를 해 나가다가 점점 선명도가 올라오듯이 이 반투명 유리도 그런 매력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한국적이기도 하고요. 과거에는 중전마마와 궁녀 사이에 발이 있어서 얼굴을 직접 볼 수 없게끔 하잖아요. 조명도 전구가 이렇게 딱 보이는 것보다 한번 유리로 가려주면 큰 가능성의 어떤 무언가를 보여주는 느낌이 들어요. 유리가 유리답게 투명한 건 너무 직관적이지만, 유리가 반투명하면 더 단정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디렉터님의 오피스를 비롯해 공간 곳곳에 컬러를 자주 사용하시죠. 주로 하늘색이나 민트색의 푸른 계열이에요.

비슷해 보이지만 그동안 단 한 번도 같은 컬러를 사용해 본 적이 없어요. 미묘하게 다 다른데 각 공간에 어울리는 포인트가 있어요. 저는 난색 계열보다는 한색 계열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푸르고 초록한 계열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럼 실상에서 그런 컬러의 옷을 입느냐? 그건 또 아니거든요. 이 컬러들을 쉽게 정의해보자면 저한테 창작의 실마리를 많이 만들어주는 색상들이라는 거죠. 컬러를 쓴다는 건 재미있어요. 재미있고 위험하죠. 잘못 썼다간 큰일 날 수 있는 아이들이에요.(웃음) 그동안은 하늘색이나 민트색을 주로 썼는데 가장 최근 작업한 뷰티 브랜드 ‘팁토우’의 쇼룸에는 처음으로 핑크색을 시도해 봤어요. 물론 제가 먼저 생각한 컬러는 아니었고, 클라이언트가 원한 컬러였지만 지금 와서 보면 이 컬러 또한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모든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균등한 배분’입니다.
복잡한 환경과 여러가지 여건으로 인해 집행이 가능한 예산은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고민을 시작하게 되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한계점이 있다는 건 물론 그에 맞는 ‘적당함’을 찾는 게 무엇보다 앞서야 하지만
간혹 ‘적당함’을 잃어버리는 경우를 보며 다른 방법을 고심하곤 했습니다.
‘균등한 배분’이라는 목적에 맞는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프로그램에 맞는 중요한 지점과
디자인적인 요소의 무게 중심을 맞추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무게의 중심을 맞추어 나가다 보면 부득이 제한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아쉽지만
형태로서 단순화된 지점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물론 단순화된 형태가 좋은 디자인적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목적이 있는 단순화’와 ‘필요에 의한 단순화’는 무척 다른 부분입니다.
명확한 필요성과 이유 있는 단순화를 추구 했으며 전 그를 ‘미니멀하다’라고 표현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단순화 된 형태를 보며 조금이라도 공간에 맞는 기능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갖을 수 있도록 고민을 했습니다.
많은 고민을 통해 ‘색’이라는 쉽지 않은 요소를 사용하는 과감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선택을 하며 꽤 위험 요소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선택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가득합니다.
또는 형태보다 앞선 ‘색’을 위한 공간을 전개 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언어의 뒤섞임 없이 뚜렷한 이미지를 위해 형태를 단순화하며 ‘색’을 구현 하고자 해왔습니다.
형태와 색은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고 단순화 된 디자인에 색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
균등한 분배’를 가득 담고 있던 방법이었습니다.

-2022년 12월 ‘작은 글’ 中, 조남인-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디렉터님만의 루틴이 있다면요?

대화를 진짜 많이 하려고 해요. 의뢰하시는 분을 저는 그냥 단순히 클라이언트라고만 표현하지는 않아요. 계약서에도 의뢰인과 창작자로 기재하거든요. 의뢰를 하고 창작을 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서 대화를 좀 많이 해요. 어떤 프로젝트의 경우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인터뷰지를 드리고 ‘답변 써서 주시면 디렉팅에 반영해 보겠다’ 하면서요.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한가지예요.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시는 것을 알고 싶기 때문이죠. 종종 자신이 좋아하는 걸 쓰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럼 싫어하는 걸 많이 써달라고 해요. 이렇게 하면 디자인을 할 때 서로의 생각 차이를 줄일 수 있거든요. 저는 함께 만드는 걸 좋아하지 딱딱하게 네 일, 내 일 이렇게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결국 신뢰 문제인 거죠.


시몬 조의 창작을 이끄는 영감의 원천

PaTI 더배곳 가을학기 조남인, 〈조각 줍기〉, 유리, 검정
페인트, 투광기, 300×1200mm, 2024.
새로운 공간 혹은 가구를 디자인할 때 어디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얻나요?

저는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무언가를 보면서 상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이 작품도 최근에 학교 전시에 냈던 작품인데 공사 현장에서 쓰이고 버려진 조각들을 모아서 탁본을 뜨듯이 기록을 한 거예요. 유리에 검은색 페인트를 묻혀 만든 건데 처음엔 각기 다른 모양으로 버려진 조각들이 지금은 원래 여기에 있던 한 쌍의 작품 같아 보이잖아요. 이처럼 남겨진 조각을 스케일만 키우면 새로운 가구로도 재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고 있는 것들이 단순한 형태들이 대부분인데 그조차도 사실 ‘이렇게 해야지’라는 생각에서 온다기보다 의도치 않게 뭔가 만들어진 이미지들에서 오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앞으로 새롭게 시도해 보고픈 공간 및 가구 작업이 있을까요?

죽기 전에 꼭 한번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긴 있어요. 미슐랭 3스타 도전하는 한식 브랜드 같은 공간 작업을 정말 꼭 해보고 싶어요. 제가 어디선가 들었는데 미슐랭 3스타에 도전한다는 건 셰프 인생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많은 돈과 에너지와 영업에서 최고를 위해 도전을 하는 어떤 미식계의 올림픽 같은 거죠. 그러한 공간을 총괄하는 PM으로 한번 일을 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요리사를 존경하는 마음이 큰 사람이거든요. 셰프도 저희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수많은 식재료 중에서 베스트를 찾아내야 하고, 최고의 맛을 만들어야 하고,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식을 내놓을 줄 알아야 하잖아요. 접시에 담는 분위기나 재료의 균형, 간의 정도 등등…. 그럼 요리랑 공간의 끝에서 만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일까 생각하다 보니 미슐랭 3스타 한식당이더라고요.(웃음) 정말 나의 모든 걸 다 쏟아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시몬 조의 연희동 오피스에서는 창문 너머로 파릇파릇한 초록 나뭇잎이 아름답게 흔들린다.
그의 작업실 창문 역시 아연 소재를 사용해 완성했다.
Photography : Simone Cho (조남인)
마지막 질문이에요. 연속된 작업들에 지칠 때 디렉터님의 정신을 환기시켜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무실에 쇼파가 있는데 이곳에 일단 좀 눕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제가 잠을 진짜 잘 자요.(웃음) 잠을 잘 잔다는 표현도 맞지만, 잠이 많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잠을 정말 미친 듯이 참아가면서 밤새워서 일을 하고 아침에 현장 막 새벽에 가고…. 여자 친구가 보면 도대체 언제 자는 거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참는 것도 정말 잘해요. 근데 그것 나름대로 참는 맛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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