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 작가, 김희천

에르메스재단미술상 김희천 신작 ‘스터디’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희천 작가의 최신 전시에 이어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도 7월 26일부터 제 20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의 수상자인 김희천의 신작 개인전 <스터디(Studies)>를 개최한다. 김희천의 작품은 주로 설치미술, 영상, 퍼포먼스를 통해 표현되며, 인간의 경험과 정체성, 사회적 이슈 등을 탐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관객에게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 이상의 철학적 사유와 감정적 울림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중이다. 이번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에서는 여름의 클리셰, 공포물을 작품으로 선보인다.

제 20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 작가, 김희천

그가 선보이는 신작 <스터디(2024)>는 공포 장르를 차용한 일종의 극영화로 작가가 제안하는 새로운 영상적 시도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전국 대회를 앞 둔 고교 레슬링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모티브로 행방불명과 신체 변형, 기억과 데이터의 오류 등 인간 실존의 불안정함을 야기하는 공포를 다룬다. 상대 선수가 실종된 가운데 허공과 셰도우 레슬링에 몰두하는 선수들의 기이한 행동이나 죄책감 때문에 끔찍한 환상과 환청에 시달리는 코치의 심리상태는 암전이나 효과음 등 공포의 클리셰에 힘입어 장르적으로 완성된다.

작가는 이번 신작을 영화문법에 입각한 극영화의 형태로 완성함으로써 공포의 전면화를 시도했다. 그간 자전적인 내용의 작업으로 내면화되어 있던 이슈는 장르영화의 형식을 통해 보편적인 경험의 단계로 진입한 것. 작가는 이 시점에서 공포영화를 시도하는 것을 일종의 ‘스터디’로 규정하는데, 스터디란 완성 이전의 단계, 매끄러운 외피 아래 놓인 거칠거나 흐물거리는 단면의 단계를 은유하고 있다. 정의하거나 명명할 수 없어 좌절이나 불안과 맞닿아 있는 이 감정의 단계를 주목하는 것은 이성적 판단이나 완결성으로부터의 퇴행을 의미하기도 한다. 안정적인 현실을 심리적으로 훼손하는 공포라는 환상은 역설적으로 내면의 억눌린 감정을 해방하면서 시스템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여지를 갖는다.

김희천의 작업은 일상에서 누구나 사용하는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디지털이 지배하는
이 시대의 가장 도전적이고 시급한 질문들, 즉 인간의 육체, 감정, 기억, 상상, 그리고 결국에는
자아 인식을 재구성하는 것에 대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 디지털 방식으로 생활하고 가상 현실영역에서
세상을 상상하는 경험이 일반화된 오늘날 한국의 시대정신에서 적극적으로 영감을
받는 동시에 이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작가는 영상부터에서 몰입형 설치작업까지,
그리고 퍼포먼스부터 대중 참여를 유도하는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통한 놀라운 작업을 만들어냈다.
결국 그의 작업은 현실과 가상, 희망과 불확실성, 쾌락과 위험 사이를 무수히 오가는 우리의 존재를 드러낸다.

– 제 20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심사위원단 심사평 –

작품 스틸 이미지

안정적인 현실을 심리적으로 훼손하는 공포라는 환상은 역설적으로 내면의 억눌린 감정을 해방하면서 시스템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도 하는데, 디지털 데이터로 매개되는 세계상을 다루는 그의 작업들은 매체가 일상에서 우리의 시지각적 경험에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해 변형되는 실재의 범주를 주목한다. 그의 특이점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생성한 휘발성 강한 이미지들을 다루면서도 그로부터 죽음과 같은 실존의 무게를 가늠한다는 것. 초기작에서부터 삭제나 백업처럼 데이터로 치환되는 삶과 죽음, 기억 등 존재론적 차원의 물음을 제기함으로써, 그의 작업은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예술에 심도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채널의 영상과 일곱 개의 사운드 스피커로 구성된 30분 남짓의 스터디는 전체가 실사 촬영으로 제작되었다. 영화적인 촬영기법을 활용한 영상과 저해상도의 홈비디오 영상을 두 개의 스크린에 혼용하거나 병치하고 거기에 효과적인 음향을 더했다. 공포영화를 표방한 만큼 이작품은 몇 가지 장르적 클리셰를 내포하는데 예를 들어 주인공은 외면상 사회 질서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하지만, 내면은 와해 직전임을 시사한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구체적인 공포의 폭력성이 아니라 내면의 취약함인 것으로 주인공은 알 수 없는 실종 사건을 맞닥뜨리고 그 안에서 변형과 변신, 또는 역겨운 환영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아브젝시옹의 대면 결과, 마침내 그는 자신의 기억이나 감정마저 신뢰할 수 없는 피폐한 지경에 처한다. 공포는 미지의 것이기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증폭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현실과 환상 사이에는 틈새 공간인 ‘점근축(Paraxis)’ 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상과 허구, 현실과 가상, 또는 삶과 죽음, 선과 악의 경계는 언제나 전복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김희천이 발명한 공포의 환상성은 그 경계의 취약함에서 서사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는 창조의 시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김희천은 아트선재센터 (2019, 한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2018, 샌프란시스코, 미국), 두산아트센터 (2017,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2020 부산 비엔날레 (2020, 부산), 제13회 카이로 비엔날레(2019, 카이로, 이집트), 국립현대미술관(2019, 서울), 제12회 광주 비엔날레 (2018, 광주), 제15회 이스탄불 비엔날레 (2017, 이스탄불, 튀르키예), ZKM(2019, 카를스루에, 독일), 마닐라 현대미술관(2019, 마닐라, 필리핀)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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