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 커플의 와이오밍 별장

다양한 외부 자극으로 주의가 산만해져 언젠가부터 우리의 정신은 늘 반쯤만이 현재에 머무는 듯하다. 요즘 같은 때는 더더군다나 오직 한 가지 행위에 집중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안식이자, 하나의 예술로 느껴진다.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 커플의 와이오밍 별장
와이오밍의 티턴 산악지대에 자리 잡은 샤인메이커. Photo by Matthew Millman

오롯이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세컨드하우스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 너머에 자리한 밀 밸리Mill Valley 지역. 이곳에 인디 뮤직 레이블 ’브라이트 안테나Bright Antenna’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커플이 있다. 전형적인 것을 거부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이 보헤미안 커플은 평소 음악뿐 아니라 문학과 아트,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긴다. 최근에 아내는 또 다른 소설을, 남편은 자신의 회고록을 집필하기 위해 오롯이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세컨드하우스를 구상했다. 그들은 늘 그래왔듯 무언가 뻔하지 않은, 새롭고 오리지널 한 것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세컨드하우스의 배경은 미국에서도 인구 수가 적기로 알려진, 장엄한 자연 환경을 지닌 와이오밍이다.

옐로 스톤 국립공원,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을 지닌 와이오밍 주는 전체적으로 고도가 높고 산악 지대인 것으로 유명하다. 커플은 세컨드하우스로 알맞은 장소를 찾던 중, 즉흥적으로 시골의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이 터를 발견했다. 깊고 우거진 숲과 구릉 진 초원을 품으며, 맞은 편 장엄한 산의 경관을 지닌 장소. 자연 환경 외에는 아무 것도 갖춰진 것이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앞으로 살면서 만들어 나갈 것들에 대한 여지를 지니고 있었다. 둘은 동시에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구조물은 산악지대 특유의 장엄한 경관에 전적으로 열려있다. Photo by Matthew Millman
모두 세 채의 건물이 각자의 환경적 장점을 최적화하여 설계되었다. Photo by Matthew Millman

커플이 소유한 무려 35에이커(141,649제곱미터) 대지는 와이오밍을 대표하고 로키마운틴의 일부이기도 한 티턴 산맥Teton Range 내에 있다. 높은 고도 차로 생긴 맞은 편 산세의 드라마틱한 전망을 원 없이 누릴 수 있는 위치다. 그 터는 광대한 만큼이나 여러 환경을 품었는데, 이는 그 안의 다양한 생태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회색 곰부터 사슴, 붉은 여우, 흰머리 독수리, 야생 들꿩까지. 고요한 휴식뿐 아니라 자연 속 다이내믹한 삶까지 함께 선사 받은 셈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맡은 건축 사무소는 와이오밍의 CLB 아키텍츠. 건축가 에릭 로건Eric Logan은 커플의 바람에 따라 맞은편 풍광의 파노라마 뷰를 지닌 기다란 본채 건물과 손님용 오두막,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 건물까지 모두 세 채의 건물을 구상했다. 자연 속에서 크게 드러나지도, 숨어있지도 않은 적당한 존재감의 미니멀한 건물들은 각자의 위치적 장점을 최적화한 결과다.

관계를 다시 연결시키는 출발점

부지는 숲과 초원의 중간 지대에서 마치 전체를 관망하듯 그 가장자리에 놓였다. 건축가는 프로젝트의 초반에 건축물을 구상하며 부지를 거닐 던 중, 한 곳이 유독 저지대로서 움푹 들어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다른 팀원들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 스팟이 메인 건물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자연스레 요람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다. 마치 자연스레 이곳에 생겨난 지질학적 산물, 혹은 뿌리로서 지탱하는 닻 같은 형상으로 말이다.

모더니즘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건축적 선언 같은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그보다는 삶을 위한 단순한 컨테이너, 조각적이지만 그럼에도 경관을 방해하지 않는 것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CLB 아키텍츠 건축가 에릭 로건

전체 557제곱미터 규모의 낮고 긴 그 메인 건물은 지붕의 경사가 물결치듯 오르락내리락하며 불규칙적으로 구릉 진 형태를 띠는 게 특징이다. 멀리에서 보면 역동적인 산의 형세에 자연스레 포개어지는 듯한 모습이다. 풍경과 조화로우면서도 동시에 또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검은색의 외관은 나무판자를 새까맣게 태워 수종 고유의 텍스처를 보존하고, 목재로서의 기능을 더욱 강화하는 일본 전통 테크닉 ‘쇼우수기 반Shou Sugi Ban’을 적용한 것이다. 건축가는 이 집이 거주자에게 그 특유의 환경적 풍경을 경험케 하고 야외 활동의 욕구를 불러 일으킬 뿐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시 연결시키는 출발점으로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고 한다.

건물의 안과 밖은 덱과 투명한 유리 통로를 통해 산책하듯 활보할 수 있게 연결되어 있다. 메인 입구에는 저지대 특유의 심벌처럼 개울이 자리 잡았는데, 그 경관은 투명한 유리 통로를 지날 때 더욱 특별하게 즐길 수 있다. 유리 통로는 전체 구조물 내에서 공용 장소와 사적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한편, 건물의 중앙에는 마치 야외에 낸 빛 우물처럼 아침 햇살이 관통한다.

메인 건물의 실내는 공용 주방, 리빙 룸, 다이닝 공간에 더해, 메인 건물은 세 개의 침실과 네 개의 욕실, 세탁실, 커플의 두 반려견 아이리쉬 울프하운드Irish Wolfhound를 위한 넓은 머드룸*신발의 진흙을 털기 위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닥부터 높은 천장고까지 이어지는 유리창이 초원과 테톤 산맥, 그 너머의 뷰를 막힘 없이 반영하며 채광을 최대로 끌어들이는 가운데, 거실에서 동쪽을 향해 있는 벽난로는 그 외부 경관과 대조를 이루며 내부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은밀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그런가 하면, 침실을 세 개 갖춘 146제곱미터 규모의 손님용 오두막은 숲에 더 가까이 들어서 있다. 그 옆에 살짝 떨어져 놓인 것은 집필 활동을 위한 2층 구조, 54제곱미터 규모의 스튜디오 건물이다. 세 건물은 의도적으로 약간씩 거리를 두고 있으며, 서로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

머무는 사람을 위하여

주인의 컬렉팅 아이템과 빈티지 가구, 컨템퍼러리 아트로 구성된 휴식 공간. Photo by Matthew Millman

‘장소에서 영감을 얻다Inspired by Place’란 건축사무소 CLB 아키텍츠의 모토처럼 건축물이 자연 환경에 반응한 결과라면, 그 내부는 머무는 사람의 취향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번에 실내 디자인을 맡은 HSH 인테리어즈의 홀리 홀렌벡Holly Hollenbeck은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빅토리안 하우스를 비롯한 많은 고급 저택을 작업해왔다.

몇 년 전, 이 보헤미안 커플이 소유한 19세기 밀 밸리 하우스를 리노베이션 했던 터라, 그들의 취향은 물론 삶의 방식까지도 잘 파악하고 있던 바다. 커플은 가족과 친구, 그들의 반려견까지 전적으로 환대할 수 있는 안락함, 그 가운데에서 레이어와 텍스처를 느낄 수 있기를 원했다. 디자이너는 건축물의 모던한 이미지를 인테리어를 통해 따뜻하고 부드럽게 승화하고자 계획했다. 그 결과, 얼씨톤 팔레트 위에 레드, 핑크, 머스터드, 황토빛, 소프트 브라운 등의 컬러가 곁들여졌으며, 핸드메이드의 아티스틱 한 디테일들이 더해졌다.

차분한 크림톤의 거실. 타투 문양을 모티프로 거실 벽난로의 콘크리트 벽을 제작했다. Photo by Matthew Millman

디지털 시대, 진정한 휴식을 위해 우리는 외부와의 연결을 끊고 자연과 다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사무소가 추구해온 디자인 정신 ‘장소에서 영감을 얻다(Inspired by Place)’는 이제 디자인을 넘어 삶의 방식을 형태 짓는 철학이 되었습니다.

건축가 에릭 로건, CLB 아키텍츠

특히 모든 마감은 오직 이곳을 위해 맞춤 디자인한 결과물이다. 타투 문양에서 영감을 얻어 음각으로 표현한 벽난로 주변의 콘크리트 벽이 그 대표적 예다. 이 밖에도 핸드페인팅 뮤럴 벽지, 곳곳에서 심벌처럼 눈에 띄는 기하학 모티프 등 섬세한 예술적인 터치가 이 장소에 고유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특유의 악센트를 만드는 컬렉팅한 빈티지 가구와 아트웍도 빼놓을 수 없다. 커플이 추구하는 정신처럼 자유분방하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하나의 거대한 이탈리안 라임스톤(석회암)을 워터젯 커팅으로 조각한 욕조가 예술품처럼 놓였다. Photo by Douglas Friedman

최근 CLB 아키텍츠의 에릭 로건은 이 시대 휴식이 지닌 의미와 건축가로서의 사명을 새롭게 되새기고 있다. “사람과 장소에 대한 근본적 책임을 지고 있는 건축가로서 저는 거주자가 그들을 둘러싼 자연 환경과 보다 상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게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풍요롭고, 영감을 주며, 보다 더 향상된 고유의 환경을 창조함으로써 말이지요.”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고요한 집필실, 자연의 경이 그 자체인 거대한 라임스톤 욕조 등 현재의 아름다움에 생각을 집중시키는 여백과 디테일. 불필요한 것을 없애어 본질에 집중하도록 하되, 억지로 미니멀하기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 안에서 머무는 이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다시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대지의 남향에는 이후 오직 명상에 집중할 수 있는 건물이 하나 더 지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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