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 센터에 설치된 스케이트파크

스케이트보드와 예술의 상관관계

프랑스 아티스트 라파엘 자르카와 건축가 장 브누아 베티아르가 협업한 스케이트파크가 풍피두 센터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나 자유롭게 스케이드보드를 즐길 수 있는 이곳의 명칭은 사이클로이드 플라자. 올해 퐁피두 센터 앞에 설치한 사이클로이드 플라자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다.

퐁피두 센터에 설치된 스케이트파크

열기가 넘쳤던 2024 파리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프랑스 파리는 올림픽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8월 22일에 개막하는 패럴림픽이 아직 남아 있고, 100년 만에 프랑스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벌써 보내기엔 아쉽기 때문이다. 특히 파리의 미술관에서는 올림픽과 관련된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 퐁피두 센터 앞에는 자국 아티스트인 라파엘 자르카(Raphaël Zarka)와 건축가 장 브누아 베티아르(Jean-Benoît Vétillard)가 협업하여 설치한 스케이트파크(Skatepark)가 9월 15일까지 있을 예정이다.

‘사이클로이드 플라자(Cycloïd Piazza)’라는 이름을 가진 이 설치작품은 보는 그대로 스케이트파크다. 지나가던 누구나 앉아서 쉬어도 되고 당연히 스케이트보드를 타도되는 공공미술품이다. 어렸을 때, 스케이트보드를 탔던 라파엘 자르카는 이 운동에 대한 관심을 작품 활동으로 풀어냈고, 2011년부터 스케이트파크를 주제로 한 설치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올해 퐁피두 센터 앞에 설치한 사이클로이드 플라자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다.

작품명에 있는 사이클로이드(Cycloid)란, 평면 위를 구르는 원의 한 점이 그리는 궤적을 의미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가장 아름다운 곡선’이라고 칭할 정도로 17~18세기의 수학자들은 사이클로이드의 수학적, 물리적, 자연적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 매력은 현대까지 이어져 수학, 물리학, 기계공학, 건축 및 토목, 컴퓨터그래픽 등 여러 학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미적으로 탐구하는 예술가들도 등장했다.

그 예술가 중 한 명이 바로 라파엘 자르카다. 기하학적 구조와 움직임을 주제로 작업하는 그에게 사이클로이드는 좋은 연구 소재였다. 그래서 자르카는 사이클로리드를 연구했던 17~18세기 수학자의 장비 형태와 원리를 재해석하여 스케이트파크에 반영했다. 덧붙여서 20세기 초반 구성주의와 기하학적 추상 운동을 선보였던 카타르지나 코보르, 류보프 포포바, 소니아 들로네와 같은 여성 작가의 작품을 참고했고, 르네상스 회화와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에게서 영감받은 색(빨강, 초록, 노랑)을 사용했다.


예술 작품 위의 스케이드보더

과학과 예술의 결합인 사이클로이드 플라자는 올림픽을 관람하러 온 방문객은 물론, 파리 시민의 쉼터이자 스케이트보더(Skateboarder, Skurfer)의 놀이터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스케이트파크가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버질 아블로, 구정아와 같은 현대예술가들은 스케이트파크를 재해석하여 도시의 버려진 공간을 변신시키고, 정적인 갤러리를 동적인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대다수의 현대예술가, 디자이너, 건축가가 스케이트보드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생동감 있는 문화에 매력을 느끼고 있겠지만, 스케이트보더가 만들어내는 움직임과 형태에 더 이끌리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스케이트파크를 작업한다. 라파엘 자르카 역시 사이클로이드 플라자를 설명하면서 “스케이트보딩은 공간과 형태를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자르카는 스케이트보드와 그로 인한 움직임에 관한 글을 썼고 다수의 책을 펴냈는데, 2018년에 출간된 <Riding Modern Art>는 각 도시의 공공예술품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보더 74명의 모습을 담은 책이다. 예술 작품과 하나가 된 스케이트보더의 움직임에선 그 작품에 숨어있는 움직임과 에너지가 보인다.

<Riding Modern Art>는 스케이트보드라는 하위문화와 공공예술의 관계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책에 등장한 보더들은 공공예술품을 거리의 벤치나 난간처럼 자유롭게 타고 묘기를 선보인다. 이런 장면은 작품 훼손이라는 비판을 떠오르게 만들지만, 실상 그 작품을 만든 작가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라파엘 자르카의 인터뷰에 따르면, 몇몇 작가는 자기 작품이 ‘공공예술’로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증거로 봤다고 한다. 이처럼 폭넓은 시각으로 보면 스케이트보더는 무법자보단 오히려 공공예술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게 도와주는 조력자에 가깝다. 라파엘 자르카는 “스케이트보더는 작품을 타면서 그에 숨겨진 의미를 찾지만, 작품을 번역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 작품을 연기하는 행위예술가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스케이트파크를 디자인하는 예술가

스케이트보더가 도시의 공공예술품 위를 자유롭게 유영하면서 작품을 새롭게 해석한다면, 현대예술가는 스케이트파크를 디자인하면서 미학 연구와 함께 공공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전한다. 1970년대 이후 스케이트보드의 인기가 수그러들어 전용공간은 사라지면서 보더들은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가 ‘스케이트보드’라고 했을 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공원의 벤치를 장애물처럼 넘나들고, 고층 빌딩 앞 계단과 난간을 위험하게 타는 모습)는 그때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스케이트보드가 다시 주목받으면서 전용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스케이트보드가 접근성이 쉬운 스포츠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지자체가 나서서 유휴공간을 스케이트파크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케이트파크를 지역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공공공간으로 개발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여기에 디자이너, 건축가가 참여하면서 스케이트보드 파크는 위험한 회색의 콘크리트 공간이 아니라, 다채로운 미적 실험이 펼쳐지는 공간이 되었다.

스케이트파크를 주제로 설치작품을 선보이는 현대예술가도 등장했다. 앞서 언급한 구정아도 갤러리, 거리 등 세계 곳곳에 스케이트파크를 설치함으로써 명상과 위로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영국의 예술가 겸 디자이너 잉카 일로이(Yinka Ilori)는 ‘아트 바젤 마이애미’가 열리는 동안 마이애미 비치에 컬러풀한 스케이트파크를 디자인함으로써 시선을 끌고, 더 많은 사람에게 작업 세계를 보여주었다. 마이애미에서의 작업은 이후, 잉카 일로이가 스케이트파크 작업을 이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 스케이트보더들이 법의 시선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탔던 공공예술부터 2024 파리올림픽을 기념하는 퐁피두 앞의 사이클로이드 플라자까지. 스케이트파크는 보더와 예술가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로 거듭났다. 거리의 문화였던 스케이트보드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것처럼, 스케이트파크도 다양한 예술장르와 만나면서 모두에게 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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