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코트, 공공 예술로 다시 태어나다

로컬 커뮤니티의 화합과 치유의 상징으로

지역의 역사를 함께해 온 오래된 농구 코트들이 세계 곳곳에서 예술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거리 예술가들이 코트를 캔버스 삼아 그린 다채로운 메시지의 작품들을 모았다.

농구 코트, 공공 예술로 다시 태어나다

NBA 선수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위한 코트

이미지|MARK PAUL DEREN 인스타그램

미국 뉴욕 할렘의 니콜라스 공원 안에 있는 이 농구 코트는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뉴욕시와 스포츠 음료 브랜드 마운틴 듀가 협업하여 후원한 작품이다. 뉴욕시의 ‘NYC Adop-a-Park’ 프로젝트는 공원과 놀이터, 야외 운동 시설 등 낡았거나 사용하지 않는 공공 시설들을 리모델링해 도시 환경을 개선한다. 마운틴 듀의 ‘Closer Than Courtside’(맨 앞좌석보다 더 가까이에서)는 미래에 프로 농구 선수가 되기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응원하는 캠페인이다.

코트 바닥에는 농구공을 들고 뛰어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겹이 역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보라 등 자연에 가까운 채도의 컬러들이 서로 어우러져 주변 공원 환경에 녹아든다. 스트리트 문화와 스포츠를 주제로 벽화 작업을 종종 하며, 나이키 등 스포츠 브랜드들과의 협업으로도 유명한 아티스트 매드스티즈MADSTEEZ의 작품이다.

키치한 상상으로 벽을 쌓아 올리다

​‘와이어프레임 코트Wireframe Court’는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형광색을 사용해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코트 주위에 핑크색 도넛 형태의 튜브로 울타리를 세워,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적극적으로 이 코트를 이용하도록 만들었다. 골대가 고정된 부분 등 튜브 일부는 안에 목재 프레임을 넣고 발포 고무를 채워 단단하게 제작했다. 단단할 필요가 없는 튜브에는 공기를 주입했다. 관중들은 튜브로 만든 울타리에 자유롭게 기댈 수도 있고, 벽 뒤에 서서 공이나 선수들로부터 스스로를 물리적으로 보호할 수도 있다. 지난 2018년, 프랑스 건축가이자 아티스트인 시릴 란셀린Cyril Lancelin과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트라젝트와 스튜디오Trajectoire Studio가 협업하여 ‘와이어프레임 코트’의 최초 콘셉트를 만들었다. 트라젝트와 스튜디오는 코트의 콘셉트 공개 당시 “관객들도 선수들만큼 경기를 즐기고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이머시브 설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중국 광저우 K11 아트 스페이스에 전시된 ‘와이어프레임 코트’. 이미지|Town And Concrete 인스타그램

‘와이어프레임 코트’는 지난해 실물로 제작되어, 오는 3월까지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란셀린의 개인전 ‘“WE LAND”—— A Wonder-Virtual Land’에서 전시되고 있다.

구글 지도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농구 코트

이미지|Hans De Backer 인스타그램

벨기에의 한 소도시에는 농구 코트가 도시를 홍보하는 광고판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 한스 데 백커Hans De Backer는 소도시 덴데르몽드Dendermonde에 있는 농구 코트 바닥에 화사하고 선명한 컬러로 커다랗게 이 지역의 우편번호인 9200을 그렸다. 규모가 작은 도시의 존재감을 구글 지도에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시를 홍보하기 위해 말 그대로 ‘눈에 띄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주로 지역 청소년들이 클럽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이 농구 코트의 넓이는 364제곱미터로, 작품을 완성하는 데 총 150리터 이상의 페인트가 사용됐다. 이 코트는 지난해 지역 스트리트 아트 페스티벌인 ‘뷰마스터스ViewMasters 2021’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소외된 마을에 물결과 색을 더하다

이미지|All Arquitectura 인스타그램

스포츠는 놀이를 통해 결속을 다질 수 있는 사회적 활동이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 소외된 지역에 스포츠 시설을 재건하는 비영리단체가 있다. ‘러브 풋볼Love Fútbol’은 세계 여러 나라의 낙후되고 슬럼화된 지역에서 양질의 공공 공간을 개발하는 지역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멕시코시티 인근, 바예데샬코에 있는 ‘라 도세La Doce’ 구장은 ‘러브 풋볼’이 만든 ‘동네 경기장’ 중 하나다.

‘라 도세’의 전체 부지의 넓이는 968제곱미터다. 15m x 25m 넓이의 운동장에는 축구와 농구 경기장을 겸할 수 있도록 두 종류의 코트가 함께 그려져 있다. 표면은 파란색 투 톤 체커보드 패턴을 사선으로 칠해,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물결이 치는 듯한 생동감을 살렸다. 코트 밖에는 풀업 바와 샌드백 등 야외 운동기구가 설치된 구역이 있고, 대기석과 객석 외에도 모임을 위한 강당과 화장실, 창고 등 실내 공간을 마련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맨체스터 시티의 후원을 받았고 멕시코의 디자인 스튜디오 알 아키텍투라All Arquitectura와의 협업으로 제작했다.

감추지 않고 금이 간 상처를 치유하는 법

이미지 |Victor Solomon 인스타그램

일본 전통 예술 기법 ‘킨츠기金継ぎ’는 ‘금으로 이어붙이다’라는 뜻으로, 깨진 도자기를 이어붙이면서 그 틈을 금으로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흠이 생긴 부분을 완전히 덮어서 감추는 대신, 오히려 그 흠을 더 드러내어 수리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상처가 나고 불완전해진 부분까지도 그 물건의 역사로 수용한다는 의미가 있다.

농구와 관련된 작품 연작을 만드는 아티스트 빅터 솔로몬Victor Solomon이 그런 킨츠기의 정신과 기법을 농구 코트에 활용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부의 한 마을에 망가진 채 방치된 농구 코트를 새롭게 변신시킨 ‘킨츠기 코트Kintsugi Court’가 그의 작품이다. 코트 전체를 도포해 수리하는 대신, 빈 틈에 금가루가 묻은 레진을 채워 넣어 굳히는 방식으로 바닥을 평탄화했다.

이미지 |Victor Solomon 인스타그램

솔로몬은 농구가 인종이나 경제 수준과 관계 없이 즐길 수 있어 진입 장벽이 낮은 스포츠이기 때문에 화합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팬데믹과 그로 인한 소통 부족으로 지역 커뮤니티가 점점 더 빠르게 해체되어 가는 지금 시대에, 킨츠기로 농구 코트를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를 통해 스포츠가 가진 치유의 역할을 상기하고 싶었다고 작품 의도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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