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앞 전시 디자인의 별일 – “- 줄였다.”

지금 전시 디자인에 주목하는 이유

최근 2년 동안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줄이는 전시 디자인을 시도한 사례와 각 관계자의 이야기를 모았다.

기후 위기 앞 전시 디자인의 별일 – “- 줄였다.”

새것의 사용을 줄이고, 인쇄물을 줄이고, 색상 사용을 줄이고, 전력 사용을 줄이고, 운송을 줄이고, 대면 미팅을 줄이고, 탄소 배출량을 줄였다.


멀찍이 물러나 바깥에서 쌍안경과 망원경으로 까치발 들고 겨우 작품을 보는 모습, 이번 전시가 은연중에 보여준 우리의 미래상은 아니었을까? 초청 큐레이터 중 한 명인 이혜원 대진대학교 교수는 “코로나19 방역 정책으로 미술관 문이 닫힐 수 있는 상황에서 관객이 전시장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가정하에 전시를 구현했다”라고 기획 의도를 소개했다. 물질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전시의 태생적 한계를 의식하고 기획 단계에서 쓰레기를 덜 만드는 데에 초점을 맞춘 것은 물론이다. 더 넓게는 캠페인 차원의 이슈이기도 했다. 사실 이 전시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년 아르코 공공 예술 프로젝트인 ‘기후시민 3.5’의 일환이기 때문. “캠페인의 노출 기회를 늘리기 위해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를 물색했다. 기획 초기 단계에 서울의 거의 모든 옥외 전광판을 둘러보고, 주변의 유동 인구와 유동 차량에 대한 통계를 확인하고, 주요 지하철역의 홍보 스크린과 지하철 차량 내부 광고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했다. ‘기후시민 3.5’의 시각적 전략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말은 ‘익숙함과 낯섦 사이의 줄타기’인 것 같다”라고 설명을 더했다.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2021
부산현대미술관


홍박사 스튜디오 홍박사 대표

‘에너지 자원 소모 감축’이란 전시 미션을 위해 전시 디자이너로서 신경 쓴 부분은?

보통 전시 디자인에는 공간을 구획하는 공간 디자이너와 면을 기획하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있다.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는 공간 디자이너가 부재하고 새로운 구조물이나 가구를 제작하지 않았기에 그래픽 디자이너의 임무가 더 커진 경우였다. 짧은 기간과 한정된 예산으로 고민한 끝에 대안으로 이면지를 골랐다. 서울시립미술관 사무실에서 발생한 이면지, 건축학과에서 과제 제출 후 폐기되는 종이를 취합하고 오프셋 인쇄에서 발생하는 탄소도 줄일 수 있도록 미술관 내 사무용 프린터를 사용했다. 그다음 고민은 잉크의 경제성이었다. 프린터의 에코 모드 인쇄를 활용하기도 했지만, 잉크를 더 절약하기 위해 인쇄 영역을 줄이는 망점 그래픽을 택하고 에코 폰트를 사용했다. 이 대안이 뻔할 수 있지만 지적인 실험보다 현실적인 디자이너의 태도를 취한 전시였다.

이면지 사용이 또 다른 실무의 고민을 낳았을 것 같다.

가장 큰 걱정은 ‘그래픽이 심미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였다. 시트지가 아닌 재료로 처음 시도하는 대형 작업이었기에 1:1 테스트 인쇄 후 가독성과 심미성을 확인하고, 양면 종이테이프를 붙여가며 미리 연습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물림 여백’은 전시장에서 일관된 모듈로 보이는 그래픽 요소로 활용했다. 평량 80g 정도의 얇은 종이라 이면의 내용이 비치는 상태가 오히려 전시 맥락을 전달하여 적절한 효과를 낸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수정 작업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트지 작업 수정은 잘못된 부분을 떼어내고 새 시트지를 제작해 다시 부착하는데 이번에는 틀린 부분을 사무실에서 프린트하여 바로 적용할 수 있어 부분 수정이 편리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달라.

전시 디자이너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초청 큐레이터인 배형민 교수는 전시 디자인 과정도 전시 기획의 일부라며 전시를 구현하는 과정과 태도를 전시장에 드러내도록 독려했다. 전시 그래픽 디자이너의 직능을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디자인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오래 고민했을 것 같다.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건 맞지만 디자인의 퀄리티를 희생하지 않는 선이어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재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전시 그래픽은 전시 주제와 기획 내용을 해석하여 정보를 전달하고 전시의 개성과 정체성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홍보물’이란 표현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픽이 단순히 홍보 기능에 그친다는 뉘앙스를 준다. 따라서 이보다는 ‘자료’와 ‘정보’로서의 기능을 더 강화하여 브로슈어나 전시장 내부 사진 등을 웹사이트에 올려 아카이빙하는 온라인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도 볼 수 있는 형식인데, 그것보다는 미술관의 역사를 훑어보는 온라인 도서관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구축하면 좋지 않을까.

개선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있다면?

크레디트 문화와 전시 그래픽 디자인 직능의 확장. 현재 전시 크레디트는 도록에서만 볼 수 있기에 책을 발간하지 않으면 전시를 준비한 사람들의 정보를 찾아보기 어렵다. 해외 전시처럼 전시 공간 말미에 이들의 크레디트를 명시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전시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의 직능을 확장하기 위해 ‘전시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싶다. 보통은 전시 디자이너(일반적으로 공간 디자이너를 말한다)와 그래픽 디자이너로 나눠 표기한다. 넓게 보면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그래픽 디자이너가 포스터, 인쇄 편집물 이외에도 공간 그래픽 작업 및 제작 소통, 현장 시공, 감리 등의 업무를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조금 더 세분해 표기하면 좋겠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38호(2023.04)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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