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여럿인 멀티플레이어, 소목장세미 유혜미
소목장세미, 디제이 씨씨, 테크노 각설이. 모두 유혜미 한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다.
소목장세미, 디제이 씨씨, 테크노 각설이. 모두 유혜미 한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다. 대학에서 조소를 공부한 그는 공동 작업실에서 친구와 함께 사용할 2층 침대를 만든 것을 계기로 제작자의 길로 들어섰다. 목공 기계 한번 제대로 다뤄본 적 없지만 막연히 목수의 꿈을 품고 책과 유튜브 영상으로 무작정 독학을 시작했다. 이후 짜맞춤 전수관과 목공소를 거치며 전문 기술을 익힌 뒤 2012년 가구 공방 ‘소목장세미’를 열었다.
사실 이 이름 하나만으로도 유혜미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소목장세미의 ‘장’은 장소, 구체적으로는 ‘작은 나무를 다루는 장소’라는 의미다. 작가 지망생 시절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비좁은 작업실에서 일하며 공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 ‘소목장’은 가구 만드는 장인을 뜻하는 말로, 이름 그대로 장인 정신과 진정성을 가지고 일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어디서 유래했는지 도통 모를 ‘세미’는 유혜미의 아명兒名이다. 날 때부터 가졌던 이름을 목수가 되어 스스로 되살린 것이다. 스튜디오명에 거창한 포부나 비전을 꾹꾹 눌러 담는 경우가 많은데, 소목장세미라는 이름에서는 유혜미 개인의 면면이 담백하게 드러난다.
이 같은 꾸밈없는 태도는 그가 선보이는 작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소목장세미가 주로 만드는 건 혼자 사는 여성을 위한 가구다. 일부러 대상을 특정하는 건 아니다. 처음 목공을 시작할 때부터 ‘내가 사용하기 쉬운 가구를 만든다’는 원칙을 세웠고 혼자 사는 여성의 필요와 경험을 투영하다 보니 1인 가구에 적합한 형태가 주를 이루게 됐다고. 혼자서도 가구를 쉽게 옮기고 설치할 수 있도록 분리 조립식으로 제작하는데, 못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 짜맞춤 기법을 활용한 합판 소재의 목가구를 위주로 한다. 이처럼 유혜미의 내적 경험과 자아를 근간에 둔 소목장세미의 가구는 주거·상업 공간을 넘어 미술관으로도 진출했다. 일각에서는 그를 ‘예술가형 목수’라 부를 만큼 미술관 단골손님이 된 지 오래다.
수많은 공간과 장소에 족적을 남기며 활약하고 있는 이 젊은 목수는 일을 할 때 언제나 노동요와 함께한다. 처음에는 소음 때문이었다. 기계나 톱으로 나무를 자를 때 나는 요란한 소리를 덮기 위해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남에게도 들려줄 수 있을 정도의 컬렉션을 갖추게 되었고, 그렇게 ‘디제이 씨씨’로 데뷔했다. ‘씨씨’는 미국의 일렉트로닉 음악 프로듀서 머신드럼의 곡 ‘Seesea’에서 따온 것이다. 2015년 디제이 컬렉티브 ‘비친다Bichinda’로 디제이 활동을 시작하며 베이스 음악이 두드러지는 플레이로 여성 디제이 불모지를 개척해왔다. 눈에 띄는 메이크업, 그리고 이제는 시그너처 아이템으로 자리한 우산 모자도 그를 알리는 데 한몫했다. 유혜미는 종종 자신의 음악적 자아를 ‘애시드 댄스 마차’라 소개하기도 한다. 고속도로 갓길에서 종종 마주치는 마차처럼 생긴 요란한 카세트테이프 트럭에 자신의 모습을 빗댄 것이다.
수년간 꾸준히 이어온 디제잉 활동은 프로듀싱 자아 ‘테크노 각설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2023년 발매한 테크노 각설이의 첫 번째 EP 앨범 〈짬뽕Jjam-bbong〉은 한국적 색채가 두드러지는 멜로디와 샘플 사운드가 돋보이는 3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시아의 정서를 관통하는 ‘인도차이나 아리랑’으로 시작해 본격적으로 댄스 마차의 시동을 거는 ‘위기의 중년’, 마지막으로 한국적 정서가 돋보이는 대표곡 ‘짬뽕’으로 마무리한다. 감각적인 포토 카드와 USB로 구성한 패키지도 눈길을 끈다. 각설이가 가는 곳에 언제나 가뿐히 함께할 수 있는 음악이 되도록 USB라는 매체를 선택했다고. 한 몸에 싣기 힘든 다재다능함을 멀티 페르소나로 풀어내는 유혜미의 행보에는 종착점이 없는 듯 보인다. 머지않은 미래에 또 한 번 새로운 이름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