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순간들 2000-2024〉전

2000년부터 2024년까지 총 23개의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한자리에 모았다. 참여 건축가들의 생생한 이야기와 누구보다 이곳을 오랜 기간 뷰파인더로 들여다봤을 이반 반의 미공개 작업이 펼쳐진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순간들 2000-2024〉전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면 전 세계 디자인 애호가들이 런던 하이드 파크의 켄싱턴 가든스로 향한다. 서펜타인 갤러리 앞 잔디밭에 약 3개월 동안 유일무이한 만남의 장소가 세워지기 때문이다. 일명 ‘서펜타인 파빌리온으로, 서펜타인 갤러리의 디렉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다. 2000년 서펜타인 갤러리는 후원금 마련을 위한 이벤트를 준비하며 당시 건축계가 주목하던 자하 하디드에게 야외 구조물을 의뢰했다. 유려한 곡선으로 리듬감을 선보인 야외 천막은 예상보다 큰 인기를 얻었고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연례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초대 건축가의 조건은 명확하다. 영국에 완공된 건축물이 없고, 세계적으로 잠재력과 재능을 인정받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를 시작으로 렘 콜하스, 프랭크 게리, 장 누벨, 도요 이토 등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거장 건축가는 물론 아이웨이웨이, 올라푸르 엘리아손 같은 현대미술 작가도 이곳에 족적을 남겼다. 최근에는 프리다 에스코베도, 수마야 벨리, 리나 고트메어 등 지금 건축계에 떠오르는 인물들이 참여하며 저변을 넓히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한국 건축가 최초로 조민석이 설계를 맡아 화제를 모았는데 그 현장을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엿볼 수 있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과 서펜타인이 공동 주관해 2000년부터 2024년까지 총 23개의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참여 건축가들의 생생한 이야기와 파빌리온에서 펼쳐진 다양한 이벤트, 서펜타인 갤러리의 공동 디렉터로 일한 줄리아 페이턴존스의 회고 인터뷰가 영상으로 펼쳐진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시작을 사진으로 담은 엘렌 비네의 작업과 누구보다 이곳을 오랜 기간 뷰파인더로 들여다봤을 이반 반의 미공개 작업도 만날 수 있다. 전시 기획과 디자인을 맡은 스튜디오 히치는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배경에 착안해 전시관 내부를 임시 천막 구조로 조성했다.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전시에 사용한 모든 콘텐츠는 서울 현장에서 제작했다. 산림협동조합의 목재 창고에 오랫동안 쌓여 있던 목재를 활용해 벤치와 가구를 만들었고, 전시를 위해 제작한 모든 가구와 집기는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의 향후 전시에서 재사용할 예정이다.

SANAA의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설계한 2009 서펜타인 파빌리온. 수많은 금속 기둥 위에 가볍게 올린 곡선으로 이루어진 평면 형태의 알루미늄 지붕이 빛을 반사하며 더욱 극적인 풍경을 선사했다. 사진 Claire Byrne
프리다 에스코베도가 디자인한 2018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안뜰이 있는 멕시코 건축양식에서 착안했다. 시멘트 지붕 타일을 격자로 쌓아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을 파빌리온에 끌어들였다. 사진 Rafael Gamo

비정형의 다각형 구조와 비닐 소재로 다채로운 내·외부 공간을 만들었던 2015 서펜타인 파빌리온. 스페인 디자인 스튜디오 셀가스카노가 설계했다. 사진 Iwan Baan
칠레 건축가 스밀란 라딕이 설계한 14번째 서펜타인 파빌리온. 여러 개의 큰 바위 위에 무심히 놓은 듯한 유리섬유 구조물이 넓은 공원에서 존재감을 발휘한다. 사진 Iwan Baan
가장 보편적 건축 요소인 지붕이 자연스럽게 공원의 일부로 스며들도록 이시가미 준야가 디자인한 2019 파빌리온. 가는 철제 기둥 위에 검은 석판을 쌓아 고요하고 사색적인 공간을 이루었다. 사진 Norbert Tukaj

“파빌리온의 원초적 형태를 거슬러 올라가면 천막이 있다. 천막은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고, 기능적으로 유용한 공간을 제공하며, 주변 환경과의 대비로 색다른 도시 풍경을 경험하게 한다. 이는 도시 공동체의 정서적 상징으로,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보여준 사회·문화적 풍경도 이에 기반한다. 농업용 패브릭으로 제작한 가벼운 천막은 전시관 상부 측창을 통해 자연광을 분산시키며 도시의 흐름을 내부로 전달한다. 세종대로의 보행로를 따라 이곳에 들어온 방문자들이 도시 광장을 거닐 듯 전시를 경험하기를 기대한다.”

박희찬
스튜디오 히치 대표

서울도시건축전시관 비움홀에 설치한 가벼운 천막은 광장에 대한 건축적 은유다. 도시를 산책하듯 전시 공간을 거닐 수 있도록 동선을 설계했다. 사진 장미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5호(2024.09)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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