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고요손이 다시 한 번 접시 위에 올린 ‘먹는’ 조각
파티시에와 협업한 조각가
작가 고요손이 2022년 10월 진행한 전시 〈섬세하게 쌓고 정성스레 부수는 6가지 방법〉은 조각을 대하는 시각을 환기했다. 디저트숍 여섯 곳과 협업해 ‘먹는’ 조각을 선보였고, 관객은 미술관이 아니라 디저트숍에 가서 조각을 구매한 뒤 마음껏 바라보다가 포크로 부수고 마침내 먹어버리는 경험을 했다. 올해 또 한 번 이 전시를 연 고요손을 만났다.
작가 고요손이 지난해 10월 진행한 전시 〈섬세하게 쌓고 정성스레 부수는 6가지 방법〉은 조각을 대하는 시각을 환기했다. 그는 디저트숍 여섯 곳과 협업해 ‘먹는’ 조각을 선보였고, 전시를 관람하려는 관객은 미술관이 아니라 디저트숍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각을 구매한 뒤 마음껏 바라보다가 포크로 부수고 마침내 먹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됐다.
그리고 올해 고요손은 이 전시를 또 한 번 열었다. 작년 디자인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 전시에 대해 “연출한 영역 안에서는 조각을 부수어 보는 경험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고요손이 이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티시에들과 협업한 올해의 조각 여섯 점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 누하동 디저트숍 레종데트르에서 고요손과 다시 만났다.
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interview 고요손
— 꼭 일 년 만에 두 번째 ‘먹는 조각’ 전시를 열었어요. 이 콘셉트의 전시를 또 한 번 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난해 처음으로 먹는 조각 전시를 열고 만족스러운 점도 아쉬운 점도 있었어요. 이 기획에 대한 미술계의 이런저런 반응을 접하기도 했고요. 이 프로젝트에 더 집중해서 심화시켜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전시는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여섯 곳의 디저트 가게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자신과 가까운 곳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작가로서 좋았습니다. 보다 다양한 분들과 소통하는 기회가 되는 셈이니까요. 올해 전시로 또 새로운 분들을 만나고 싶기도 했습니다.
— ‘먹는 조각’이라는 콘셉트는 이어가더라도, 올해 전시에서 변화를 주려고 한 부분이 있다면요.
전시를 함께하게 된 디저트숍 여섯 곳의 정체성을 최대한 유지하려 했어요. 물론 지난해에도 그렇게 진행했지만, 가게가 원래 만들어 온 디저트의 색깔을 지키려고 조금 더 노력했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번에 나온 조각 작품은 클래식한 디저트의 이미지에 가까운 것이 많아요.
— 지난해 전시처럼 이번에도 역시 각 조각 작품을 소개하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바다를 업은 바위’ ‘단면의 비밀’ ‘은빛 소원들’처럼 신비롭고 추상적인 키워드예요. 작품마다 다른 키워드가 있는데, 이 키워드는 어떻게 정했어요?
각 디저트숍이 이제까지 해 온 작업들을 참고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파티시에님들과 이야기하면서 조각에 관해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이를테면 데시데는 부부 두 분이 운영하시는데, 두 분은 원래 소설을 쓰셨다고 해요. 그 얘기를 듣고 디저트를 만드는 사람이 쓴 소설에 강한 호기심이 일었어요. 그 소설의 문장을 디저트 위에 올리는 상상을 했죠. 또 어떤 영화에는 유리병 안에 편지를 넣어서 바다에 띄워 보내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바다 위에 소설이 떠 있는 상상, 옛날에 썼던 글이 돌고 돌아서 관객 앞에 도착하는 상상을 했어요. 데시데의 키워드가 바다를 업은 바위, 이야기, 소설, 유리병 등이 된 이유죠.
진정한 조각의 의미
— 파티시에와 협업한다는 성격이 보다 짙어진 계기가 되었겠군요. 그들과 조각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을 테니까요.
조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깊이 이야기를 나눴죠. 레종데트르의 파티시에님은 조각의 단면에 대해 무척 흥미로워하셨어요. 그때 나눈 이야기를 발전시켜 레종데트르의 조각을 단면을 부각한 형태로 구상했죠. 또 미완성식탁의 파티시에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그분이 “저한테는 동그란 마카롱 자체가 그 무엇보다 조각이에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씀이 무척 와닿았어요. 저는 조각의 경계를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도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 마카롱을 얼마나 성심껏 만들고 있는지 느껴지는 말씀이에요. 파티시에의 자부심도 엿보이고요.
그 말에서 자신감, 확신과 같은 감정을 느꼈어요. 너무 멋있었죠. 자신이 빚은 완벽한 원, 그게 조각이 아닐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미완성식탁의 조각은 온전한 마카롱 형태예요. 은색의 마카롱.
— 파티시에와 대화하면서 조각의 키워드를 얻었다면, 여섯 점의 조각을 관통하는 특징을 꼽기는 쉽지 않겠군요. 파티시에님의 성격과 특징이 모두 달랐을 테니까요.
공통점은 ‘먹는 조각’이라는 것 하나뿐이었어요. 먹는 조각이라는 콘셉트가 있을 뿐 모든 조각의 세부적인 특성은 다 달라요.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다 다른 맛이 나죠.
— 이 작업에 관한 파티시에님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걱정도 하셨어요. 만들었는데 팔리지 않는다면 그것도 문제이고, 제가 구상한 것을 구현할 수 있을지도 고민하셨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부분과 파티시에님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을 공유하면서 최대한 조율했어요.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간 후로는 무척 즐겁고 재미있었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한 분은 이 작업을 하면서 디저트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시기도 했고요. 함께 작업한 분들께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정말 기뻤죠.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비결
—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건 작가님에게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겠어요.
파티시에님들께 정말 많이 배웠어요. 조각가 혹은 미술가와 비슷한 면이 있으면서도, 정말 다르기도 하셨거든요. 관객, 즉 손님들에게 ‘정말 최대한으로 좋은 것을 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느껴져서 감동했어요. 그분들이 만드는 결과물의 퀄리티는 그 마음에서 비롯하는 듯했죠. 파티시에님들과 작업하면서 큰 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 먹는 조각 전시는 곧 끝나요. 또 예정된 일이 있나요?
곧 태국 방콕에서 전시를 해요. 최대한 현지에서 조립해서 완성할 수 있는 조각을 만드는 중이에요. 무게가 가벼우면서도 부피는 크게 확장할 수 있는 재료들, 이를테면 셰이빙폼이나 인공 눈 같은 걸 두루 활용하려 해요. 깃털도 쓸 거고요. 움직이고 변화하는 조각에 계속 관심이 있어요. 저는 음악과 결합한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그런 작업을 선보이는 이유 역시 맥락은 같아요. 조각은 고정된 채 가만히 있는데, 배경음악이 달라지면 조각마저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계속 변화하는 조각을 만들고 관객이 그 변화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하는 일에 관심이 있어요. 조각이 매 순간 달라지고 있다면, 관객이 보는 조각은 오직 그 순간에만 볼 수 있는 형태인 거죠.
— 먹는 조각 역시 변화하는 조각이죠.
마음껏 다룰 수 있는 조각을 보고 자르고 먹는 경험이 어떤 매체를 대하는 시각이나 마음을 좀 더 열어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렇게 열리는 것들이 삶을 좀 더 재미있게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작가 고요손이 접시 위에 올린, ‘끝내 사라져버리는’ 여섯 점의 조각
부수고 잘라서 맛보는 조각? 전시된 조각을 만질 수 있다면? 나아가 그걸 부수고, 자르고 입에 넣는다면? 1…
〈섬세하게 쌓고 정성스레 부수는 6가지 방법 2〉
진행 디저트숍 목록
1부 10.19.~10.31. 2023
데시데, 라프라, 미완성식탁
2부 11.2.~11.15. 2023
레종데트르, 르데쎄흐, 핀즈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7길 67-2 레종데트르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