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영] 디자이너 김정현

디자인플러스는 올해 11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하 SDF)에 참가하는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릴레이 인터뷰 프로젝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 디자이너'를 진행한다.

[꼬꼬영] 디자이너 김정현

22년간 950여 명이 신진 디자이너들을 배출한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은 명실상부 디자이너의 등용문이다. 디자인플러스는 내일의 주인공이 될 이들을 릴레이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다. 두 번째 주자로 2024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참가자인 그레이쥬스 아트 스튜디오가 묻고 김정현이 답했다.

김정현이 천착하는 주제는 ‘마주함’이다. 이번 SDF에서 공개 예정인 ‘마주 체어’와 ‘마주벤치’는 이런 사유의 결과가 될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있냐?”는 지인의 질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연인들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이 디자인을 고안하게 됐다.
그레이쥬스 아트 스튜디오(이하 그): 디자이너 김정현에 관해 소개해 주세요.

김정현(이하 김): 원목을 소재로 한 가구 디자인과 제작을 공부 중인 김정현이라고 합니다. 우선 스스로를 ‘디자이너’라는 호칭으로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라 무척 설레고 긴장되네요. 아직 저 자신을 ‘이런 디자이너다’라고 정의하진 못하고 있어요. 지금은 무엇인가에 푹 빠졌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새로운 것에 매료되곤 하거든요. 지금은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디자이너인지 알아가는 단계입니다. 그럼에도 가구 디자이너 혹은 가구 제작자로서 절 소개하자면 한 마디로 재밌는 걸 추구하는 창작자 같습니다. 재미를 위해 원래 하던 공부와 일도 그만두고 이걸 시작했거든요. 실제로 대책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저를 잘 대표하는 말 같아요(웃음).

그: 올해 SDF에서 선보일 마주 체어와 마주 벤치에 얽힌 에피소드가 흥미로웠습니다. 개인적 경험을 작품으로 승화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김: 스쳐 지나갔던 일상 속 소소한 경험들이 모여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작업도 서로 다른 두 일화가 퍼즐처럼 맞춰졌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지인으로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있나?”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돌이켜보니 온전히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후 카페에서 일을 하면서 물리적으로는 함께 하지만 각자의 스마트폰에만 몰두하는 손님들을 보며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도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에서 사람들의 마주함을 유도할 수 있는 가구를 고안했어요. 물론 이 디자인 하나로 상대와 오롯이 마주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사제가 예배 전 예복을 입거나, 작업자가 작업을 하기 위해 작업복을 입는 것처럼 마주함을 끌어내려면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의도적으로 테이블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팔을 걸칠 곳이 생기는 순간 또다시 스마트폰부터 꺼내 들 것 같았거든요. 간혹 테이블이 없고, 벤치만 있는 카페들이 있는데 관찰하니 그런 공간에서 대화를 많이 하더군요. 다만 일자형 벤치는 마주보기 위해선 허리나 고개를 많이 꺾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대신 곡선형의 벤치를 디자인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더 나은 결합 방식을 고안하거나 마감 방식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지도 궁금합니다.

김: 이전까지 해왔던 공부에서 영감을 많이 얻습니다. 저는 원래 디자인이 아닌 지리학을 배웠습니다. 지리학은 일반적으로 디자인에서 말하는 공간보다 조금 더 큰 개념의 공간, 그 안의 사람 간 상호작용을 가르칩니다. 지리학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제 중 하나가 ‘경계’와 관련해 발생하는 현상들인데요, 특히 서로 다른 두 지역 사이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모호함’에 많이 주목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요소들로 인해 새로운 문화가 많이 발전하거든요. 지도상에 존재하는 물리적 경계가 현실 세계에서 아무 의미가 없을 때도 있고요. 이런 관점에서 ‘모호함’이라는 건 새로운 것을 생산하거나 기존의 것을 허물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만든 가구가 공간과 사람의 경계 혹은 사람과 사람의 경계를 허물 수 있다면 참 멋질 것 같아요.

그: 자신이 디자인한 의자와 벤치 위의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는지 상상해 본 적 있나요?

김: 그저 자연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 스마트폰을 보는 게 더 자연스러운 것이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조금 더 ‘예전 버전’의 자연스러움이 있었으면 합니다. 홀로 혹은 함께 차를 마시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그려봐요. 부스를 방문하는 분들이 잠시나마 이런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 이번 SDF에 참가를 결심한 계기와 목표가 궁금합니다.

김: 가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약간의 동기부여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마감 기한이 있는 작업을 해보고도 싶었고, 자신을 실험해보고 싶어 참가하게 됐습니다. 목표라고 하면 ‘아쉬움이 덜한 작업(전시)를 하자’입니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지만, 최대한 모든 것을 쏟아부어 아쉬움을 덜었으면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남는 아쉬움은 또 다른 성장의 발판이 되겠죠.


인터뷰 그레이쥬스
인정신이 깃든 제작 과정을 중요시하며, 철학적 깊이를 담은 작업을 선보이는 디자인 스튜디오 겸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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