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개관을 앞둔 건축가의 손길 닿은 미술관·박물관 5

오는 9월부터 내년 하반기까지 우리의 문화생활을 책임질 미술관·박물관 5

곧 개관을 앞둔 건축가의 손길 닿은 미술관·박물관 5

미술관과 박물관 건축은 ‘건축의 꽃’이라 불릴 만큼 건축가라면 죽기 전 한 번쯤 꼭 맡고 싶어 하는 로망의 프로젝트다. 다만 단순 건물의 기능을 넘어 관람객이 전시 작품과 상호작용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중요한 맥락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건축가들에게도 어려운 과제이자 깊은 고뇌를 요구하는 프로젝트로 여겨진다. 그도 그럴 것이 건축가의 공간 구성, 조명, 동선 등 건축적 의도에 따라 관람객이 작품을 어떻게 경험할지 달라지기 때문인데 그래서일까. 미술관·박물관은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고 지역 문화와 역사를 반영하는 공간인 만큼 유능하고 창의적인 건축가와의 긴밀한 협업이 더욱더 중요해졌다. 시민의 예술적 경험과 사회적 교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2024 & 2025 개관하는 미술관과 박물관 5곳을 소개한다.


대구 간송미술관

건축 최문규, 가아 건축사무소
개관일 2024년 9월 예정

ⓒ 2024 Kim Yongkwan

대구 간송미술관은 2년여 기간의 공사를 마치고 9월 개관 전 오픈을 앞두고 있다. 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에 전 재산을 바쳐 문화재를 사들인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세운 곳으로 국내 최초의 사립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울 성북구 본관에 이어 첫 번째 분관 대구에 문을 연다는 소식. 2015년 간송미술관과 대구시가 미술관 건립·운영에 관한 협약을 체결한지 9년여 만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 규모의 대구 간송미술관 설계는 공모전에서 페르난도 메니스, 알바로 시자 등 해외의 유명 건축가를 제치고 최문규 건축가와 기아건축사무소 건축팀이 당선되었다.

ⓒ 2024 Kim Yongkwan

최문규 건축가는 안동 도산서원 계단에서 착안해 경사진 지반을 살림으로써 자연과 어우러진 미술관을 완성했다. 대구 대공원 지형에 맞게 자연환경의 훼손을 최소화하고 자연에 녹아드는 가장 한국적인 미술관을 구현하고자 노력한 것. 유형별 전시에 적합한 공간을 배치함으로써 대구간송미술관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은 최문규 건축가. 한국의 전통 요소를 건축물 곳곳에 배치했는데, 계단식 기단과 분절된 터를 적용해 작은 집을 지형에 맞게 나눠 설계했다. 또한 안과 밖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한옥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미술관 역시 내부와 자연을 잇는 장치를 사용했다. 건물 내외부에 박석 마당과 중정, 수변 공간을 배치해 건물과 자연을 연결하고, 미술관 진입로와 입구에는 간송의 상징과도 같은 소나무를 심었다.

ⓒ 2024 Kim Yongkwan

박희준 대구시 문화 체육 관광국장은 “국제공모를 통해 우수한 작품이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된 만큼 대구 간송미술관을 지역을 넘어 국내를 대표하는 문화 랜드마크로 건립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만큼 대구 간송미술관이 대구 관광과 문화 산업 증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해 보아도 좋겠다.


화성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평화기념관

건축 마리오 보타(Mario Botta)
개관일 2024년 12월 예정

남양성모성지 성당에 이어 마리오 보타의 두 번째 건축물이 들어선 화성. 마리오 보타는 스위스 출생의 건축가로 ‘영혼의 건축가’라 불린다. 종교 건축으로 유명하며 붉은 벽돌, 콘크리트 블록 등 대중적이고 토착적인 재료를 즐겨 사용하는 것이 그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특히 그는 사각형, 원형, 삼각형 등 기하학적인 도형을 중심으로 건축물을 설계하는데 매향리 평화기념관 역시 그의 건축기법이 두드러지는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건축물은 2021년에 완공되었으나 개관이 계속 미뤄지다 드디어 2024년 12월 개관 예정 소식을 알렸다.

©Mario Botta Architetti

평화기념관이 자리한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은 미 공군의 폭격장으로 사용되며 휴전 후에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사격장으로 사용되었다. 사격장 폐쇄 이후 주민들의 노력으로 매향리 갯벌에는 다양한 생물과 철새들이 날아들어 아름다운 갯벌로 회복되는 중이다. 역사를 잊기보다 역사와 의미를 보존하고 지역주민들을 치유할 수 있는 평화생태공원으로 조성된 것. 이러한 지리적 배경을 고려하며 마리오 보타는 ‘바다’와 ‘아픔’에서 영감을 얻어 이곳 매향리 평화기념관을 설계했으며, 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구성되었고 바로 옆에는 높이 46m의 하얀 전망대가 자리한다.


국립인천해양박물관

건축 디엔비건축사사무소
개관일 2024년 12월 예정

©디엔비건축사사무소

2024년 12월 수도권 최초 국립해양문화시설인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이 개관한다. 공항과 항구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드나드는 지역으로 서해바다의 풍경과 인천항을 오가는 선박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는 다양성의 도시, 인천. 인천 월미도에 해안가와 월미산, 그리고 월미도의 스카이라인에 순응하는 디자인을 적용하고 동시에 상징성을 가지는 전면부 디자인을 적용해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해양 박물관이 자리할 예정이다. 박물관은 크게 유선형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는 파도의 흐름을 묘사한 것으로 부지의 모서리에 위치해 한 면 전체가 바다를 면하고 있는 만큼 주변 환경과 유연하게 잘 어우러지며, 또한 바다의 거센 해풍을 막아주는 역할까지 의도했다.

©디엔비건축사사무소

박물관 북측에 배치된 문화의 거리와 바다를 연계할 수 있도록 교육·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대강당과 도서관 등 문화시설은 1층에 배치하고 바다와 등대 길을 산책하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외부공간을 조성했다. 이와 같은 동선의 연계를 통해 메인 로비에서 전망 카페에 이르는 입체적인 동선을 완성할 예정이다.

©디엔비건축사사무소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건축 더시스템랩건축사사무소
개관일 2025년 7월 예정

©더시스템랩건축사사무소

서울시립미술관의 신규 분관 서서울미술관이 금천구에 신축된다. 서울 서남권의 첫 공립미술관으로 금나래중앙공원 내 부지에 내년 7월 시민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공사가 한창이다. 서서울미술관은 국제지명 설계공모를 통해 설계안이 당선되었는데 원오원 아키텍츠의 최욱, 에스케이엠 건축사사무소의 민성진, 지아쿤 아키텍츠의 리우 지아쿤, 리글러 리베 아키텍텐의 로저리베가 참여했으며 더시스템랩건축사사무소 김찬중 건축가의 설계안이 최종 당선되었다.

전반적인 건축 디자인은 공원 내에 자리한 미술관답게 자연친화적인 설계로 진행되었다. 김찬중 건축가는 금나래 공원의 기존 보행로에 예술의 레이어가 덧입혀지는 투명한 ‘스트리트형 미술관’을 제안했다. 공원의 중심 보행로를 따라 미술관의 다양한 기능들을 개방형으로 배치해 미술관 주변을 걷기만 해도 미술품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의도다. 마치 쇼윈도를 보듯 매일 예술을 접하게 되는 일상 속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건축가는 빠르게 진화하는 현시대에 맞춰 미술관은 어떻게 진화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찾고자 했는데, 이에 대한 해답으로 미술관과 지역 커뮤니티의 호흡에 주목했다.

©더시스템랩건축사사무소

금나래 공원의 중앙보행로는 지역주민이 등하교, 출퇴근하는 일상 속 일부 공간이다. 투명한 스트리트형 미술관은 공원에 전정과 후정을 만들고, 사이사이 형성된 기존 보행로와 창을 통해 보이는 미술관의 프로그램들이 보행자와 미술관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3개의 메인 갤러리는 지하에 구성되어 있으나 캔틸레버 수벽을 이용한 연속된 콜로네이드와 같은 반외부 공간으로 인해 지역주민들은 일상 속에서 예술 활동을 접하게 된다. 서서울미술관은 ‘공원 속 미래형 미술관’으로 시립미술관 최초의 미디어아트 특화 미술관이 될 예정이다. 내부에는 미디어아트 전시에 적합한 가변 공간으로 구성되고, 시민이 예술과 교감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한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이다.

©더시스템랩건축사사무소

서울영화센터

건축 매스스터디스
개관일 2025년 말 예정

사진 제공 : 매스스터디스

올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주인공 매스스터디스 조민석 건축가의 또 하나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공개될 예정이다. 바로 한국 영화 역사 중심지인 서울 충무로에 자리한 서울영화센터. 독립·예술·고전영화 전용관과 영화 박물관이 한데 들어선다. 건물 내에 대/중/소 규모의 상영관을 만들어 일반 극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예술 영화 상영을 통해 독립·예술 영화와 시민과의 접점을 늘린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

조민석 건축가는 2017년 국제지명 설계공모를 통해 해당 프로젝트 설계의 기회를 잡았는데 그 과정 역시 만만치 않았다. 더시스템랩건축사사무소의 김찬중, Kengo Kuma & Associates의 쿠마 켄고 등 5명의 유명 건축가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 매스스터디스 조민석 건축가의 설계안 ‘MONTAGE 4:5’가 당선된 것.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 “할리우드발 상업영화에서 OTT까지 갈수록 한국의 독립영화들이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되고 있다. 와해되는 문화 생태계를 지탱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긴 시간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라며 해당 프로젝트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진 제공 : 매스스터디스

건축가는 지하 3층부터 지상 10층에 이르는 규모의 수직적인 공간 구성을 제안했다. 다만 아파트처럼 사유화된 고층건물이 아닌, 최대한의 공공성을 가진 타워로 만들고자 했다.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내포해 친밀함을 가진 고층 건물을 지향한 것. 건축물은 크게 네 개의 열린 공간과 다섯 개의 박스로 구성되었다. 5개의 박스는 영화 감상을 위한 공간으로 완성했고, 박스 사이 열린 공간은 로비와 강의실, 도서관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밝음과 어두움이 층별로 교차하면서 높이에 따라 다양한 조망을 갖는데 이는 장면 장면이 쌓여 이야기를 만드는 영화처럼 건축물 역시 층마다 다른 장면으로 연출했다.

조민석 건축가는 해당 프로젝트 당선 이후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한국 독립 영화를 향한 우리의 연애편지가 잘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는 독립 예술 영화를 사랑하는 애호가로 해당 설계안을 구상할 때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담아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과거에 비디오 대여점과 필름 아카이브가 즐비하고 영화배우와 제작자가 살고 있는 동네에 살았었는데 ‘영화로 이루어진 문화 생태계’를 소개하며 이를 서울영화센터에 담아내고자 했다. 조민석 건축가는 도시 맥락을 무시하지 않고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건축물을 완성하기로 잘 알려져 있는만큼 그의 손길에 완성될 서울영화센터 개관이 또 한 번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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