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렛 애프터 섹스가 선택한 한국 사진작가, 민병헌
스트레이트 사진에 담긴 민병헌 작가의 짙은 감정들
8월의 어느 여름날, 한국 사진계를 대표하는 작가 민병헌을 만나기 위해 군산으로 향했다. 100년이 넘은 적산가옥을 작업실로 삼은 거처에서 그를 만났다. 40년 세월 동안 민병헌이 고수해온 흑백사진 속에서 찾은 흑과 백의 미묘한 동거. 그리고 그 사이 경계를 비집고 얼굴을 내민 ‘민병헌 그레이’가 지금의 그를 완성했음을. 지난 7월 미국 텍사스 출신 드림팝 밴드 ‘시가렛 애프터 섹스(Cigarettes After Sex)’가 세 번째 앨범 ‘X’s’ 커버에 민병헌의 작품을 사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민병헌과 시가렛 애프터 섹스는 국적도, 나이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지점은 어딘가 닮아 보인다.
Interview with
민병헌 사진작가
민병헌 작가는 40여년간 흑백의 스트레이트 사진을 지속하며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했다. 촬영부터 인화까지 모든 프로세스에서 타인의 개입은 철저히 배제하며, 아날로그 방식의 젤라틴 실버 프린트를 고수한다. 또한 처음 기록한 이미지에는 그 어떤 인위적인 조작이나 보정을 하지 않는다. 이처럼 민병헌의 미적 세계에는 엄격한 질서와 세밀하게 통제된 ‘戒律(계율)’이 존재한다. 민병헌은 자신만의 직관적인 감성과 시선을 은은한 회색조의 프린트를 통해 표현하며 ‘민병헌 그레이(grey)’라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했다. 대표작으로는 ‘Deep Fog’와 ‘River’, ‘Snow Land’, ‘Waterfall’, ‘Body’ 등의 연작 시리즈가 있으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시카고 현대 미술관, 휴스턴 미술관, 프랑스 국립조형예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16년 군산으로 작업실을 옮겼습니다. 100년 넘은 옛 일본 적산가옥을 고치고 수리해 지금의 집이자 작가님의 작업실로 완성하셨죠. 군산에서 보내는 요즘의 근황은 어떠한가요?
초창기나 지금이나 동일해요. 제 성격상 교류가 없고 즉흥적이죠. 무언가에 꽂히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성격이거든요. 후회도 많고 탈도 많고요. 사는 방식은 늘 똑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많아요. 외롭고 힘듦에도 그게 낫고요. 작업 또한 누구한테 맡긴 적 없이 늘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하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야 할 이유도 없고. 아날로그, 그게 재미있고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어요. 혼자 있어도 심심할 겨를이 없어요. 사진 셀렉 해서 인화하고 샘플 작업해야 하고…. 그래도 감사한 건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한 덕분에 가끔 불러주는 분들이 있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 해왔는데 안 불러주는 것도 슬픈 일이잖아요. 그리고 요즘은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신작이 있어요. 거의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은 신작이에요. 아직 결정은 안됐지만 갤러리 두 곳이랑 이야기 중이고 그중 한 곳에서 내년에 신작을 공개하려고요.
신작이 나온다니 벌써 기대되는데요.
저는 주로 자연 아니면 인체를 찍어왔는데, 사실은 이 둘을 동일시 봅니다. 자연도 사람처럼, 사람도 자연처럼. 이번 작업도 비슷한 작업이긴 하나 대상 자체는 그동안 했던 것들과는 완전히 달라요. 신작을 준비하면서 저 스스로 흥분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나중에 초대해드릴 테니 전시 보러 오세요.
꼭 가겠습니다. 40여 년 전 작가님이 사진 찍는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습니다.
저는 사진과 관련된 그 어떤 교육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취미로 시작했다는 말이 맞죠. 언젠가 불현듯 취미로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고 남동생에게 그걸 말하니 자신이 열심히 번 돈으로 취미 생활하라며 사 준 카메라가 시작이었어요. 아마추어로 사진을 시작했다는 건 그 당시 엄청난 소외감을 안겨줬어요. 딱 제 세대가 한국 사진과 1세대였어요. 저희 윗세대로는 사진과라는 것 자체가 없었죠. 어떤 친구들은 사진과를 졸업하고 유학도 다녀와서 교수를 하는데 그에 반해 저는 혼자 독학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열등감, 소외감이 있었죠. 초기에는 그런 부분에 대해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고요. 내 성격이 원체 사람들과 섞이는 걸 안 좋아하니 이런 것들이 똘똘 뭉쳐 ‘아, 앞날이 참 막막하다’ 딱 그 심정이었어요.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제 작업을 꾸준히 하니까 크고 작은 일들이 저에게도 생기더군요. 어디 가서 강의를 하거나, 커머셜 작업을 하지 않아도 순수 내 작업만으로도 먹고사는 것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굉장히 느리게 아주 천천히 그러한 쪽으로 나아져 갔어요. 그러면서 열등감, 소외감이 안개 걷히듯 사그라들더군요.
돌이켜 보면 독학을 결심했던 당시 작가님에게 사진이 안겨준 강렬함은 무엇이었나요?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집 한 편에 암실까지 만들어 놓고 취미가 사진이라며 자랑을 하더라고요. 그걸 보는데 마음에 탁, 하고 무언가 불이 지펴지더라고요. 그 이후에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는 동안에도 마음 한구석에 친구 집에 갔던 날 지펴진 사진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었어요. 카메라를 갖자마자 홀로 엄청난 연습과 시행착오를 겪어갔고, 다행히도 제가 터득하는 속도가 빨랐어요. 스스로도 신기한 게 저는 어렸을 적부터 한 가지 일을 꾸준히 끝까지 이어가 본 적이 없어요. 쉽게 질려서요. 근데 이 일은 하면 할수록 더 재미가 붙더라고요. 그게 지금까지 오게 된 동력이었네요.
40여년간 흑백의 스트레이트 사진을 지속하며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오셨어요. 아날로그 방식의 젤라틴 실버 프린트를 고수하고 계시지만 초창기에는 컬러 사진도 찍으셨다고요.
처음에는 컬러, 흑백 다 찍었어요. 컬러사진으로부터 와닿는 요소들도 분명 있었죠. 제가 남한테는 사진 작업을 못 맡기는 성격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필름을 찍으면 현상소에 갖다 맡기는데 저는 집에서 직접 인화를 했어요. 인화를 해보면 아시겠지만 컬러 인화 작업이 훨씬 어렵고, 약품 값이 훨씬 더 비싸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제가 돈이 어디 있겠어요. 컬러를 인화하려니 기술적인 부분이나 경제적인 부분이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이런 부분도 있었고, 맨 처음 친구의 흑백사진을 보고 사진을 시작했던 터라 컬러는 과감히 포기하게 된 거죠.
언제 처음 ‘흑백사진의 길로 쭉 걸어가도 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기억나시나요?
흑백사진이라 하면 사람들은 그저 검은색과 흰색을 생각해요. 소위 콘트라스트(Contrast)라는 게 있잖아요. 옛날에는 흑과 백의 강도가 무조건 강해야 한다고들 했었어요. 마치 정해진 규칙처럼 흑백사진의 톤이 약하면 쳐다보지도 않았죠. 해가 쨍한 날 찍어야 좋은 사진이 나온다고 주입했으니까요. 아마추어 시절의 나는 그대로 따라 했었고요. 말했듯이 나는 후작업을 남한테 안 맡기고 직접 하는데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흑백 사진이라고 해서 왜 꼭 대비가 강해야만 하지?’ 스스로 그런 생각이 든 거죠. 이러한 생각을 스스로 했다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때부터 흑백사진의 오묘하고 미묘한 감성에 집착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내가 짙은 안갯속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해봅시다. 이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면 사진이 흐리게 안 나오게 하기 위해 작업을 하겠죠? 하지만 내가 직접 작업을 하면 내가 이 사진을 찍을 때 당시 실제 풍경과 그때의 내 감정선을 더듬어 가면서 실제 장면과 최대한 가깝게 인화할 수가 있단 말이죠. 그러다 보니까 나의 사진은 점점 더 흐려지더라는 거예요. 기자님은 무엇이 회색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나요? 회색 빛깔을 회색이라고 부르기로 사람들이 약속을 했을 뿐이지 굉장히 미묘하다는 거예요. 그 미묘한 지점을 암실에서 나 홀로 꺼집어내는 시간. 굉장히 힘들긴 하지만 그 과정을 즐기는 거죠. 맨 처음 말했듯 모든 것은 반복에 반복에 또 반복이에요. 이 되풀이하는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 시절 작가님에게 작업적・기술적으로 영감이 되었던 사진작가가 있을까요?
아마추어로 시작한 나를 양쪽에서 이끌어 주신 두 분이 있어요. 한 분은 사진가로서 폭넓은 시각을 갖게 해주셨어요. 사진도 분야가 있잖아요. 파인아트, 다큐멘터리, 광고, 패션 등등 제 시각을 다방면으로 넓혀주셨어요. 또 한 분은 그렇게 다양한 사진 분야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고집하며 끝까지 가져가야 한다는 걸 알려주셨고요. 정신적인 부분을 상당히 많이 조언을 해주셨죠.
작가님이 진행하신 누드 작업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떻게 구상하고 진행한 시리즈였나요?
누드는 초창기부터 찍었는데 정리가 안 된 상태로 찍다가 말다가를 반복했어요. 누드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죠. 사람과 함께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내가 찍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찍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다 1990년대에 안개 시리즈를 진행하는 중간중간 자꾸 사람이 떠오르더라고요. 언젠가 사람을 안갯속에서 보는 듯한 기분으로 시리즈를 진행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2010년에 안갯속에 묻힌 듯 보이는 인물 작업을 진행했죠.
지난 7월 발매된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3집 앨범에 작가님 작품이 사용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어느 날 연락이 왔더라고요. 누드 작품 중 두 여성이 키스하는 사진을 자신들의 앨범 커버로 작품을 쓰고 싶다고요. 그러고 작년 2월 한국 콘서트에 초대해 줘 인사도 나누었어요. 사실 저는 시가렛 애프터 섹스라는 밴드를 잘 몰랐거든요. 인연이 닿고 보니 그들의 음악이 나와 어딘가 닮아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원래도 앨범 커버에 신경을 많이 써서 이전에는 만 레이(Man Ray), 랄프 깁슨(Ralph Gibson)의 작품을 썼다고 하고요.
작가님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안개 낀 듯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표현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시는지, 혹은 작가님만의 기술적인 방법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종종 이런 질문을 받아요. 제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스트레이트 사진이에요. 찍히는 그대로 나오는 즉물 사진, 리얼리티란 말이죠. 저는 그 지점에서 이 일의 매력을 느끼는 거예요. 더 중요한 건 내 마음속 감성에 따라 색, 톤 앤 매너, 콘트라스트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겁니다. 거기에는 특별한 기법이 필요하지 않아요. 전봇대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여름의 전봇대, 겨울의 전봇대, 흐린 날의 전봇대, 눈 오는 날의 전봇대 다 다르단 말이죠. 그러면 나는 그 전봇대를 볼 때 무슨 감정으로 봤느냐는 거죠. 이때의 감정이 가장 중요해요.
사진이라는 게 찍는 건 쉽지만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냥 찍는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암실에 들어가서 ‘어, 이날의 내 감정은 이러지 않았는데’ ‘어, 이것도 아닌데’의 과정을 반복해 마침내 그날의 내 감정 선과 동일선상의 이미지를 찾아내는 작업들을 하고 있는 거고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밤, 위스키 한 잔 마시면서 옛 애인이든 여행지든 무언가를 떠올리며 직접 가사를 쓰는 거예요. 그 가사로 내 음악을 만들어 부르는 게 났지 않겠어요. 생판 모르는 사람의 노래를 받아서 부르는 것보다는요.
작품을 인화한 뒤 스파팅(Spotting)이라는 후작업을 거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스파팅은 어떤 작업인가요?
매우 중요한 작업인데요. 디지털의 경우 사진에 잡티가 있거나 문제가 있으면 보정을 하잖아요. 똑같은 개념이에요. 필름 안에는 미세 먼지가 아주 많아서 아무리 털어내도 인화할 때 어쩔 수 없이 먼지의 흔적이 하얗게 남아요. 그럼 그 부분을 물감에 붓을 찍어 일일이 손으로 수작업 하는 것이죠.
작가님의 작업 성향을 미루어보았을 때 ‘사람들이 내 작품을 이렇게 봐주길 바라’라는 것이 없고 각자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길 바라실 것 같아요.
100% 맞아요. 요즘은 영상 하나를 만들어도 환경, 정치, 젠더 등 어떤 메시지를 꼭 담아서 보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생각해 보면 옛날에 반 고흐가 캔버스 위에 화병이나 밤하늘의 별을 그려 넣었는데 그게 꼭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나요? 그냥 어떤 장면을 담기 위해 그린 거란 말이에요. 제 작업은 메시지가 없어요. 넣고 싶지도 않고요. 사람이 됐든 자연이 됐든 그냥 내가 보는 아름다움일 뿐이야. 내가 보는 아름다움이죠. 나는 대상에 대한 아름다움을 찾고 싶은 거예요. 남들이 보기에 그게 추해 보이든 말든 나랑은 상관이 없죠. 눈밭에 나가서 사진을 찍었을 때는 정말 온몸에 소름이 돋거든요.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아름다움을 느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나는 내 작업에 어떤 메시지도 넣고 싶지 않아요. 옛날에도 오늘날에도 오로지 내가 보는 아름다움이다.
긴 시간 한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셨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작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사실은 제가 하는 일들이 굉장히 단순한 작업이잖아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완벽하다고 하지만, 저 스스로는 여전히 부족한 것만 보이는 거예요. 미숙함의 연속인 거죠. 그걸 보완하면 다시 또 미숙함이 보이더라고요. 그럼 그걸 또 보완하려고 계속 노력하는 거예요. 그게 저의 원동력인 것 같아요.
거실 공간에 LP와 CD가 빼곡하게 채워져있어요. 평소 음악을 즐겨 들으신다고요. 요즘 자주 듣는 음악이 있다면요?
가을이 오면 듣는 음악이 있어요. 가을이 깊어지면 항상 꺼내듣는 음악이죠. 미국 싱어송라이터 미키 뉴베리(Mickey Newbury)의 포크 음악. 계속 듣고 있으면 우울감이 저를 확 감싸는데 그 맛에 계속 꺼내듣게 돼요.
앞으로 작가님의 작업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예정인가요?
날이 갈수록 몸의 나이가 드는 게 느껴져요. 촬영할 때 초점 맞추는 것도 예전만큼 쉽지 않고 시간이 더 오래 걸려요. 혼자 암실에서 인화하는 작업도 고되고요.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신체적 한계를 마주하면서 나도 언젠간 디지털을 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요즘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사진 찍는 일을 그만두는 것 밖에는 선택지가 없겠죠. 힘이 닿는 데까지 작업을 이어갈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