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들어선 대형 수영장? 엘름그린 & 드라그셋
아모레퍼시픽미술관 2024 하반기 현대 미술 기획전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이 상반기 전시 <스티븐 해링턴: 스테이 멜로>의 막을 내리고 뒤이어 새로운 전시로 돌아왔다. 북유럽 출신의 세계적인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림&드라그셋(Elmgreen & Dragset)이 선보이는 <Spaces>. 두 사람의 30년 협업을 기념해 아티스트의 공간 작업을 한자리에 조명하는 전시로 아시아 최대 규모로 선보인다. 실제 크기에 버금가는 물이 빠진 텅 빈 대형 수영장과 레스토랑, 주방, 작가 아틀리에 등이 미술관 안에 들어섰다.
국제적인 아티스트 듀오 엘름그린&드라그셋은 전시 제작과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재정의했다. 초기 작품을 들여다 보면 대부분이 전시 공간의 건축과 직접 관련이 있었고 오늘날까지 꾸준히 사람들 일상에 가깝고 친숙한 장면을 재현하는 대규모 몰입형 설치물에 집중해왔다. 두 작가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예술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기존의 전시 형식에 도전하고 우리의 공적 및 사적 삶을 형성하는 장소와 사물에 내재된 근본적인 가치를 발굴하는 중이다. 사막 한 복판에 설치한 프라다 매장 Prada Marfa(2005)와 뉴욕 록펠러센터 앞에 설치된 Van Gogh’s Ear(2016)이 이들의 대표작.
이번 <Spaces>에서는 기존 작품과 신작을 결합해 수영장, 집, 레스토랑, 주방, 작가 아틀리에 등 총 5곳의 대규모 공간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각 공간은 소셜미디어 상의 불특정 다수의 이미지를 스크롤하듯 불연속적으로 펼쳐지는데,이는 일상생활이 디지털과 물리 영역 사이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 탐구하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다가온다. 관람객은 공간 곳곳을 돌아다니며 숨겨진 단서들을 찾고 조합해 작가들이 시작한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다.
관람객은 첫 번째 전시실에서 거실, 주방, 침실, 화장실 등을 갖춘 140제곱미터 규모의 집을 살펴보며 가상의 거주자에 대한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두 번째 전시실에서는 대형 수영장을 만나게 된다. 물이 빠진 수영장은 작가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모티프로 오늘날 공공장소의 쇠퇴와 공동체의 상실을 암시한다. 레스토랑과 다름없는 설치 작품인 ‘더 클라우드(The Cloud)’도 만나볼 수 있다. 여기서 관람객은 홀에 앉아 영상 통화 중인 사람 형상의 작품처럼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마주하게 되며, 다음 전시실에서는 실험실 같은 주방, 작품 제작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아틀리에 공간으로 이어진다.
엘름그린&드라그셋은 과거에도 ‘집’, ‘가정’이라는 주제를 다뤄왔다. 대표적으로는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을 집으로 전환한 전시 ‘수집가들(The Collectors, 2009)’,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뮤지엄 내부를 건축가의 집으로 재구성한 ‘내일(Tomorrow, 2012)’ 이 있다. 관람객은 거실, 주방, 침실, 서재, 화장실까지 갖춘 완전한 규모의 집 안에서 다양한 요소를 살펴보며 가상의 거주자에 대한 단서를 찾아보는 경험을 누릴 수 있다.
물이 빠진 수영장은 듀오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모티프로 오늘날 공공장소의 쇠퇴와 공동체의 상실을 암시한다. 수영장을 무대로 고대 작품을 연상시키는 백색의 조각들이 등장하여 현대의 남성성과 고립 및 성장이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조각들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각자가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해 있으며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
‘더 클라우드(The Cloud)’는 레스토랑으로, 실제 운영 중인 모습과 다름없는 공간 설치 작품이다. 관람객은 테이블 사이를 거닐며, 영상 통화 중인 사람 형상의 작품을 비롯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위치한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그 다음 이어지는 ‘산업용 주방’과 ‘실험실’이라는 동떨어져 보이는 두 장소의 대조는 화학 기반 요리법인 ‘분자 요리학’과 현대 식품 시스템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기후 변화, 인구 증가, 자연 자원의 감소 속에서 실험실 과학에 더욱 의존하고 있는 현세태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들은 전시 끝에 이르러, 일상 속 공간이 아니라 흰 벽으로 둘러싸인 작업실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거울로 이루어진 캔버스는 인물 조각을 비롯해 방문자 모두와 주변 공간을 반사함으로써 조각, 회화, 작품, 공간, 관람객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두 개의 동일한 세면대와 거울,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길고 구불구불한 강철 배수관으로 구성된 조각. 2004년 시작된 ‘결혼’ 연작의 일환이다. ‘헤어지다’에서는 감정적 연결이 해소되기 전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통찰력 있게 조명한다. 배수관은 파트너 간의 친밀함과 감정적인 결합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표현했다.
이번 <Spaces>의 전시공간 시퀀스는 관람객이 전시 공간을 넘나들며 각 공간이 전하는 스토리를 실마리 삼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수많은 서사 속에 길을 잃을 수도, 자신만의 정답을 찾을 수도 있는 전시 공간으로 작가가 제시하는 일상적인 세계에 대한 독창적 해석 속 익숙한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특별한 경험을 즐겨보자. 전시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2025년 2월 2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