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영] 아직 신예원

디자인플러스는 올해 11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하 SDF)에 참가하는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릴레이 인터뷰 프로젝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 디자이너'를 진행한다.

[꼬꼬영] 아직 신예원

22년간 950여 명이 신진 디자이너들을 배출한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은 명실상부 디자이너의 등용문이다. 디자인플러스는 내일의 주인공이 될 이들을 릴레이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다. 열다섯 번째 주자로 2024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참가자인 이다윤이 묻고 ‘아직azic’ 신예원이 답했다.

20세기의 심벌에서 21세기의 원흉으로. 플라스틱의 운명은 꽤 기구하다. 그런데 과연 이 소재를 둘러싼 논쟁이 꼭 선악의 잣대로만 거론되어야 할까? 디자이너 신예원은 성형이 가능한 폴리카프로락톤(Polycaprolactone; PCL)의 연구를 통해 제3의 길을 모색한다. 가구와 조명에서 그는 균일하고 고정된 소재로서의 플라스틱을 재해석해 불규칙하고 풍부한 공예의 소재로 삼는다. cargocollective.com/yeah1
이다윤(이하 이): 수작업으로 성형 가능한 플라스틱 소재를 활용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죠. 이 소재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부터 들어볼까요?

신예원(이하 신): 학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대학원에서 가구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공예 분야에 대한 이해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만져지는 것들, 즉 물리적인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현대사회에서 플라스틱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잖아요. 그런데 매끈한 미감과 용이한 대량 생산으로 사랑받는 플라스틱이 공예 재료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환경적이지 않고 싸구려라는 인식이 큰 탓이죠. 공예에 흠미를 느껴 다양한 공예 재료를 탐구하게 된 저는 동시에 한 논문에서 열가소성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프로락톤(PCL)이라는 소재를 알게 되었어요. 공예와 산업 재료의 경계를 허물면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작품도 공예품처럼 오랫동안 소중히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이: 그렇다면 기존 재료들과 차별화되는 폴리카프로락톤의 특성은 무엇인가요?

신: 폴리카프로락톤은 생분해성과 가소성 모두 뛰어난 플라스틱으로, 인체에 무해하고 약 60℃에서 손으로 성형할 수 있어 공예 재료로의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또한 알갱이를 녹이고 뭉치면 원하는 크기와 형태로 제작할 수 있고, 물감을 섞어 다양한 색으로 조색도 가능하죠. 재료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기 때문에 별도의 마감재도 요구하지 않아요. 저는 수공예 제작방식의 효과를 극대화하기위해 작은 덩어리를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했습니다. 작은 색상 덩어리들로 질감을 쌓았는데 개별 색채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혼합되어 보이는 색채분할 효과를 기대했습니다. 또한 재료가 상온에서 잘 굳고 내구성도 좋기 때문에 구조체로도 기능합니다. 그래서 현재는 유연한 pvc자바라에 폴리카프로락톤을 붙여 형태를 고정하고 있어요. 구조체인 동시에 장식으로도 기능하죠. 이를 통해 산업 재료의 익숙한 패턴을 장식적으로 이용해 복제되는 것들을 공예적으로 박제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인 재료가 가진 직관적인 느낌을 이용하되 전혀 다른 기능으로 재창조하는 것이죠.

이: ‘혼돈의 가장자리’라는 이번 전시의 콘셉트도 흥미롭습니다.

신: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란 균형과 혼돈,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선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저는 균일하고 고정적인 재료로 인식되어 온 플라스틱을 불확실성의 재료로 사용합니다. 또한 전형적인 형태나 산업재료의 패턴 위에 플라스틱을 붙이고 있어요. 균형상태도 혼돈상태도 아닌 임계에서 새로운 진화가 발생하듯, 본 작업을 통해 규칙성의 세계를 불규칙하게 박제함으로써 풍부하고 새로운 형태의 공예로의 진화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 손으로 만드는 공예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신: 공예의 매력은 ‘굳이’라고 생각해요. 조금 울퉁불퉁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물건에 존재하는 노동을 굳이 보여주는 거죠. 사실 물건은 물건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재료와 노동이 들죠. 그것을 망각하면 남용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을 들여 완성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도 해요. 요즘에는 뭐든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만으로 세상이 이루어져 있는 느낌마저 드는데, 단순한 재료들이 온전한 사물로 ‘승격’되는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게 꽤 즐겁습니다. 저는 물건들을 사랑하는 맥시멀리스트입니다. 직접 만든 것들은 진정으로 소유하는 느낌이 들어요.

이: 앞으로 디자이너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아직’이 추구하는 디자인의 궁극적인 방향도 궁금하네요.

신: 주변의 잘 안 보이는 것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습니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파울 클레(Paul Klee)의 말처럼 기존 재료의 특성을 바꿔 다룸으로써 익숙한 물질세계를 가시화하고 싶어요. 사물의 기존 용도를 비틀고 싶고,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고 싶습니다. 좀 기괴하고 장난스러운 느낌을 좋아해요. 또 색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일상의 재미란 말은 너무 진부하지만, 그래도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궁극적인 방향은 아직 못 정했어요. 아니, 사실 닫힌 결말보다 알 수 없는 변화 쪽이 제게 원동력이기도 한 것 같아요. 계속 공부하고 변화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작은 영감이라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 이다윤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 아센테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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