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한 디자이너, 아르나우트 다익스트라 헬링하
초저출산율 시대에도 국내 프리미엄 유아용품 시장은 활황이다. 업계 전반은 흔들릴지라도 고가 제품 매출로 거뜬히 상승 곡선을 그린다. 아이 한 명을 위해 더 비싸고 더 좋은 것에 기꺼이 투자하는 소비층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유아차는 안전한 이동을 담보해야 하기에 아낌없이 지갑을 열게 되는 제품군이다. 그 선두에 있는 브랜드 ‘부가부’가 올해 탄생 25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제품 혁신 디렉터이자 수석 디자이너인 아르나우트 다익스트라 헬링하Aernout Dijkstra Hellinga를 만났다.
부가부가 가장 중시하는 디자인 원칙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제품, 자녀는 물론 부모의 삶도 풍성해지는 제품,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제품을 설계하는 것이다. 부가부에서 일하기 전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근무하며 키보드를 디자인한 적이 있다. 당시 고객사는 해당 제품을 연간 수백만 대씩 생산했다. 나는 디자이너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절감했다. 오늘날 디자이너는 단순히 제품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다. 디자인 너머의 가치를 전달해야 한다. 부가부의 제품 생산량이 비교적 적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량 생산을 하다 보면 디자이너의 뜻을 관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부가부는 디자이너가 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소비자와 친밀해질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다.
제품을 많이 판매하는 일보다 오래 사용하도록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더욱 신뢰가 간다.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는 규정을 준수하고 안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테스트가 있다. 우리는 이 과정에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제품 요소요소의 모든 기능을 고려한 ‘사용 빈도 표’를 만들고 각각 5년, 10년, 15년, 20년 주기로 항목별 사용 가능량을 체크한다. 부가부의 기준에 부합하는 품질과 완성도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디자이너, 엔지니어, 마케터가 한 팀을 이룬다고 들었다. 팀 간 협업 체계가 어떻게 되나?
프로젝트 단위로 팀을 꾸린다. 디자이너, 엔지니어, 마케터가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각자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되 상시 디자인을 논의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스케치를 공유하고, 기술적으로 이를 구현할 수 있는지 확인하며, 그 과정에서 방향성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런 식의 상호 작용은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유아차는 주행자가 승차감을 느끼지 못하는 모빌리티다. 적정한 승차감을 어떻게 구현하는지 궁금하다.
그렇다. 유아차는 아이와 부모가 모두 사용자다. 유아차 설계가 더욱 어려운 이유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고자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주행자와 탑승자의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인체 공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력한다. 핸들 바의 높이부터 짐칸의 넓이, 아이가 앉거나 움직이기 좋은 각도, 나아가 아동 성장 발달 단계까지 고려한다. 사실 제일 좋은 것은 꼭 필요한 만큼만 아이가 유아차에 앉고, 그 외의 시간에는 함께 걷고 움직이며 근육을 발달시키는 거다. 인간이 움직이지 않고 자동차 안에만 앉아 있으면 결코 건강할 수 없지 않나. 물론 아이가 유아차 밖으로 나오는 순간 부모의 삶은 더 힘들어진다.(웃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부가부를 값비싼 브랜드로 인식한다.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부가부의 가치는 무엇인가?
소비자들이 가장 만족하는 부분은 기능과 아름다운 외관이다. 하지만 디렉터 관점에서 부가부의 핵심 강점은 지속 가능성이다. 부가부의 유아차는 모듈형 디자인이다. 수리가 필요할 경우 해당 부품만 손쉽게 분해해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고, 제품을 오래 사용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는 부모들의 소비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유아차에 탑재된 부품은 각기 내구성이 다르다. 가령 알루미늄 프레임은 오랜 세월 튼튼함을 유지하지만 바퀴는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마모된다. 부가부는 오래 지속되는 부품과 마모되는 부품 그리고 패션 부품으로 범주를 나눠 재료부터 서비스까지 차등 적용한다. 앞서 디자이너, 엔지니어, 마케터가 한 팀을 이룬다고 얘기했는데 서비스 부서와도 상당히 긴밀하다. 고객의 모든 요구와 불만 사항을 파악해 설계 초기 단계부터 개선점을 반영한다.
당신의 이력에서 가장 놀라운 한 줄은 ‘근무 경력 22년’이다. 디자이너들에게 장기근속의 비결을 알려달라.
부가부를 창립한 막스 바렌부뤼흐Max Barenbrug가 디자이너 출신이기 때문일까? 부가부는 디자이너가 일하기에 천국 같은 곳이다.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도전도 많았지만 그것 또한 디자이너로서 배우고 발전하는 기회였다. 부가부는 디자인의 가능성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떠오르는 전기차 시장을 보며 유아차에 결합할 방식을 모색하기도 하고, 공기 청정 기능을 탑재한 모델을 구상하기도 한다. 22년을 근무한 지금까지도 디자이너로서 부가부의 모든 게 흥미롭다.
20년 넘게 육아 솔루션 브랜드를 이끌며 지켜본 시장의 변화가 있다면?
부가부는 유아차 시장에 아름다운 디자인을 제시한 첫 주자다. 네덜란드에서 시작해 현재 50여 개국에서 유통하고 있다. 그간 경쟁사들은 비슷한 제품을 내놓기도 했고, 실력 있는 디자이너를 고용해 탁월한 제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많은 제품이 더 좋아진 만큼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졌다. 부가부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요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지역성이다. 나라마다, 도시마다 유아 평균 키와 주행 환경에 차이가 있기에 현지 소비자의 선호도에 부합하는 디자인을 개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