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디자인은 왜 탈락했을까?] MYKC·모스그래픽·스튜디오 페시·일상의실천
월간 〈디자인〉 556호는 탈락한 디자인에 주목한다. 이는 단순히 채택되지 못한 안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완성본이 도출되기까지의 다양한 과정에 관한 얘기다.
시안試案의 사전적 의미는 ‘시험으로 또는 임시로 만든 계획이나 의견’이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많은 시안은 결코 임시로 만들거나 버리지 않는다. 최종 결과물을 염두에 둔 노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월간 〈디자인〉 556호는 탈락한 디자인에 주목한다. 이는 단순히 채택되지 못한 안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완성본이 도출되기까지의 다양한 과정에 관한 얘기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적절한 합치점을 찾은 경우도 있고, 초기의 기획 의도가 무색할 정도로 전혀 다른 결과물이 구현된 경우도 있다. 사연과 배경은 제각각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일관된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는 상호 존중의 관계이지 단순한 갑을 관계가 아니며, 프로젝트의 향방은 결국 시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닌 시안을 보는 안목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어반라이크〉 40호, MYKC
잡지 〈어반라이크〉 40호의 주제는 종이와 책으로, 이슈명은 ‘I Love Paper’였다. 종이와 책을 다루는 사람, 공간, 도구에 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이 주제를 내지에 담으면서 표지에 축약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주요 디자인 과제였다.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 의도 종이의 물성을 드러내기 위해 질감이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디자인을 기획했다.
구현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 논의 과정을 통해 특정 이미지나 질감을 부각하기보단 제목을 어떤 방식으로 심벌화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다양한 콘텐츠를 담는 만큼 특정 이미지가 내용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모였고, 종이로 만든 책에서 또 한 번 종이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반복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최종안이 선정된 이유 최종안이 더욱 직관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표지를 제일 먼저 접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최종안은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디자인이었다. 밀턴 글레이저의 디자인을 오마주했다는 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창작은 아니었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좀 더 와닿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표지였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 〈어반라이크〉는 기존 잡지의 디자인 문법을 지속적으로 변주해왔다. 40호의 주제는 종이였으나 그것 하나에만 묶이지 않기를 바랐다. 주제 너머의 저변을 표현하는 것이 이 매체의 태도를 대변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나의 메시지를 시각화하기보단 매체가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아이덴티티화해 전달하고자 한 이유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이 선정되지 않은 이유 잡지가 서점에서 보이는 모습과 매체의 목적을 고려했을 때 선뜻 받아들이기 부담스러운 디자인이었을 수 있다. 다만 이런 디자인도 염두에 두고 검토하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최종안의 장단점을 프로젝트의 모든 참여자가 이해할 수 있고, 이는 이후 디자인 결정을 위한 기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종안에 대한 디자이너의 소회 최종안도 좋다.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의견이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하고, 누군가의 A안이 절대적 가치를 갖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해와 조정을 거쳤는지 돌아볼 필요는 있다. 간혹 특정 형태를 요청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굳이 왜 우리랑?’ 하는 의문이 든다. 디자이너는 함께 논의하며 길을 찾아가는 존재이지 요구대로 그려주는 손발이 아니다.
우리카드 × 모스 체크카드, 모스그래픽
우리카드와 모스가 협업해 3종의 체크카드를 디자인한 작업이다. 이 중 ‘카드의정석 칼퇴 CHECK’ 2종은 다양한 직장인 맞춤 혜택을 갖춘 체크카드로, 톡톡 튀는 형광 컬러와 패턴으로 경쾌함을 더해 활기차고 긍정적인 ‘갓생’ 직장인을 표현했다. 라인의 방향성은 시간의 흐름과 속도감을 나타낸다. 또 다른 협업인 ‘카드의정석 K-LIFE CHECK’는 한국에 거주 중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발급하는 체크카드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모티브로 라인 그래픽으로 표현했으며, 다채로운 색상을 사용해 어울림과 화합의 가치를 드러냈다.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 의도 브랜드 모스 상품에 사용한 그래픽과 같이 모스그래픽만의 선명한 컬러 대비와 다양한 컬러 조합, 자유로운 기하학적 패턴을 활용한 카드 플레이트 디자인을 시도했다.
구현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 초기 기획 단계에서는 컬래버레이션 제품이다 보니 모스그래픽만의 스타일이 담긴 디자인을 전개했으나, 카드의 종류와 성격이 변화하면서 주제에 맞는 의미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그래픽 모티브가 필요했다. 이에 시계와 자음·모음을 형상화한 그래픽으로 수정했다. 또한 도수나 채도 등 제작상 구현하기 어려운 부분도 보완했다.
최종안이 선정된 이유 너무 밝고 튀는 컬러 등 성별, 연령, 취향에 국한될 수 있는 부분은 최소화했다. 결과적으로 누구나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안이 최종 선정됐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 구현된 A안은 미세하게 조정을 거쳤지만 형광 노랑, 형광 핑크, 형광 보라 등 쨍한 색감으로 모스그래픽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면서도 기존에 출시된 카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그래픽 패턴을 적용해 신선한 느낌을 준다. 특히 지갑이나 주머니에 넣고 다닐 때 작지만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다.
최종안에 대한 디자이너의 소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카드를 보고 사용하는 순간이 즐겁고 희망차기를 바란다.
스타우트 의자 컬렉션, 스튜디오 페시
스타우트는 국내 리빙 가구 브랜드 위키노를 위해 디자인한 의자 컬렉션이다. 다이닝 체어와 암체어로 구성됐으며, 내구성 높은 소재와 우아한 형태가 조화를 이룬다. 단면이 타원으로 만들어진 등받이와 등받이에서 뒷다리까지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이다.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통통하고 튼튼한’ 스타우트는 뛰어난 내구성과 안정감으로 주거 공간의 다이닝 룸뿐 아니라 카페, 레스토랑 등 다양한 상업 공간에도 잘 어울린다.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 의도 스타우트는 위키노가 기획한 ‘Wekino With’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스웨덴의 노트 디자인 스튜디오와 협업해 디자이너에게 컬렉션을 의뢰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우리는 현대적인 한국의 디자인에 방점을 뒀다.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와 가공 방식을 통해 생산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널리 사용할 수 있는 의자를 디자인하고자 했다.
구현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 신사동의 한 레스토랑에 가구를 직접 제작해 납품한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때 작업한 의자 컬렉션을 노트 디자인 스튜디오와 위키노 관계자가 인상 깊게 보았다. 그 디자인에 대한 권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위키노 컬렉션에 바로 포함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최종 선정되기 직전이었던 기존 시안은 안타깝게도 선정되지 못했다.
최종안이 선정된 이유 노트 디자인 스튜디오와 위키노가 신중히 논의한 끝에, 위키노가 지금까지 구축해온 브랜드 무드와 앞으로의 방향성에 더 적합한 시안을 최종적으로 선정했다. 물론 디자이너를 포함한 모든 관계자들이 수평적인 관계에서 개인 취향에 따라 투표한 다수결 방식도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 기존 시안은 스튜디오 페시 웹사이트에 ‘기와Kiwa’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남았다. 내부적으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직접 제작하고 사진까지 촬영해 업로드했다. 스튜디오에서 설정한 기획 의도처럼 생산 접근성이 높고 다양한 공간과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성과 형태를 지닌 것이 이 디자인의 강점이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이 선정되지 않은 이유 노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는 더욱 ‘현대적인’ 한국 디자인을 원했지만, 선정되지 못한 시안은 다소 ‘전통적인’ 한국 디자인의 성향이 강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최종안에 대한 디자이너의 소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A안, B안, C안에 대해 크게 구분을 두지 않는 편이다. 의자, 테이블, 선반 등 가구처럼 기능이 명확한 제품은 당장 실현되지 못했을지라도 언젠가 예상치 못한 기회를 통해 A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 일상의실천
〈우리가 인디언으로 알던 사람들〉은 인디언 부족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공예품, 회화 등 총 151점의 전시품을 선보인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이다. 인디언 부족이 겪은 아픈 역사와 문화 형성 과정에 섬세하게 접근하며 북미 원주민의 문화를 다층적으로 보여주었다.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 의도 자연, 신, 이웃과의 조화를 꿈꾼 북미 원주민의 모습을 그들의 예술과 공예품을 바탕으로 시각화하는 것. 인디언의 복식과 장신구에 착안해 상징적 형태와 공통된 패턴을 도출하고 이를 재배열 및 재조합한 요소들로 전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구현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 초기 시안에서는 유물 이미지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콜라주하고 재구성했다. 인디언 의상을 모티브로 한 작은 입자들을 모아서 시각적 재미를 유도하기도 했다. 인디언 역사에서 발견한 관계성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이미지 사용 과정에서 덴버 아트 뮤지엄과 이견이 있었다. 뮤지엄 측에서는 인디언을 상징하는 대표 이미지를 사용하기를 원했다. 많은 논의 끝에 인디언의 형상을 드러내는 유물 이미지와 별자리를 표현한 그래픽 이미지를 결합하는 절충안을 도출했다.
최종안이 선정된 이유 국립중앙박물관은 불특정 다수가 방문하는 공립 기관인 만큼 유물을 변형한 디자인보단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디자인이 안전한 접근일 것이다. 기획전에 유물을 대여해준 덴버 아트 뮤지엄 역시 유물의 원본 이미지 사용을 원했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 유물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그래픽 요소를 부각한 시안이 전시 관람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질 듯했다. 기획전을 위한 디자인에서는 전시물을 직접적으로 차용하는 것보다 관람객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그래픽 장치를 활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최종안에 대한 디자이너의 소회 비록 시안에서 보여준 다층적 그래픽과 디테일을 적용하지 못했으나 이후 별자리를 모티브로 한 그래픽 요소를 개발해 전시 공간에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었다. 메인 포스터에 대한 접근이 아쉬웠지만 이로 인해 또 다른 키 비주얼을 도출했기에 전시 전반을 위한 합리적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