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약 3개월간 펼쳐지는 광주비엔날레에서 꼭 놓치지 말아야 할 프로그램들이 있다. 9개 국가가 참여하는 최대 규모의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이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는 파빌리온

지금 광주는 지구 안의 또 다른 지구다. 4월 7일 14번째 광주비엔날레가 개막하며 세계 각국의 예술가와 작품들이 모여들었다. 7월 9일까지 열리는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노자의 〈도덕경〉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차용한 것으로, 예술총감독 이숙경은 “물은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예술의 힘을 상징한다”며 “물처럼 예술에도 서서히 길을 전환시키는 힘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광주비엔날레가 여느 때보다 특별한 이유는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는 파빌리온 때문이다. 네덜란드, 스위스,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이탈리아, 중국, 캐나다, 폴란드, 프랑스 총 9개국이 참여해 광주 전체를 예술의 거처로 삼았다. 각 국가별 파빌리온은 자국의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동시에 소수민족의 삶과 기후 위기, 전쟁과 폭력 등을 다루며 개인의 삶과 국가와 지구를 교차시킨다.

이탈리아 파빌리온의 전시 〈잠든 물은 무엇을 꿈꾸는가?〉는 본전시 주제인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와 공명하며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자연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지속 가능한 공존을 제안한다. 네덜란드 파빌리온 또한 자연과 기후에 대해 다루지만 좀 더 과감한 쪽이다. 정부와 기업을 기후 범죄의 주범으로 보고 재판에 기소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현재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참여 또한 눈여겨보아야 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우크라이나의 현대 영화가 상영될 예정. 그 외에도 이스라엘 파빌리온의 화려한 미디어 아트를 볼 수 있으며, 한국과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스위스 파빌리온에서는 젊은 사진작가 사진전 등이 열리고 있다. 폴란드 파빌리온은 전시뿐 아니라 한국과 폴란드 아티스트 간의 협업으로 탄생한 대규모 퍼포먼스를 예고하고, 프랑스 파빌리온에서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지네브 세디라의 작품을 특별히 재구성했다.

최두수
광주비엔날레 전시부 전시팀장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을 확장, 구축하기 위해 광주에서 이미 활발히 운영 중인 문화예술 공간들을 문화 거점으로 삼았다. 각 국가의 파빌리온 담당자들이 직접 리서치 트립을 시행하며 대안적 전시 경험을 얻고, 해외 기관과 광주의 문화예술 기관이 교류를 지속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을 통해 광주 전역이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이 되고, 도시 내에 새로운 문화 동선이 형성될 것이라 기대한다.”

관계, 그리고 커뮤니티 예술의 결과물

파빌리온을 넘어선 연대의 퍼포먼스
‘포스트아티스틱 어셈블리 Postartistic Assembly’

폴란드의 아담 미츠키에비치 문화원은 2012년부터 국내에서 폴란드의 시각 예술, 음악, 디자인, 연극 등 다양한 예술 문화를 알려왔다. 이번 폴란드 파빌리온과 공공 프로그램 ‘포스트아티스틱 어셈블리’ 또한 이러한 활동의 일환이다. 특히 5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포스트아티스틱 어셈블리’의 경우 시각 예술가, 뮤지션, 건축가, 안무가 등 3개 컬렉티브를 포함한 12명의 작가가 참여하며 한국 작가들도 함께한다. 3일 연속으로 열리는 이 작은 축제는 안무가 알리차 치첼Alicja Czyczel이 연민의 목소리와 형태를 실험하고, 건축 그룹 첸트랄라Centrala가 도시와 물의 관계를 탐구하며 산책을 통한 작업 방식을 소개한다.

사운드 아티스트 파베우 쿠친스키Paweł Kuczyński는 광주를 위해 새로운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을 들려주며, 폴라 수트리크Pola Sutryk가 예술과 만찬의 경계를 넘나드는 참여형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광주비엔날레의 본전시 기간 동안 갤러리 포도나무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독립 영화 컬렉티브 ‘프리필르머스Freefilmers’의 작품을 선보인다. 상영 중인 작품은 전쟁 발발 전의 일상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지금과의 괴리를 증폭시킨다.

장소 10년 후 그라운드, 양림쌀롱, 갤러리 포도나무

바르바라 크셰스카Barbara Krzeska
아담 미츠키에비치 문화원 부관장

폴란드 파빌리온에서 우크라이나 아티스트의 작품을 상영하는 것이 흥미롭다. 지지와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서인가?
폴란드는 우크라이나를 형제의 국가로 여기며 실제로 우크라이나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한 나라이기도 하다. 해당 작품의 아티스트는 전쟁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도시 마리우풀Mariupol에 아직도 거주하고 있다. 초청을 할 수도 없고, 이런 전시가 아니라면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방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작품의 스크리닝 라이선스 비용은 전쟁 구호 물품을 구매하는 데에 사용된다. 연대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

연대는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폴란드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개념인 것 같다.
맞다. 5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열리는 ‘포스트아티스틱 어셈블리’ 또한 관계에 집중한 공공 프로그램이다. 문화는 다양한 층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형성되고, 예술 또한 예술가의 것만이 아니라 여러 관계 맺음에서 비롯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종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이 모든 관계가 예술 작품은 물론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수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이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또한 연대다.

‘포스트아티스틱 어셈블리’와 폴란드 파빌리온을 방문하는 광주비엔날레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까 말했듯 관계는 중요한 키워드다.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단순히 현대 예술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강조하고 싶었다. 특히 5월 5일부터 7일까지 ‘양림쌀롱’과 ‘10년 후 그라운드’에서는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 형태의 퍼포먼스가 열린다. 꼭 참여해서 일상을 생경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예술가의 응접실에 초대받기
〈Dreams Have No Titles (꿈은 제목이 없다)〉
프랑스 파빌리온에서는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지네브 세디라의 국내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란 알제리 이민자 2세이자 현재 런던에서 거주하는 지네브 세디라의 작품은 그가 주창한 개인의 지형도(personal geography)를 담아내는 하나의 공간이자 커뮤니티 예술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양림미술관 1층에 작가가 실제로 거주하는 집 거실을 그대로 옮겨왔고, 지하에서는 작가가 실제 친구들을 등장시킨 다큐멘터리가 상영 중이다.

장소
 양림미술관

지네브 세디라
Zineb Sedira

실제 당신이 거주하는 집 거실을 작품으로 복제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 거실은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춤추는 곳, 술을 나눠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수다를 떠는 곳이다. 삶이 고스란히 기록되는 곳이나 다름없다. 이 거실은 영화를 보러 들어가기 전 거치는 일종의 무대다. 재현된 현실인 거실에서 나와 내 가족의 기록을 살피고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 사이를 걷는 것과 같다.

다큐멘터리에는 당신이 영감을 받은 또 다른 영화들이 등장한다.
1960년대의 프랑스, 이탈리아, 알제리 영화를 열정적으로 봤다. 내가 태어난 시대이고, 정치적으로 끔찍했지만 동시에 공동의 정치의식이 형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알제리 혁명도 그때 일어났고, 전 세계 영화 제작자들이 시네마테크에 모여 반제국주의와 반식민주의로 똘똘 뭉친 동료가 되어 또 다른 소통의 갈래가 생겨났다. 함께 저항하는 공동체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두 실제 가족이거나 친구다. 작업에서도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은데, 당신의 공동체는 지리적 위치에 기반하는가?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동료와의 작업은 단단한 신뢰를 기반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만족스럽다. 나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의 공동체를 유럽, 알제리로 한정 짓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1960년대 영화인들의 연대 같은 정치적 우정을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국가에 상관없이 유토피아를 향한 비슷한 신념이 강력한 유대를 형성한다고 믿는다.

지금 세상엔 너무나 다양한 갈등이 존재하고, 개인의 정체성조차 여러 층위로 나뉘어 상충할 때가 있다. 이런 와중에 내가 속할 공동체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내가 광주비엔날레의 프랑스 파빌리온 작가로 참여하는 것에 대해 잘 생각해주길 바란다. 나는 프랑스인이지만 프랑스인이 아니기도 하다. 지금 런던에 살고 있지만 프랑스 여권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알제리라는 정체성도 가지고 있다. 또 내 작품은 여성에 관한 것이 아니지만 내 성별이 여성이고, 또 여성들이 등장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성의 이야기가 포함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내가 프랑스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인들이 끔찍한 제국주의자였지만 또 많은 프랑스인이 반제국주의자였다. 명백한 경계를 통해 커뮤니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연대의 가능성을 통해 형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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