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디자인은 왜 탈락했을까?] 스튜디오 홍박사·모임 별·페이퍼프레스·라보토리

월간 〈디자인〉 556호는 탈락한 디자인에 주목한다. 이는 단순히 채택되지 못한 안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완성본이 도출되기까지의 다양한 과정에 관한 얘기다.

[그 디자인은 왜 탈락했을까?] 스튜디오 홍박사·모임 별·페이퍼프레스·라보토리

시안試案의 사전적 의미는 ‘시험으로 또는 임시로 만든 계획이나 의견’이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많은 시안은 결코 임시로 만들거나 버리지 않는다. 최종 결과물을 염두에 둔 노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월간 〈디자인〉 556호는 탈락한 디자인에 주목한다. 이는 단순히 채택되지 못한 안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완성본이 도출되기까지의 다양한 과정에 관한 얘기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적절한 합치점을 찾은 경우도 있고, 초기의 기획 의도가 무색할 정도로 전혀 다른 결과물이 구현된 경우도 있다. 사연과 배경은 제각각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일관된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는 상호 존중의 관계이지 단순한 갑을 관계가 아니며, 프로젝트의 향방은 결국 시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닌 시안을 보는 안목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법〉 앨범 커버, 스튜디오 홍박사

2021년 코로나19로 어려웠던 시기에 콘텐츠랩 비보와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소속 아티스트들이 협력해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제작하고 수익금 전액을 기부한 프로젝트다.

홍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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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 비보
디자인 스튜디오 홍박사(대표 홍박사), hongbaksa.com
발표 시기 2021년 10월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 의도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의 분위기를 반영해 1990년대 캠퍼스 무드를 콘셉트로 디자인했다. 글자를 그려서 사용하던 당시의 프로그램 제목처럼 잘 먹어서 통통하고 둥글둥글해진 모습의 글자를 표현했다.

구현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 클라이언트 요청에 따라 제목에 있는 몇 글자의 형태가 바뀌면서 상단의 밀도가 낮아졌다.

최종안이 선정된 이유 그동안 작업했던 셀럽파이브 앨범 시리즈의 네 번째 작업물로 기획했기 때문에 기존 디자인 시스템을 이어가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글자의 형태가 지닌 의미를 재미있게 전달한다고 평가받았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 두 안 모두 디자인 의도를 담고 있지만, 특히 B안이 졸업사진 느낌이 와닿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더욱 만족스러웠다. 대학생들이 졸업 후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고민하는 모습이 상상되기도 하고, 타이틀 디자인도 더 안정적이다. 실제 음높이에 맞춰 글자 위치를 배치했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면 리듬감이 함께 느껴진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이 선정되지 않은 이유 아마도 A안의 글자에서 유머가 더 잘 느껴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최종안에 대한 디자이너의 소회 1차 타이틀 안에서 클라이언트가 제시한 문제를 조형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메인 아이덴티티, 모임 별

광주광역시 구 전남도청 일대를 재개발하여 2015년에 문을 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산하기관 아시아문화개발원의 의뢰를 받아 진행했다. 담당 부서인 공간기획팀과 함께 메인 아이덴티티 및 공통 적용되는 산하 민주평화교류원, 아시아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어린이문화원, 아시아예술극장의 아이덴티티를 개발하고, 별도로 전체 건축물에 대한 사인 시스템을 개발했다.

모임별
모임별2
클라이언트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개발원
디자인 모임 별(대표 조태상), byul.org
참여 디자이너 조태상
발표 시기 2015년 7월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 의도 세계를 향한 열린 플랫폼으로 창작과 교류, 연구와 보존, 전시와 공연, 기념과 소통 등 다양한 기능과 목표를 창조적으로 융합해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자 했다.

구현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 수임 전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짧은 개발 기간이 주어진 데다 최종 결정권자였던 당시 장관이 시각 디자인 교육자 출신인 만큼 그 과정 또한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최종안이 선정된 이유 여러 안 중 당시 최종 결정권자가 주도적으로 선정했다고 전해 들었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 기관의 주요 구성 요소인 문화창조원,아시아문화정보원, 아시아예술극장, 민주평화교류원, 어린이문화원 그리고 광장을 개별 도형화해 필요에 따라 모듈을 조합하며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안이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이 선정되지 않은 이유 알지 못한다. 최종 시안 후보들을 정리해 문서 형태의 보고서를 제출했고, 위원회에서 선정했다.

최종안에 대한 디자이너의 소회 10년째 사용하고 있는 최종 결과물과 아쉽게 탈락한 B안 모두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B안은 집안 반대로 헤어진 과거 연인 같다고 해야 할까. 아주 가끔 생각날 만큼의 미련이 남은 정도다.


〈I Like to Watch〉, 페이퍼프레스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이시 우드 Issy Wood의 개인전 〈I Like to Watch〉의 아이덴티티 그래픽을 디자인했다. 작가가 직접 촬영하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수많은 간판 이미지를 수집해 전시의 메인 타이포그래피로 재해석했다. 이를 통해 전시 타이틀인 문장의 의미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업 구조와 개인 서사를 흥미롭게 엮어내고 싶었다.

페이퍼프레스
페이퍼프레스2
클라이언트 일민미술관
디자인 페이퍼프레스(대표 박신우), paperpress.kr
참여 디자이너 박신우, 서예원
발표 시기 2023년 9월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 의도 초기에는 두 가지 방향으로 시안을 제안했다. ‘I Like to Watch’라는 문장의 의미를 토대로 작가가 관찰한 이미지를 수집해 만든 A안과 ‘Watch’라는 키워드에 집중해 작가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텍스처를 표현한 B안이다.

구현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 A안이 채택됐는데, 초기 시안에서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다.

최종안이 선정된 이유 전시 타이틀을 단편적으로 해석하지않고 작가 개인의 서사와 엮은 지점이 작업과 자연스레 이어지면서 흥미롭게 어필하지 않았나 싶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 두 시안 모두 한 프로젝트의 서로 다른 주제에 집중해 이미지를 전개한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편애한 시안은 없다.

최종안에 대한 디자이너의 소회 선택된 최종안은 이미지 소스를 수집하는 과정에서부터 최종 결과물까지 의미적으로나 조형적으로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스테이지 바이 고디바, 라보토리

‘신 오브 시네마틱’이라는 콘셉트를 통해 스테이지 바이 고디바 고유의 가치와 감정을 전달하는, 무대 같은 공간을 설계하고자 했다. 내부는 캐주얼 카페 ‘드라마틱 존’, 파인다이닝 공간인 ‘클라이맥스 존’ 그리고 그 둘을 자연스럽게 잇는 ‘디졸브 존’으로 구성된다. 이 세 가지 스폿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고객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공간적 장치를 설계하고자 했다.

라보토리
라보토리2
클라이언트 BSK 코퍼레이션
디자인 라보토리(대표 정진호), labotory.com
참여 디자이너 김치오, 김혜미, 이소진
발표 시기 2022년 9월
최종안 사진 최용준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 의도 ‘신 오브 시네마틱’이라는 콘셉트에 걸맞은 어법을 설정하고 이를 공간의기능에 맞게 대입하고자 했다.

구현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 한정된 면적에서 세 가지 콘셉트를 아우르고 또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조닝 단계에서 가장 큰 과제였다. 클라이언트 또한 이런 운영 방식을 처음 시도하는 만큼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거쳐야 했다. 운영을 위한 타당한 디자인을 고려하는 단계에서 조닝별 분위기가 변화했다.

최종안이 선정된 이유 3개의 존을 하나로 묶는 레이아웃,파사드부터 내부까지 시선을 끌어들이는 배치가 더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복잡한 디자인보다는 모던한 디자인이 스테이지 바이 고디바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잘 전달해주었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 클라이언트가 채택한 시안과 동일하다. B안을 검토하는 이유는 우리의 생각에 확신을 더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다. A안이 포괄하지 못하는 장점과 특징을B안을 통해 만들어보고, 두 시안을 비교하면서 각 시안의 강점을 흡수할 방법을 찾고자 한다.

최종안에 대한 디자이너의 소회 최종안이 채택된 후 우리의 결정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완성도를 높이는 다음 단계로 편안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B안이 단순히 버리는 선택지는 아니다. 라보토리는 항상 ‘우리가 그린 그림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더 나은 디자인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6호(2024.10)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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