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이 된 그림자, 섀도우올로지스트 빈센트 발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그림자의 매력
그림자를 활용한 일러스트 작품으로 알려진 빈센트 발이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인다. 일상 속 사물과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공감을 자아내는 그의 작품을 소개한다.
벨기에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빈센트 발(Vincent Bal)이 오는 11월 1일부터 기장 국립부산과학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빈센트 발 : Art of Shadow’. 직역하자면 그림자의 예술이다. 이는 그의 작품 특징을 잘 보여주는 문구다. 빈센트 발은 사물에 빛을 비춰 만든 그림자에 일러스트를 삽입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특히 그는 유리잔, 포크, 과일 등 평범한 사물의 그림자에서 흥미로운 순간과 부분을 포착한 뒤 일러스트를 더하는데 이러한 과정으로 탄생한 작품은 유머와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최초로 2024년 신작을 공개할 예정이다. 그의 전시가 일찌감치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섀도우올로지스트’가 된 남자
빈센트 발을 이야기할 때 늘 뒤따르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섀도우올로지(Shadowology)’와 ‘섀도우올로지스트(Shadowologest)’다. 그림자학 그리고 그림자 학자라는 뜻인데 이는 작가 본인과 작품 세계의 특징을 지칭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창작’이 아닌 ‘발견’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영화학을 공부하고 단편 영화와 TV 광고를 만들어 온 그가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이러한 ‘발견’과도 맞닿아 있다.
2016년 시나리오 작업 중 햇빛에 비친 찻잔의 그림자가 그의 눈에 띈 것. 즉흥적으로 그림자 위에 그림을 그렸고, 이후로 일상 사물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그림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 정도에 그쳤으나 그의 그림자 작품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고, 이를 계기로 그는 본격적으로 그림자 아티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어딘가 진짜 과학적인 이름을 짓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Shadowology (그림자학)’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냈습니다.
I thought it would be nice to have a name where it sounds like a real science.
So I came up with the name ‘Shadowology’
빈센트 발
상상력과 창의성의 힘
빈센트 발이 다루는 그림자는 상상력을 확장시켜주는 도구이다. 이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다. 일상 사물에 드리운 그림자를 관찰하고, 그는 그림자가 어떤 이미지로 확장될 수 있을지를 상상한다. 순간적인 영감과 사물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을 통해 그림자와 일러스트의 기발한 조합을 찾아내면 그는 펜과 마커를 이용해 배경, 캐릭터 등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림자와 그림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의 작품은 완성된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복잡한기술이나 특별한 재료는 필요하지 않다. 한계가 없는 상상력과 독창적인 창의성 그리고 약간의 유머 감각이 필요할 뿐이다.
ⓒ Shadowology by Vincent Bal
모든 그림자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Every shadow tells a story
빈센트 발
이처럼 빈센트 발의 작품은 제작 과정부터 결과까지 직관적이다. 여느 현대미술과 달리 난해하지 않다. 예술은 복잡해야하고, 난해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다. 그의 작품을 보는 관객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재창조 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빈센트 발의 작품이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빈센트 발의 그림자 그림은 겉으로 보기에 단순해 보이지만 그의 작품은 우리의 일상 속 사물을 다시금 주목하게 한다. 아울러 현대인에게 새로운 관점의 중요성을 시사하며, 자신만의 창의적인 사고방식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그림자 이면에는 작가의 고뇌가 서려 있는 셈이다.
빈센트 발의 작품 세계를 바라본 일곱 가지 시선
이번 전시 <빈센트 발: Art of Shadow>는 총 일곱 가지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섹션은 ‘Light at the museum’으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에 빛이 들어올 때 그 이면에 새로운 세상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담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두 번째 섹션 ‘Glass lights’는 그 제목처럼 빛이 유리잔을 통과하면서 생기는 그림자에 매료된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어지는 세 번째 섹션 ‘Shadow Society’는 빈센트 발이 그림자 일러스트레이터를 통해 현실 사회의 사회적 이슈를 풍자한 작품을 다룬다.
ⓒ Shadowology by Vincent Bal
네 번째 섹션과 다섯 번째 섹션도 흥미롭다. 영감을 받은 다양한 영화 장면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담은 신작 ‘부산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최초로 공개하는 신작이다. 영화 감독이기도 한 그가 제작한 단편 영상도 눈길을 끈다. ‘Sea Shadow'(2021)은 그림자가 갑자기 살아 움직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한편 만화 캐릭터 스머프로 대표되는 만화 강국 벨기에 출신인 빈센트 발은 어릴 적 만화가를 꿈꿨다. 그에게는 여전히 만화가에 대한 동경이 남아 있는데 동물을 표현한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 ‘Shadow Zoo’에서 이를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은 ‘Shadowscape’이다. 사물과 빛이 부딪히며 만들어진 그림자를 가공하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사물 본연의 특징을 그대로 작품에 반적용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담은 작품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부산에 대한 직간접적 경험을 반영한 신작을 공개하는만큼 기대가 높다. 전시는 2025년 3월 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