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하

Computational Designer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의 개념을 보여주는 디자이너 심규하를 소개한다.

심규하

지난 11월 11일부터 12월 27일까지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4회 국제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타이 포잔치 2015>에서는 에이드리언 쇼너시(Adrian Shaugnessy)의 디렉팅 아래 6명 디자이너가 참여한 특별전이 펼쳐졌다. 뉴욕, 도쿄, 런던 등 6개 도시를 대형 배너 그래픽으로 해석한 이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 하나 더 있었다. 각 도시의 정보를 담은 포스터와 글, 구글 지도 등을 혼합해 만든 영상 작품 ‘불연속성 안의 연속성(Continuity in Discontinuity)’이 바로 그것. 도시의 꿈틀대는 생명력을 고스란히 화면으로 옮긴 듯한 이 작품은 디자이너 심규하의 작품이다.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교 미술·디자인 학부의 정년 트랙 조교수 자리를 꿰찬 그의 행보는 해외에서 활동 중인 한국 디자이너들 가운데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디자인 프로세스. 시각화 단계에서 출발하고 끝을 맺는 일반 디자이너와 달리 그는 로직(logic)을 세우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서부터 디자인을 시작한다.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이 분야는 1990년대 중반 건축계에서 먼저 시작했고 약 5년 전부터 그래픽 디자이너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떤 현상이나 시각적 요소에서 패턴을 찾아내 알고리즘을 만든 뒤 소프트웨어 툴로 개발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디자이너의 역할은 단순한 시각물 생산자에서 도구의 저자로 확장됩니다.” 예를 들어 ‘사과’와 ‘배’를 입력하면 플랫폼이 공통점인 ‘과일’이란 키워드를 도출한 뒤 이에 해당하는 시각 기호를 출력해내는 것. 그의 작품 ‘퍼포마(Performa)’는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의 개념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키보드 타이핑 속도와 세기에 따라 글자의 너비와 무게가 달라지는 이 타이포그래피는 독일 아웃풋 어워드(Output Award)에서 수상하고 디자인 전문지 <폼Form>에 소개되어 관심을 모았다. 또 ‘탠저블 토포그래피(Tangible Topography)’는 시각, 청각, 촉각을 통해 데이터를 수렴할 수 있도록 한 인터페이스로 2013년 카이스트 IEEE 햅틱 콘퍼런스(IEEE Haptics Conference)와 하버드 GSD 아트 사이언스 블렌더(Harvard GSD Art Science Blender) 등을 통해 소개됐다. 이 밖에 사람과 기계가 동시에 읽을 수 있는 QR 코드를 콘셉트로 한 ‘QR 타입 시스템’, 달리는 속도에 따라 LED 조명 개수가 다르게 작동하는 신발 ‘As Fast As Light’ 등으로 국제 디자인 어워드에 이름을 올렸다.

심규하는 앞으로 컴퓨테이션이 디자인 생산 과정과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겠다는 각오다. “건축 이론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Christopher Alexander)처럼 프로젝트와 연구를 통해 디자인 분야 안팎에서 기여하고 싶다. 또 나 자신의 프로세스를 반성적으로 바라보며 궁극적으로 디자인, 언어학, 컴퓨터 공학을 융합하는 디자이너가 되려고 한다.” 디자인이 생명체처럼 진화한다면, 심규하와 같은 디자인 실험가들의 도전과 노력이야말로 디자인의 진화를 이끄는 촉매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51호(2016.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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