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영] 지빅시 김지성
디자인플러스는 올해 11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하 SDF)에 참가하는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릴레이 인터뷰 프로젝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 디자이너'를 진행한다.
22년간 950여 명이 신진 디자이너들을 배출한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은 명실상부 디자이너의 등용문이다. 디자인플러스는 내일의 주인공이 될 이들을 릴레이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다. 스물여덟 번째 주자로 2024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참가자인 정아영이 묻고 지빅시 김지성이 답했다.
정아영(이하 정): 전작 ‘의자 생태계’에서 이번 SDF에서 선보일 수납장 생태계까지 짧은 경력에도 다채로운 전시 이력이 눈에 띕니다. 강렬한 인사이트를 준 경험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지성(이하 김):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혹시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먼저 성인(聖人)이 되어야만 하나?’ 수년에 걸친 질문 끝에 ‘그렇다’고 결론 내렸는데 이후 인사이트를 얻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때로는 좋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때 더욱더 넓게 보게 되는 것 같더군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예전에는 창의성에 지나치게 집착해 디자인의 헌신적 성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정: “동식물의 방식이나 인터랙션을 모방할 때 더 ‘원형’에 가까운 형태에 도달한다”고 말한 것도 기억에 남네요. 여기서 말하는 원형이란 무엇인가요?
김: 많은 영감을 자연으로부터 얻고 있습니다. 디자인의 개념을 일종의 진화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러한 관점에서 아주 오랜 시간 진화해 오며 최적화를 마친 동물들의 생활상이나 습관이야말로 좋은 교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경우에는 위트나 사족이 많은 반면 동물은 어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나면 이를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방식들을 채택하더군요. 그래서 그 문제해결 방식을 차용해 디자인하면 마찬가지로 군더더기 없는, 말 그대로 ‘원형’에 가까운 형태에 도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 가구 디자인과 함께 시각물 제작을 겸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창의 동화를 읽는 느낌마저 드네요.
김: 저는 문제를 해결하는 충격적이고 창의적인 가구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제 마음의 중심에는 언제나 새로운 가구와 인터랙션에 있습니다. 하지만 시각 작업에도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였습니다. 가구 디자이너라고 해서 나쁜 그래픽과 조판에 대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면죄부가 있는 것처럼 디자인한 많은 가구의 시각물이 내심 아쉬웠습니다. 그래픽에 집중하는 것은 이런 아쉬움을 줄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교류하다 보니 독특한 워딩이나 생활 습관이 생기고 스며들었는데 이를 유지하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정: 수납장 생태계의 부스 디자인에서 중요한 요소로 인터랙션을 꼽았더군요. 작품과 상호작용을 통해 관람객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나요?
김: 이번 부스 디자인으로 좋은 인터랙션의 ‘산뜻함’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단순히 가구를 넘어 부스 전반에서 다양한 교감이 이뤄졌으면 해요. 에어드롭으로 도록을 전달하거나, 캡션을 창의적으로 배치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산뜻함을 전할 예정입니다. 인터랙션이라는 단어가 다소 어렵고 생소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그냥 사소한 배려에서 느끼는 산뜻함이나 상쾌함에 빗대어 부스를 연출해 보려고 해요.
정: 통념을 비트는 지성 님의 작업물이 앞으로도 궁금할 것 같아요. 또 다뤄보고 싶은 일상 사물이 있나요?
김: 스위치나 문손잡이, 엘리베이터 버튼처럼 쉽게 간과하는 영역이 저의 최종장이라는 생각했어요. ‘모든 것이 급변하는 이 시대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저 문손잡이의 다음 형태는 무엇일까?’ ‘문을 여는 방식은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같은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죠. 어쩌면 이런 것들의 혁신이 AI나 아이폰의 그것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는 기대도 해봅니다. 제아무리 첨단 기술이 등장해도 아직 우리는 이전 세대와 동일한 문 여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인터랙션을 고심하는 디자이너로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가장 큰 가능성을 지닌 이러한 것들에 노력을 쏟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터뷰 정아영
꽃과 빛을 주제로 탐구하는 디자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