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영] 코타 아카이브 정세운

디자인플러스는 올해 11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하 SDF)에 참가하는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릴레이 인터뷰 프로젝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 디자이너'를 진행한다.

[꼬꼬영] 코타 아카이브 정세운

22년간 950여 명이 신진 디자이너들을 배출한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은 명실상부 디자이너의 등용문이다. 디자인플러스는 내일의 주인공이 될 이들을 릴레이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한다. 스물아홉 번째 주자로 2024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참가자인 김지성이 묻고 코타 아카이브 정세운이 답했다.

코타 아카이브를 진행하는 정세운은 자신을 ‘기록 운동가’라고 자처한다. 모든 것이 쉽게 휩쓸리고 휘발되며 소멸하는 시대에 그는 과정의 흔적을 기술과 디자인으로 움켜쥔다. @cotta_archive
김지성(이하 김):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코타 아카이브의 의미에 관해 소개해 주세요.

정세운(이하 정): 상호 작용 가능한 기록과 과정의 가치를 알리고 스스로 행할 수 있도록 도운 후 기록을 축적하는 정세운입니다. 코타 아카이브는 3차원 형태의 패션 아카이브에요. 저는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88올림픽 공연장 등 모이는 것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선배들로부터 영감을 얻곤 합니다. 이들의 형태를 보다 보면, 제가 만들고자 하는 이미지들을 구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병마용갱 선배님은 흙을 구워 만든 말과 병사들의 모형이 모여 있는 갱도예요. 같은 흙으로 만들어진 병사들의 군집을 보고 있으면 압도되는 동시에 마치 제가 만들어 나가고 있는 아카이브가 축적되었을 때의 형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영문 ‘Terracotta Army’에서 따와 ‘코타(Cotta)’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김: 현재까지 총 400개가량의 아카이빙 작업을 했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원동력이 되었던 작업이 있나요?

정: 한 명의 기록가에서 기록 운동가로 전환되었던 계기가 된 ‘파리 및 밀라노 패션 위크 아카이빙 프로젝트’인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에서 중요한 것이 경험과 확장이라고 믿기에 패션 아카이브를 구축하려면 가장 큰 패션 시장을 직접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파리와 밀라노로 건너가 각종 행사장을 다니며 패션쇼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졌어요. “당신의 패션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나요? 그리고 이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나요?” 대답과 아카이브를 수집하는 제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지인이 제 행위를 ‘풍부한 미가공정보와 그 축적’이라고 하더군요. 특정한 틀 내에서 미 가공된 정보가 축적된다면, 그건 분명 의미가 생길 거라고. 아카이브를 만들기 전 공부했던 건축에서 배운 과정에 대한 기록, 가공되지 않은 것들의 모음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정보를 축적하려면 한 명의 기록가가 아니라 더 많은 패션-디자이너들에게 기록하는 방법을 알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꼈죠. 가공되지 않은 것들은 디자인 작업 도중 나오는 중간 산출물들이 주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때부터 과정을 기록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쫓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김: 최근에는 ‘시간’ 이라는 요소에 몰입하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잊혀가는 것 중 탈, 그중에서도 불가리아의 전통 탈 중 하나인 쿠케리의 이미지가 흥미로운데, 이들을 기록하려는 이유와 목적이 궁금합니다.

정: 시간, 잊혀가는 것들을 기록하는 것은 Cotta의 방향 중 하나입니다. 어떻게 보면 과정에 대한 기록과 유사한데요, 시기를 놓치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집중하고 있는 듯해요. 최근에는 답사 겸 안동 탈춤 축제를 방문했어요. 탈은 사람의 내면을 반영하는 패션과 달리 특정 대상에 ‘빙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탈을 기록하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빙의되어 나오는 행동, 무형의 것들도 그들에겐 중요한 것이었고 이는 기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쿠케리는 불가리아의 수르바라는 탈 페스티벌에 나오는 탈 중 하나인데, 더욱 다채로운 탈들의 이미지가 기록가의 정신을 더 깨운 듯해요.

김: 이번 SDF에서는 직접 관람객분들이 아카이빙을 체험할 수 있도록 부스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코타가 추구하고자 하는 메세지나 방향은 무엇일까요?

정: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코타가 지향하는 3단계 중 첫 번째인 ‘상호작용 가능한 기록과 과정의 가치’를 전달하는 데 주력하려고 합니다. 저는 아직 과정을 기록하는 것과 상호작용 가능한 기록의 가치를 더 찾아가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이를 전한다면 제 자신의 발전과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의 지하 보존실을 보면 무뚝뚝하게 생긴 캐비넷이 끝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캐비넷을 열어보면 방대한 양의 정보가 담긴 아카이브에 놀라게 되죠. 만들어진 구조는 단순하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다채롭고 아름다운 것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구현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이 상호작용 가능한 형태의 기록(3D)들을 보고 스스로 SDF에 대한 기록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체험 요소를 넣을 거예요. 신기함을 넘어 ‘기록 수단’ 그 자체로써 봐주길 희망합니다. ‘표현 수단’을 위해 사용되는 원자재가 아닌 ‘기록 수단’으로서 3D를 바라본다면, “상호작용 가능한 기록”의 가치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김: 패션에 많은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패션을 넘어선 다른 분야의 확장 또는 코타 아카이브의 머나먼 궁극적 목표에 관해서도 궁금합니다.

정: 한 분야가 다른 분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통해 순환하고 발전하는 것이 디자인이고, 아카이브를 만들어 나감에 있어 지녀야 할 숙명이라 생각합니다. 패션 아카이브가 패션 분야에만 있어 가치를 전달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른 분야의 것들도 받아들이고 확장하기에 앞서, 타 디자인 분야에 영향을 주는 패션 아카이브로 입지를 굳히는 것이 목표 중 하나입니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코타아카이브를 보고 영감과 정보를 얻게끔 하려면, 아카이브를 어떻게 구축하고 경험하게 할지 항상 구상하고 있어요. 또한 사람들이 본인의 작품 혹은 작업 과정을 타인에게 보여줌에 있어 거리낌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목표 중 하나입니다. 이를 위해 코타 아카이브는 더욱 열심히 과정에 대한 기록을 모으고, 개개인이 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지요. 어쩌면 저는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설득하는 ‘기록 운동가’일 수도 있겠네요.


인터뷰 김지성
지빅시라는 활동명으로 작업하는 가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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