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우산이 아웃도어 의류로 변신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망가졌거나 잃어버린 우산은 몇 개 정도였을까. 포르투갈 의류 브랜드 'R-코트(R-Coat)'는 전 세계에서 해마다 수억 개의 우산이 버려진다는 연구 수치에 착안해 탄생했다. R-코트는 버려진 우산의 원단을 뜯어내, 코팅 폴리에스테르 원단이 가진 방수 기능을 활용한 아웃도어 및 일상용 의류를 만든다.

고장 난 우산이 아웃도어 의류로 변신하다

창의성과 혁신이 있는 한 쓰레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R-코트는 2018년, 이탈리아 출신 안나 마시엘로가 길에 버려진 우산을 수집해 집에서 재봉틀로 우비를 만들어 공개한 데서 출발했다. 안나는 폐수를 재활용하고 채식을 지향하는 등의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팁을 팔로워들에게 공유하고, 패스트 패션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제로 웨이스트 인플루언서였다. 팔로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듬해인 2019년 안나는 뜻을 같이 한 야스민 메데이로스와 ‘어떤 상황에서도 입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제품’을 기치로 R-코트를 공동 창업했다.

2018년 안나 마시엘로가 우산 2개 반을 사용해 집에서 만든 우비. 이미지|Anna Masiello 인스타그램

브랜드가 판매하는 제품군은 겨울 파카, 반바지, 숄더백, 모자, 크리스마스 장식품 등 크게 5가지다. 제품을 만드는 주재료는 폐우산과 버려진 플라스틱 병뚜껑 같은 쓰레기다. 금속 단추는 일부 재활용 재료가 섞인 것을 구입해 사용하고, 로고 라벨은 재생 플라스틱 원단에 프린트한다. 옷에 관한 정보를 담은 내부 라벨은 따로 만들지 않고 안감에 직접 프린트한다. R-코트는 포르투갈 전역에 고장 난 우산 수거 장소를 30곳 가량 설치해두고 있다. 사는 곳 근처에 수거 장소가 없지만, R-코트의 사업 취지에 공감한 사람들이 우산을 여러 개 모아 찾아오거나 소포로 보내오기도 한다. R-코트는 망가진 우산을 기부하는 이들을 ‘엄브렐라 히어로즈Umbrella Heroes’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이 작지만 친밀한 커뮤니티를 통해 지금까지 2000개가 훨씬 넘는 개수의 우산들이 제품으로 탄생했다.

고장 난 우산이 도착하면 우산대와 원단, 그리고 부속품들을 모두 분리한 후 세척하는 과정을 거친다. 다음 단계는 원단의 종류와 색상, 크기를 기록하고 분류하는 것이다. 원단의 크기에 따라 어떤 제품으로 만들어질 지가 결정된다. 원단들은 디자인뿐 아니라 두께와 방수 정도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분류 작업은 전체 작업 단계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작업에 속한다. 모든 제품은 재봉사 5명이 수작업으로 만든다.

가장 큰 원단을 사용하는 제품은 파카다. 크기가 작은 원단은 가방, 모자, 액세서리류를 만드는 데 쓴다. 대체로 파카 하나에 우산 5개 정도가, 가방에는 3개 정도가 들어간다. 제품을 만들고 남은 천 조각들은 다음 제품을 만들 때 사용하기 위해 항상 남겨둔다. 가방이나 모자의 작은 부분에도 사용하지 못할 만큼 작은 천은 파카의 라이닝이나 액세서리 고리에 사용한다.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아무리 작은 자투리 천도 일단은 보관한다. 아직 다양한 제품을 개발 중이기 때문에 그런 천들도 나중에 재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보고 있다. 제품들은 원단 패턴에 따라 ‘클래식’ 라인과 ‘유니크’ 라인의 두 종류가 있다. 클래식 라인은 검은색,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 등의 일반적인 색깔의 단색 제품이고, 유니크 라인은 레오파드 등 독특한 포인트 패턴이 있는 제품이다. 같은 디자인의 제품이 단 하나만 있는 업사이클 의류의 특성상 시제품이나 심하지 않은 불량이 있는 제품도 할인을 적용한 후 판매하고 있다.

우산 원단인 만큼 모든 제품이 기본적인 방수가 가능하지만, 각 제품마다 내수 강도는 조금씩 다르다. 4가지 사이즈로 제작하지만 같은 천을 구할 수 없기에 한 가지 디자인에 단 하나의 사이즈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R-코트는 현재는 포르투갈 내에서 온라인을 통해서만 지속 가능 패션에 관심 있는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다. 앞으로는 우산대로 직접 금속 단추를 제작하는 것, 그리고 어린이 의류 라인을 출시하는 것이 계획이다. 개인 주문 제작도 고려하고 있다.

R-코트는 “창의성과 혁신이 있는 한 쓰레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무엇이든 새 생명을 얻고 쓰레기장으로 가지 않을 수 있으며, 새로운 아름다움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패션 브랜드가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동시에 환경과 사회 복지의 적극적인 주체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R-코트는 이 같은 브랜드 목표 아래 지구에 버려진 폐기물을 줄이는 데 기여하면서 스타일리시한 옷을 입을 수 있는, 윤리적이고 공정하며 지속 가능한 패션을 지향한다. 그리고 ‘엄브렐라 히어로즈’ 등 R-코트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들과 적극적으로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의 피드백을 받는다. 그래서 R-코트는 자신들을 커뮤니티 기반 브랜드라고 부른다.

국내 브랜드 큐클리프CUECLYP와 일본의 플라스티시티PLASTICITY도 몇 해 전부터 폐우산을 주재료로 활용해 패션 제품을 제작해오고 있다. 큐클리프는 폐우산 외에도 폐현수막과 폐포스터를 활용해 각자 다른 프린트를 가진 개성 있는 가방과 지갑, 필통 등을 만든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또 그만큼 많이 버려지는 투명 비닐우산을 소재로 사용하는 플라스티시티는 내용물이 비쳐보이는 독특한 질감의 투명 가방과 지갑, 모자 등을 만들고 있다.

업사이클링은 패션업계에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때로는 쓰레기 자체가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업사이클링 브랜드의 대명사, 프라이탁FREITAG 이후로도 래코드Re;code, 누깍Nukak, 강혁KANGHYUK 등 세계 곳곳의 브랜드들이 쓸모가 다한 제품의 원단들을 창의적으로 재사용한다. R-코트의 제품들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현수막, 텐트, 낙하산, 소방복, 자동차 방수포, 가죽 시트, 에어백과 같이 원단 자체의 힘은 남아있지만 본래 용도에 사용할 만큼 튼튼하지 못해 용도 폐기된 물건들에 전과 다른 가치를 불어넣은 새로운 제품들을 소비자들 역시 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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