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을 위한 넉넉한 여백, 블루보틀 판교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가지런한 질서가 깃든 블루보틀 판교점은 매뉴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공간의 근본적 가치를 전해준다.

쉼을 위한 넉넉한 여백, 블루보틀 판교점

블루보틀의 정체성은 ‘신선한 커피를 제공한다’는 단순한 본질에서 비롯된다. 대량생산한 커피의 품질에 만족하지 못한 창립자 제임스 프리먼James Freeman은 소비자에게 진정한 커피의 맛과 향을 전달하고자 2002년 블루보틀을 설립했다. 검증된 생두를 선별하고품질 관리를 철저히 시행하며 현지에서 직접 로스팅하는 방식으로 커피의 신선함을 극대화했다. 타협 없는 접근법은 매장을 운영하는 몇 가지 원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커피에 온전히 집중하도록 와이파이와 콘센트는 제공하지 않으며, 매장이 넓어도 좌석을 빽빽하게 배치하지 않는 식이다. 하지만 전 세계 매장에서 통용되는 매뉴얼로 천편일률적 공간을 선보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비슷한 디자인의 매장을 찾기가 더욱 어렵다. 공원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든 매장도 있고 디지털 아트나 공예를 접목한 매장, 나아가 무인 카페 매장도 있다. 블루보틀이 커피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를 점유한 데는 차별화된 브랜딩뿐 아니라 장소적 맥락에 따라 공간의 콘셉트와 구성을 달리하는 현지화 전략이 주효했다.

자투리땅에 들어선 블루보틀 판교점. 데드 스페이스가 많을 법한 평면에 바와 테이블 배치, 사선적 요소의 활용으로 정돈된 질서를 만들었다.

블루보틀 판교점 설계를 맡은 유랩은 이곳이 IT 산업의 직결지라는 점에 주목했다. 판교는 거주 인구 못지않게 유동 인구 밀도가 높은 곳으로, 고도화된 디지털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느 지역보다 일상의 환기가 절실했다. 디자이너는 ‘한국의 순백’이라는 콘셉트로 쉼을 위한 여백을 만들고자 했다. 이는 단순히 한국적 요소로 지역성을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매일 높은 강도로 디지털 업무를 수행하는 지역 근무자들에게 사색할 틈새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매장은 두 개 층으로 이뤄지는데, 커피 바와 큰 테이블로 각각 1층과 2층의 구심점을 잡고 그 외의 좌석은 최대한 타인의 간섭이 없는 곳에 배치해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커피에 집중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각 층의 중심 벽면에 스티뮤리Stimuli와 협업하여 개발한 소재를 접목해 쉼을 위한 잔잔한 배경을 만들었다. 자연 빛의 광량에 따라 벽면의 도자에 드리운 명암이 변화해 여유롭고 편안하게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2층 홀에 설치한 각목 테이블은 이 순백의 소재에 조응하듯 공간에 조화로움을 더한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가지런한 질서가 깃든 블루보틀 판교점은 매뉴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공간의 근본적 가치를 전해준다.

매장 1층.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는 기능 공간을 중앙에 집중시키고 방문자를 위한 좌석은 창가에 배치했다.
스티뮤리와 협업하여 개발한 세라믹 소재. 자연 빛에 따라 새로운 장면을 만날 수 있다.
매장 2층. 방문자들이 오롯이 커피에 집중하며 사색하도록 지극히 차분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각목을 켜켜이 쌓아 제작한 테이블이 공간의 질감을 더욱 자연스럽게 만들어준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7호(2024. 1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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