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미감을 담은 차 한잔, 아포테카소울

​영혼을 위한 약방

커피 공화국에도 눈에 띄는 차(茶) 브랜드는 탄생한다. 감도 높은 숍들의 한 자리를 차지한 아포테카소울은 한방과 한국의 자연, 한국 근현대미술에 뿌리를 둔 블렌딩 티 브랜드이다.

한국적 미감을 담은 차 한잔, 아포테카소울
오미자를 히비스커스, 복분자 그리고 돌배와 블렌딩한 ‘오미자 와일드베리’

아포테카소울(Apoteka Soul)을 운영하는 조주연·정지윤 대표는 한의사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체득한 한방의 지혜를 아포테카소울의 블렌드에 녹이며 한국 고유의 미감을 디자인에 담아내고 있다. 전국 산지에서 찾은 좋은 원료를 바탕으로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아무런 제약 없이 차를 즐길 수 있도록 모든 블렌딩 티가 가향과 가미 처리를 하지 않은 디카페인 차라는 것도 특징. 두 사람은 차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회복하는 시간을 선사하고자 한다.

Interview

조주연·정지윤 아포테카소울 공동 대표

인터뷰는 두 사람의 공동 답변입니다.

차와 한방의 의미 있는 교집합

30년 이상 축적된 한방 아카이브로부터 지혜를 빌린다고요. 아포테카소울과 한방은 어떻게 연결되나요?

​브랜드를 시작하기 전에 긴 시간을 들여 우리를 돌아보았어요. 좋아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강점이 무엇인지 고민했죠. 일단 한의사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경험이 우리 삶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마치 ‘서당 개’처럼 한의학적 지식을 자연스럽게 곁눈질해 온 시간이 우리 고유의 문화에 대한 애정이 되어 마음 한편에 단단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평소 어머니께서는 약 대신 일상에서 편안하게 건강을 챙길 수 있는 한방차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저희에겐 우리나라 곳곳의 좋은 재료들을 활용한 대용차가 전통적인 차보다 더 친숙했어요. 전통차는 그만큼 즐기지 않고 지식도 깊지 않으니 전통차를 다루지 않는 것은 당연했죠. 한 가지 약재를 사용하기보다는 한의학적 원리에 입각해 상성을 고려하며 다양한 약재를 활용해 조제하는 한약처럼 단일 원료의 차 보다 다양한 성질의 재료를 조합한 블렌드를 소개하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던 것 같아요. 차를 블렌딩 하며 재료의 특성, 재료 간의 상호 작용 등에 대해 항상 어머니께 자문을 구하고 있어요.

블렌드 티의 재료가 되는 원물
카페인이 없는 대용차, 블렌딩 티에 중점을 둔 데에도 두 분의 취향이 반영된 걸까요?

맞아요. 한 가지 더 방향성에 영향을 준 요인이 카페인에 취약해 주로 카페인이 없는 허브차를 즐기던 저희의 성향이에요. 카페인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대용차 브랜드가 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필요였습니다. 저희와 같이 카페인 프리 대용차에 대한 니즈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아포테카소울’이라는 이름은 어떤 뜻이에요?

브랜드명에는 저희가 이 브랜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꼭 담고 싶어서 정말 고심해서 만들었어요. 아포테카소울의 차가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저희 차를 만나는 분들의 일상에서 몸과 마음의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일단 ‘아포테카(APOTEKA)’는 과거 약재상 또는 약국을 뜻하는 ‘아포세카리(Apothecary)’에서 철자를 변형해 가져왔어요. ‘소울(SOUL)’은 영혼을 뜻하고요. 아포테카소울은 ‘영혼을 위한 약방’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요.

로마자와 한글이 혼용된 로고를 보면 ‘ㅅㅗㅇㅜㄹ’이 ‘서울’로 읽히기도 해서 재밌어요.

맞아요. 그래서 저희의 베이스인 서울을 이름에 담을지 소울과 서울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본래 의도를 담아 소울로 결정했죠. 가끔 아포테카’서울’로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점 또한 저희 브랜드를 기억하기에 재미있는 요소가 되리라 생각해요.

한국 근현대미술로부터 영감받은 디자인

이어서 로고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소울’만 한글로 풀어 쓴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아포테카소울을 처음 기획할 때 한국적인 것을 낯선 시선으로 재해석해 소개하고 싶었어요. 디자인 과정에서 한국 근현대회화와 사진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고, 특히 이중섭의 작품 서명에서 한글 자모를 풀어 쓰는 방식이 익숙한 듯 낯설게 느껴졌어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과거의 우리 것을 디자인 요소로 가져와 활용하며 이를 접하는 분들께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포테카소울의 작업실 벽,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개한 작품들도 보인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김환기, 이중섭, 한영수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과 공예품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죠.

먼저 단순하게는 아포테카소울을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한국의 회화, 공예 문화를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특히 외국인들에게요. 그리고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하자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가 한국 근현대 작가들에 영감을 받았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무드를 브랜드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역사와 전통을 잇는 가게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항상 아쉽고 안타까웠어요. 아포테카소울의 오프라인 공간을 만든다면 그동안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개해 온 것처럼 시대적 무드를 담아낸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인스타그램의 게시물들이 아포테카소울이 그리고 있는 공간에 대한 무드 보드라고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티백 패키지는 심플한 화이트 컬러의 상자이고, 상자를 열면 블렌딩 티를 연상시키는 그림 카드가 보여요. 패키지 디자인을 통해서는 어떤 느낌을 주고자 했나요?

평소 선물하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저희 차를 받아 보셨을 때 선물 받는 듯한 기분을 느끼길 바라며 패키지 디자인을 기획했어요. 티 카드의 아트워크는 저희가 직접 작업해요. 블렌드마다 전하고자 하는 인상을 그대로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티 카드 뒷면에 블렌드에 대한 설명이 있기도 하지만, 이미지를 통해 즉각적으로 차의 맛과 향, 그 너머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재미를 더하고 싶었어요.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티 카드의 그림과 함께 차를 마시며 잠시 사색하는 시간을 갖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아포테카소울의 첫 아트워크 포스터. 이 작품은 유나 아카바네의 연작 중 하나로, 그녀는 이 시리즈에서 일상의 지극히 평범한 풍경들을 추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순간의 공기를 담아내는 데에 집중했다.
지난해 6월 아포테카소울을 론칭하며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유나 아카바네(Yuna Akabane)와 아트워크 포스터를 만들게 된 배경도 궁금해요.

아포테카소울을 시작하기 전 스웨덴에 위치한 카펠라고든(Capellagården)이라는 수공예 학교에서 잠시 유학했어요. 유나는 그때 학교에서 만나 함께 공부한 가장 친한 친구예요. 뉴욕 프랫(Pratt Institute)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한 그녀는 아름답고 흥미로운 작업을 왕성하게 해오고 있어요. 저희는 작가인 그녀의 큰 팬이기도 해요. 여담으로 유나의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평생 차 가게를 운영하셨고,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호지차를 맛볼 수 있었는데요. 아포테카소울의 ‘호지허니’는 유나와의 추억 덕분에 만들게 된 제품입니다. 저희가 처음 티 브랜드를 만든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가장 기뻐하며 아포테카소울을 위해 자신의 상품을 사용하도록 배려해준 고마운 친구예요.

아포테카소울의 블렌딩 티

지난해 5월 아포테카소울의 하동 차 워크숍에서 본 풍경
처음 선보인 오리지널 블렌드 ‘유자스프라우트’만 해도 고흥 유자, 제주 감귤피, 부여 새싹보리를 블렌딩했는데요. 기본이 되는 원료들은 어떻게 선택하나요?

아포테카소울의 블렌드는 가향과 가미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차를 우렸을 때 본연의 맛이 풍성하도록 원료 자체의 품질과 로스팅 과정에 더욱 신경 쓰는데요. 우리나라 곳곳의 다양한 지역에서 좋은 품질의 원료를 수확해 공급받을 수 있도록 전문적인 로컬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블렌드의 아이디어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요?

시작점은 매번 달라요. 예를 들어 ‘유자 스프라우트’의 경우에는 아주 단순하게 블렌딩 테스트 중 접하게 된 고흥 유자의 맛과 향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블렌드를 조합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에 반해 ‘진저 민트’는 일상에서 특정한 순간을 떠올리며 그때 함께하기 좋은 차를 찾아가는 느낌으로 블렌드를 만들어 갔죠. 또 조금 다른 경우도 있는데요. 이번 가을에 새롭게 선보이는 두 가지 블렌드 중 ‘보리밭’은 장욱진의 ‘자화상’에서 블렌딩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회화 작품으로부터 시각적인 영감을 받아 맛으로 그 이야기를 풀어낸 시간이 재밌어서 앞으로도 이런 블렌드를 더 소개하려고 해요.

아포테카소울의 티백 패키지와 티백 제품을 보관하는 아포테카소울 티 컨테이너
아포테카소울의 대표 차로는 어떤 걸 꼽을 수 있을까요?

한 가지만 꼽기에 저의 블렌드 수가 많지 않기도 하고, 각 블렌드 모두 아포테카소울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모든 차가 저희를 대표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와인의 떼루아처럼 재료의 품종, 생산자에 따라 같은 재료라도 서로 다른 맛과 향을 지녔고, 그런 재료를 블렌딩했기에 저희의 모든 블렌드는 개성 넘치는 차입니다.

지금 계절에 어울리는 차를 추천한다면요?

기존 블렌드 중에는 ‘골든 시나몬’과 ‘진저 민트’를 추천해요. 가을과 겨울에 따뜻하게 마시기 좋은 조합을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차는 단독으로 마셔도 좋지만 디저트를 곁들이면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어요. 골드시나몬은 버터의 풍미가 가득한 디저트, 진저민트는 초콜릿류의 디저트와 페어링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10월에 출시한 ‘보리밭’, ‘머그워트 베어’ 역시 가을·겨울에 잘 어울리는 블렌드예요. 보리밭은 모든 디저트와 잘 맞아요. 머그워트 베어는 떡과 함께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블렌딩 티와 함께 꿀차도 소개하고 있어요.

꿀차는 앞서 말씀드린 성장 배경과 관련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집에서 만들어 타 주시던 인삼 꿀차가 있었어요. 추운 계절에는 보온병에 담아 학교에서도 마셨던, 학창 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있는 차인데요. 아포테카소울을 준비하며 여러 아이디어를 내다가 자연스레 꿀차 이야기가 나왔고, ‘진생허니’로 저희 꿀차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아포테카소울을 만나는 장소

논픽션 삼청에서 만날 수 있는 아포테카소울의 차들
아포테카소울은 지난해 프리츠한센 코리아에서 진행된 ‘한국 가을의 맛’ 사전 리셉션의 차 파트로 함께했다.
아포테카소울의 오프라인 숍은 없지만 논픽션 삼청과 샵아모멘토 율곡, 숍 그로브에서 만날 수 있어요. 공예나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브랜드들과 함께 있어서 인상적이었는데요. 이들과 어떤 관점을 공유했나요?

아포테카소울이 가진 한국적인 아이덴티티를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세 브랜드의 공간 모두 여행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고, 방문하는 분들에게 저희 시선이 담긴 한국 고유의 차를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 저희 또한 참 반가웠어요.

지난 9월에는 숍 그로브에서 두 차례 나만의 티 블렌드를 만들어보는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숍 그로브와 팝업 스토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로브 대표님이 팝업 기간 중 워크숍을 열어보자고 먼저 제안해 주셨어요. 마침 저희도 꽤 오랫동안 티 블렌딩 워크숍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즐겁게 워크숍을 준비하고 진행했습니다. 아포테카소울 티의 핵심은 한방의 한약 같은 ‘블렌딩’이에요. 단일 재료보다는 서로 다른 재료들이 만나 새로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이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워크숍에서는 참여한 분들은 먼저 저희가 준비한 다양한 재료를 탐구하고, 자신만의 블렌드 테마를 정해 그에 따른 맛과 향을 조합해 한 가지 블렌드를 완성했어요. 다양한 시점에서 블렌딩 테마를 정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함께하며 저희도 새로운 영감을 얻는 시간이었어요.

앞으로 아포테카소울을 통해 어떤 경험을 나누고 싶나요?

‘Restore your soul’, 아포테카소울의 슬로건이에요. 아포테카소울을 만나는 시간이 단순히 차를 마시는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회복하는 경험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분들이 기념품으로 가져가고 싶은 한국의 차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해외여행에서 기념품으로 자주 사게 되는 품목 중 하나가 그 나라만의 차잖아요. 아포테카소울을 처음 접했을 때 한국을 추억할 수 있는 좋은 기념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하는 것이 저희 소망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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