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박정민, 고민시 배우가 추천한 인생책은?
<영화문고 - 영화 출판과 읽기의 연대기, 1980년 이후> 전
한국영화박물관에서 국내 최초로 영화 출판에 관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영화 출판의 연대기를 조명하는 자리로 배우, 감독, 평론가가 추천하는 책부터 그래픽 디자이너가 재해석한 출판물까지 만날 수 있다.
서울 상암동에 자리한 한국영화박물관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바로 기획전 <영화문고 – 영화 출판과 읽기의 연대기, 1980년 이후>(이하 영화문고)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11월 8일부터 오는 2025년 2월 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국내 최초로 영화 책을 주제로 1980년부터 현재까지 영화 출판의 연대기를 조명한다. 무엇보다 영화 출판은 당대 유행 경향에 따라 변화와 부침을 겪었는데 그 흐름을 통해 지난 40여 년간의 한국 영화 문화를 살펴본다는 점이 흥미롭다.
텍스트 힙 열풍,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전시 기획의 배경에는 텍스트 힙의 열풍과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자리한다. 이러한 독서 열풍은 영화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영화 책을 읽어 왔는가를 살펴보는 건 곧 독자 또는 관객의 영화에 대한 심리와 문화를 확인하는 한 방법이다. 크게 세 가지 갈래로 구성된 전시 <영화문고>에서 첫 번째 갈래는 바로 이 지점을 주목한다. 1980년부터 현재까지 출판된 영화 책을 들여다보며 영화 문화를 탐구하는 것이다.
영화 출판은 전통적인 출판과 달리 당대의 유행 경향을 따랐다. 즉, 출판이 문화와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문화와 트렌드가 출판을 견인했다. 이러한 영화 출판의 성격을 고려해 마련된 이 섹션은 당시 영화 산업의 화두는 무엇이었는지, 영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상호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학계에서는 어떤 영화 이론이 유행하였는지를 보여준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1980년 이후의 영화책’ 그리고 ‘1990년대와 그 전후의 영화 출판’ 두 섹션이 대표적이다. 1980년부터 현재까지 출판된 영화 도서 중 반드시 읽어야 하는 주요 도서부터 이제는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도서까지 500여 종, 3,000권의 책을 소개한다.
영화 감독, 배우, 소설가, 평론가는 어떤 책을 읽을까?
이번 전시의 두 번째 갈래는 바로 ‘일련의 추천’ 섹션이다. 말 그대로 누군가가 자신이 읽은 일련의 책을 소개해 주는 세션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누군가에 해당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영화문고>전에서는 영화감독 박찬욱, 배우 박정민과 고민시, 문화 평론가 손희정, 영화평론가 정성일, 소설가 김중혁, 감독 정주리, 작가 정서경 등 8인이 추천하는 영화 및 비영화 도서를 만날 수 있다.
영화 출판을 주제로 다루는 만큼 8인의 인물은 영화 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 있는 이들로 추렸다. 박찬욱 감독은 소설을 각색해 <박쥐>(2009), <아가씨>(2016), <리틀 드러머 걸>(2018) 등의 작품을 연출했을 만큼 애서가로 알려졌다.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5권의 소설을 추천했다. 그중에서도 가즈오 이시구로의 ‘창백한 언덕 풍경'(2012)를 추천했다. 뛰어난 묘사력에 매료돼 영화화하기 위해 판권을 알아볼 정도였다고.
한편 작가로 책을 내기도 했고, 서점을 운영했으며, 현재는 출판사 대표까지 역임하고 있는 박정민 배우의 추천 도서도 눈길을 끈다. 그는 무려 7권을 추천했다. 영화 도서 중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박찬욱의 몽타주'(2022)와 류승완 감독의 ‘류승완의 본색'(2008)을 추천했고, 비영화 도서 중에서는 최근 영화로 만들어진 김혜진 작가의 소설 ‘딸에 대하여'(2017)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최근 예능, 영화, 드라마 등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져가는 고민시 배우의 추천 도서 목록도 주목할 만하다. 생활고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미라로 만든 딸의 이야기를 담은 문미순 작가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2023)을 추천했다. 그녀는 “사회가 이러한 이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뼈가 시리도록 아팠다”라고 회고했는데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소설가 김중혁, 영화감독 정주리, 영화 평론가 정성일, 문화 평론가 손희정, 작가 정서경이 추천한 일련의 도서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와 영화가 만날 때
전시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갈래의 주인공은 그래픽 디자이너다. 서점처럼 구성된 전시 공간 내 곳곳에는 디자이너 그룹 신신, 그래픽 디자이너 정사록, 그래픽 디자이너 배민기와 북 아티스트 김명수, 디자인 스튜디오 프론트도어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국내 그래픽 디자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디자이너 그룹 신신은 영화 속 핸들 장면만을 모은 아카이빙 도서 <핸들-북 클래식>을 소개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정사록은 영화속 인물의 실루엣만을 모은 <군상>을 선보였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그래비티>(2013)와 <로마>(2018)의 패닝 장면을 활용해 파노라마 형태로 만든 아코디언 도서도 흥미로운데 그래픽 디자이너 배민기와 북 아티스트 김명수의 협업 작품이다. <망점들>은 디자인 스튜디오 프론트도어가 도서와 영상을 혼합한 형태의 작품이다.
전시에 참여한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작품과 함께 김태양 감독이 편집하고 연출한 비디오 에세이 <부록 – 책이 장면이 될 때는>도 특별 상영한다. 장편영화 <미망>으로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제26회 우디네 극동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그는 그만의 서정적 감성을 영화 전반에 녹여냈다. 영화 속에는 책과 서점의 풍경,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한편 전시 <영화문고>는 제목처럼 서점과 다르지 않다는 점도 흥미롭다. 실제로 책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출판에 대한 이야기부터 문화 인사 8인이 전하는 일련의 추천작, 그리고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한 영화 출판의 모습을 만난 뒤 바라보는 영화 출판과 책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다면 상암동에 자리한 한국영화박물관에서 직접 확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