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HOU 허우석

크리에이티브를 완성하는 커뮤니케이션

브랜드의 핵심을 포착하고 이를 패키지와 제품으로 구현하는 스튜디오 HOU의 허우석 대표는 본질에서 비롯된 이유 있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클라이언트, 제작업체, 외부 디자이너 등과 솔직하게 소통하며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는 그의 디자인에서는 업계의 전형에서 비켜난 독창성이 묻어난다.

스튜디오 HOU 허우석

스튜디오 HOU는 사실상 뷰티 전문 디자인 스튜디오라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뷰티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브랜드의 핵심을 포착하고 이를 패키지와 제품으로 구현하는 허우석 대표는 본질에서 비롯된 이유 있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클라이언트, 제작업체, 외부 디자이너 등과 솔직하게 소통하며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는 그의 디자인에서는 업계의 전형에서 비켜난 독창성이 묻어난다.


스튜디오 HOU의 포트폴리오에는 유독 뷰티 브랜드 관련 디자인 프로젝트가 많다.

스튜디오 설립 전 산업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면서 하이테크보다는 로테크가 성향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화장품을 디자인할 때 브랜딩과 그래픽 디자인도 함께 활용해야 하는데, 평소 둘 다 관심이 많은 분야였기에 흥미가 있기도 했고. 스튜디오 초기에는 전방위로 활동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차츰 뷰티 분야로 특화시키자는 생각이 커졌다.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프랑스나 미국만 해도 업계에서 인정받는 유명한 화장품 용기 전문 디자인 스튜디오가 여럿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우리가 뷰티업계에 대해 가장 이해도가 높은 디자인 스튜디오가 되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스튜디오 설립 후 첫 프로젝트를 힌스와 함께 했다.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았는데 당시 힌스도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우리 모두 처음이라 오히려 더 긴밀하게 소통하며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첫 프로젝트인 만큼 인하우스 디자이너라면 시도하지 않을 과감한 디자인을 제안했는데, 클라이언트가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뷰티업계는 개성 강한 인디 브랜드들의 등장으로 대기업 중심의 지형도가 변하고 있었다. 플랫한 느낌의 용기 디자인이 많았기 때문에 입체적 디자인을 시도하는 브랜드가 나오면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물이 립스틱 ‘무드 인핸서’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세컨 스킨 파운데이션, 오드 퍼퓸, 쿠션까지 작업하게 되었다.

스튜디오 HOU가 디자인한 힌스 제품들은 용도는 다르지만 모두 ‘비정형’이라는 콘셉트를 공유하고 있다.

맞다. 그것이 디자이너로서 구축한 힌스의 ‘조형 정체성’이다. 브랜딩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브랜드 정체성을 살려줄 수 있는 시각 언어다. 힌스는 립스틱 출시 이후 향수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는데,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다. 처음 무드 인핸서에서 비대칭을 구현한 것은 립스틱 하면 떠오르는 기본적인 형태인 원기둥에서 탈피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사각 용기로 구성한 다음, 곡면 처리한 두 면을 섞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후 세컨 스킨 파운데이션은 초자 용기 자체를 비대칭으로 디자인했고, 오드 퍼퓸은 용기 안에서 펌프가 들어가는 축을 비대칭으로 설계했다. 쿠션은 측면이 기울어지도록 디자인해 콘셉트를 살렸다.

최근에는 ‘뷰티업계의 애플’이라고 불리는 시타와 협업했다.

시타는 친환경 생분해 플라스틱만으로 패키지를 제작하는 브랜드로, 사용한 용기를 분해해 퇴비로 사용하는 전용 시설까지 보유하고 있다. 스튜디오 HOU는 핸드크림 용기 디자인을 맡았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 자연에서 태어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콘셉트를 제안했는데, 클라이언트는 이를 발전시켜 프로모션용 화보 기획에 적용했다. 마치 땅속에서 발굴하는 듯한 방식으로 완성된 것을 보고 역으로 내가 영감을 받기도 했다. 클라이언트와의 소통과 팀워크가 좋으면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모레퍼시픽 남성 화장품 브랜드 비레디와 함께 일할 때도 같은 생각을 했다. 진행 과정에서 금형 제작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과감한 시도를 제안했는데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었다. 클라이언트와 함께 만들어간 브랜드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

함께 일한다는 것에 대해 느낀 점이 많은 것 같다.

일하는 과정도 재밌고 나 자신도 배우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면 그 브랜드와 계속 일하고 싶어진다. 디자이너에게 힘을 주는 클라이언트들이 있는 것 같다. 선케어 브랜드 테와의 협업도 마찬가지다. 서로 재밌게 이야기 나누면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디자인이 발전했다. 태양을 모티브로 삼아 있는 그대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가볍게 던졌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새로운 시도 자체가 즐거웠다. 앞서 말한 클라이언트들과의 작업이 좋았던 것은 화장품 용기의 기본 형태부터 바꾸자는 디자이너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하고 지원해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일하는 방식 자체부터 합이 잘 맞았던 프로젝트는 특히 기억에 오래 남는다.

스튜디오 HOU만의 협업 노하우가 있다면?

서로 오해하지 않도록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 그리고 결과물의 성공만 바라보고 수평적 관계에서 소통하는 것. 특히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 갑을 관계로 인해 격식을 차리기보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 기한이 모자랄 것 같으면 모자라다고, 이해가 잘 안되면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작업하다 막히면 혼자 끙끙대지 않고 직접 만나 상의한다.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할 때는 동료들이 전부 디자이너이다 보니, 스케치를 보여주며 전문 용어로 몇 마디만 하면 모두 내 의도를 파악했다. 하지만 독립 후 다양한 직종의 클라이언트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레퍼런스 이미지나 스케치만 제시해서는 수익 창출을 고민하는 기업의 경영자에게 제대로 확신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첫 미팅 때 이야기를 오래 나누면서 상대를 최대한 파악한 뒤 그에 맞춰 소통 방식을 조정한다. 뛰어난 디자인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야만 하는 클라이언트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 서로가 이해하는 정보의 양의 균형을 잡기 위한 소통을 중요시한다.

코스메틱 디자이너라면 용기 제작업체와 원만히 소통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

그렇다. 디자인이 완성된 뒤 본격적으로 양산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래서 수년간 다양한 용기를 생산하며 노하우를 얻은 제작업체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자주 찾아가 인사하면서 사적으로도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게 되면 그들도 생산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함께 고민해준다.

힌스 무드 인핸서만 해도 처음 디자인을 용기 제작업체에 보냈을 때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꼭 원안대로 실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긴밀하게 소통하며 의견을 나눈 결과, 단 한 번의 수정 없이 무사히 양산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세컨 스킨 파운데이션도 전문 제작업체에 처음 디자인을 보여줬을 때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이렇게 하면 못 만든다고 혼나기까지 했다.(웃음) 그래도 제대로 구현해보고 싶은 마음에 친근하게 다가가 소통하며 용기를 구현할 방법을 함께 궁리했다. 결국 사람을 얼마나 잘 설득하느냐에 따라 디자인 퀄리티도 결정되는 것 같다.

인디 브랜드와 유독 많이 작업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신생 브랜드와 일할 때는 몸집이 큰 클라이언트와 협업할 때보다 더 과감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소통도 상대적으로 조금 더 편하게 하는 편이다. 론칭을 준비 중이거나 이제 막 첫걸음을 뗀 브랜드의 클라이언트들은 대부분 취향의 감도는 높지만 재정은 넉넉하지 못하다. 그런 경우에는 우선 그래픽이나 브랜딩 측면을 강조해 홍보할 것을 추천한다. 용기 디자인에선 직관적으로 브랜드를 인지할 수 있게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요즘에는 성공적으로 론칭해 존재감을 알린 뒤 디자인에 본격적인 투자를 하는 브랜드들의 의뢰가 많다. 대부분 성장 단계에서 자신만의 조형 정체성을 고민하거나 새로운 디자인 방향성을 모색하는 브랜드들이다. 또 소비력 있는 중장년층이 애용하는 백화점 입점 브랜드보다는 주로 올리브영에서 만날 수 있는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한 브랜드가 많다.

코로나19로 뷰티업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디자이너로서 무엇을 느꼈나?

팬데믹 기간에는 색조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다. 시각적 아름다움 대신 건강한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너 뷰티’를 위한 영양제, 집에서 혼자 사용하기 편리한 뷰티 디바이스의 부상이 대표적이다. 한동안 우리에겐 스킨케어 제품과 향수 디자인 의뢰가 많이 들어왔는데, 최근 들어 색조 화장품 디자인 문의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뷰티 시장 영역이 확장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가 코스메틱 디자인에 뛰어들고 있는데, 과거에 비해 뷰티 시장에 대한 편견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젠더리스 디자인의 증가, 개성 강한 인디 브랜드의 출현 등의 현상에 주목하며 일하고 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42호(2023.08)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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