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영 디자이너 앰배서더 채범석

근미래적 세계에 놓인 아트퍼니처

채범석은 독자적인 세계관, 콘셉추얼한 디자인으로 뚜렷한 개성을 보여 주고 있는 가구 디자이너다. 그가 현재 집중하고 있는, 시공간이 해체된 세계 속에 놓인 무언가를 상상하고 이를 아트퍼니처로 구현하는 일에 대해 들었다.

올해의 영 디자이너 앰배서더 채범석

20여 년간 빛나는 신진 디자이너를 조명해온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가구 디자이너 채범석은 지난 연말 공개된 2022 베스트 영 디자이너 3인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올해의 영 디자이너 앰배서더’로 선정됐다. 베스트 영 디자이너 선정 당시, 심사위원들은 독자적인 세계관, 콘셉추얼한 디자인으로 개성을 확실히 보여준 채범석을 만장일치로 호명했다. 지금 채범석은 시공간이 해체된 세계 속에 놓인 무언가를 상상하고, 이를 아트퍼니처art furniture로 구현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구축한 근미래적 세계에는 무엇이 놓여 있을까.

올해의 영 디자이너 앰배서더로 선정됐다.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에 참여한 이유는.

고등학생 때부터 〈월간 디자인〉을 읽었다. 고향이 전남 순천인데, 당시 근처에서 디자인 관련 정보를 얻을 방법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간 디자인〉을 보면서 자연스레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이나 디자인 행사에 대해 알았다. 언젠가 디자이너가 되면 꼭 참여해 보겠다는 바람을 품게 됐다. 많은 이에게 내 작업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을 기회라는 점도 좋았다.

채범석 디자이너의 ‘포스트-콜랩스’ 시리즈. 사진 제공: 채범석
아트퍼니처를 주로 선보여 왔다. 왜 가구에 집중하게 됐나.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이었기에 산업디자인과로 진학했다.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다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자동차는 정교한 기능을 필요로 하므로 디자인과 기능을 동시에 깊이 고려해야 했다. 기능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하다 보니 갈증이 있었다. 비교적 단순한 기능을 가진, 개성을 더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원했고 가구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또 자동차는 실물이 구현되기까지 많은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 렌더링 단계에서 프로젝트를 끝내곤 했다. 실물을 볼 수 없다는 점은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가구는 내가 직접 실물을 만들어 어딘가에 둘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했다는 사실이 가구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많은 영향을 미친다. 자동차를 디자인할 때는 콘셉트를 먼저 잡곤 했다. 그래서 가구를 디자인할 때도 콘셉트부터 구상하게 된다. 소재나 물성에서 디자인을 시작하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콘스트럭션’ 시리즈(2021) 사진 제공: 채범석

생활 속에서 우연히 만나는 개념, 거기서 드러나는 미감에서 작업을 시작한다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면.

불현듯이 떠오르는, 그때그때 꽂히는 주제가 있다. 이를테면 첫 시리즈 ‘콘스트럭션the Construction’(2021)은 당시 살던 동네의 공사 현장을 보고 시작했다. 건물을 둘러싼 비계에 파란색 안전망이 덮어씌워져 있었는데, 그 사이로 빛이 투과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후 건축에 대해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건축과 가구 디자인이 닮은 점이 많다고 느꼈고, 건축 이론이나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미감을 디자인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식으로 생활하며 문득 스치는 것을 붙잡아서 발전시켜보는 편이다.

〈Wall Polycarbonate Stand shelf〉(2021), 340*300*1200, Polycarbonate / Aluminium. 사진 제공: 채범석
그 후로도 다양한 시리즈를 보여줬다. 익숙한 인식을 깨고 거기서 벗어났다는 점이 작업물의 공통점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작업을 꾸준히 선보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소재나 물성 하나를 정하고 끊임없이 변주하는 작업도 멋지다. 작가의 개성을 확실하게 드러내기에도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 나는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이야기를 푸는 일이 재미있다.

상형문자의 형태를 입체적으로 구현한 시리즈 ‘GLYPHICS’(2022) 사진 제공: 채범석
GLYPHICS 스케치. 사진 제공: 채범석
작업에 있어 ‘재미’는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재미는 나에게 무척 중요하다. 내가 재밌게 해야 잘 나오더라.

​기능이 아예 없는 ‘형태로서의’ 가구, 옷을 오직 한 벌만 걸 수 있는 행거 등을 만들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가구의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물이다. 기존 개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편인가.

일부러 그러려고 애쓰진 않았지만 최근 ‘포스트-콜랩스POST-COLLAPSE’ 시리즈를 시작한 후 노력 중이다. 근미래적인 세계관을 구축해 놓고 그 안에서 시리즈를 전개하다 보니, 사물을 볼 때 그 세계관 안에 놓인 모습을 상상해 보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yD-4 HANGER〉, 1050*270*1590, Stainless steel / Acrylic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와이어로 옷 한 벌을 펼쳐 전시할 수 있다. 사진 제공: 채범석
요즘 세계관이라는 말이 자주 들리긴 하지만 가구 분야에 적용된 사례는 흔하지 않다. 세계관을 구성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 달라.

세계관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내게는 몰입을 위한 도구에 가깝다. 작업이 잘 되려면 스스로 몰입해야 하니까.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형상을 구체화하고 결과를 내야 하잖아. 어지럽게 흩어진 관념을 정돈하고 묶어주는 수단이랄까? SF 영화를 보다가 ‘근미래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딱 떠올랐다. 그 생각을 정리해 구현하기 위해서 세계관을 만들어 나갔다.

포스트-콜랩스 시리즈 작업들. 왼쪽부터 행거, 스툴, 수납함, 조명. 사진 제공: 채범석
세계관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 나갔나?

‘근미래적’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이미지는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근미래적이라고 느끼는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했다. 이미지는 물론 음악, 산업 관련 소스 등을 최대한 긁어모았다. 한 달 정도 그 작업을 했더니 자료들이 가진 공통점이 보였다. 공통점을 구체화하면서 세계관을 구축해 나갔다. 기계공학, 우주산업 쪽 소스가 많았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OST처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음악도 내내 들었다.

특정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자신을 거기에 둔 채로 작업하는구나.

그런 과정 없이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는데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면 로또라고 본다. 운이 좋았을 뿐 또 괜찮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너무 낮다. 좋은 게 갑자기 탁 나오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아이디어를 벼리려고 한다.

또 다른 작업을 구상 중인가?

세계관을 설정해 시리즈를 시작한 만큼 이 시리즈를 더 이어갈 생각이다. 이번 서울 리빙 디자인 페어에서 새로운 조명 두 점을 공개한다. 포스트-콜랩스 세계관 안에서 피어날 법한 꽃을 상상했다. 그 꽃을 오브제로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지 구상하며 만들었다.

오늘(2월 22일)부터 열리는 서울 리빙 디자인 페어에서 신작을 공개한다. 사진 제공: 채범석
구체적이고도 드넓은 세계를 만들어 둔 만큼 다양한 것을 떠올릴 수 있겠다. 공유하는 배경이나 감성은 같되 형태와 기능은 다른 작품들을.

그래서 이 시리즈를 계속하고 싶은 것 같다. 이 세계관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이 수없이 많다.

비단 포스트-콜랩스 시리즈뿐 아니라 모든 작업에서 비슷하게 흐르는 느낌이 있다. 어떤 형태나 재질에 끌리나?

금속, 그리고 빛을 투과하는 소재를 좋아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가 대표적이다. 투명한 소재와 금속이 적절한 비례를 이루도록 작업한다. 계속하다 보니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깨달았다.

〈yA-18 STOOL〉(2022), 900*500*530(450), Stainless steel / acrylic. 사진 제공: 채범석
낯선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작업이다. 생각을 길어 올리는 방법이 있다면.

전시를 자주 보고 을지로에도 틈날 때마다 간다. 을지로에 쌓여 있는 자재를 보면서, 저게 가구가 되면 어떤 형태일까? 상상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장에 적어 두거나 손으로 그려본다. 부지런한 편은 아닌데 생활의 포커스는 작업에 두고 있다.

〈TWINS〉(2022), 390*375*450, Polycarbonate / Aluminium. 사진 제공: 채범석
사진 제공: 채범석
스케치. 사진 제공: 채범석
지난해 〈월간 디자인〉과의 인터뷰에서 패션 브랜드 ‘포스트아카이브팩션’과 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작업에 뚜렷한 경계를 짓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작업의 경계를 확장하고 싶은 욕심을 항상 품고 있다. 우선 가구는 공간에 놓이니까, 공간 분야로 넓히고 싶다고 생각한다. 패션 등 비주얼적인 요소가 드러나는 분야에 언제나 열려 있다.

작업실에서 채범석. 사진 제공: 채범석
어디서 당신의 작업을 만날 수 있을까?

2월 22일부터 열리는 서울 리빙 디자인 페어가 가장 가까운 일정이다. 또 부산 디자인 위크에도 참여한다. 보다 가볍게 일상에 둘 수 있는 오브제 작업도 이어 나가려고 하니 기대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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