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KDA Winner] 백세주 리브랜딩
CFC와 국순당이 올해 KDA 브랜드 위너의 영예를 안았다. 이들이 선보인 백세주 리브랜딩 프로젝트는 실험적인 태도와 완성도가 균형 잡힌 브랜딩의 좋은 예다.
브랜드 분야 총평
올해 심사위원은 브랜드 부문을 심사하며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완성도만을 기준으로 하면 무엇 하나 뒤처지는 게 없을 만큼 전반적으로 기본기가 높았다. 특히 라틴 알파벳 서체를 다루는 감각이 눈에 띄게 날카로워진 것이 주목할 만한 지점이었다. 그런 가운데 한자를 전면에 내세운 과감한 라벨 디자인을 선보인 CFC와 국순당의 ‘백세주 리브랜딩 프로젝트’는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위너에 선정되었다. 헤리티지가 강한 브랜드에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바를 보기 좋게 뒤집었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얻은 요인이다.
출품작의 전반적인 수준이 상승한 만큼 독창적인 아이데이션과 참신한 시도가 중요한 심사 기준으로 작용했는데, 백세주의 경우 브랜드 헤리티지를 재해석하는 실험적인 태도와 결과물로서의 완성도 모두 흠잡을 데 없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파이널리스트로 이름을 올린 ‘삼성 Unbox & Disvover VI 디자인’은 상업성과 독창성이 균형 잡힌 브랜딩의 대표적인 예라는 점에서 좋은 인상을 남겼고, 아시아성에 대한 담론을 능숙하게 풀어낸 김영나의 〈AAA〉 앨범도 호평을 받았다. 이제는 ‘잘된 브랜딩’의 정의를 다시 내릴 때가 된 듯하다. 다변화된 매체 환경과 채널의 홍수 속에서 브랜드를 유연하게 변주하고 재해석할 줄 아는 역량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는 걸 올해의 수상이 증명했다.
심사위원 강진(오디너리피플 대표), 심준용(네이버 브랜드 임팩트 리더), 안마노(안그라픽스 공동대표)
백세주 리브랜딩 – CFC & 국순당
유방백세流芳百世. ‘100대에 걸쳐 흐르는 향기’를 뜻하는 말이다. 국순당의 명실상부 스테디셀러 백세주는 향후 100년간 이어갈 맛과 멋을 위해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선언했다. 2020년에도 한 차례 리뉴얼했지만 이번에는 시작부터 달랐다. 32년간 이어온 전통주의 예스러운 향취를 걷어내고 완전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자 한 의지가 강력했다. 변화에 목말랐던 국순당은 자타가 공인하는 리브랜딩 해결사, CFC와 손을 잡았다. CFC 전채리 대표는 “백세주를 한식 주점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모두 잘 어울리는 술로 만들어달라”는 국순당 배상민 대표의 의뢰에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기존의 시각적 자산을 내려놓고 제대로 달라질 각오를 마친 브랜드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결심한 것.
CFC는 백세주라는 이름과 시그너처인 병 셰이프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꾸었다. 가장 시급한 건 브랜드의 고급화였다. 기존 제품에 담겨 있던 해학의 정서를 말끔히 지워내고 그 빈자리를 한국적 미감과 심상으로 채웠다. 라벨 전면을 장식한 백세주의 ‘백百’은 한국의 단색화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깊은 농담과 회화적인 표현 기법으로 백세주의 백년대계 정신을 표현했다. 반면 한자 밑에 작게 자리한 한글 로고는 직선적인 획의 조합으로 현대적 이미지를 강조했다.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사실 제품 라벨에 한글보다 한자 로고를 크게 배치하는 건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매대에 진열했을 때 제품명을 한눈에 읽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순당과 CFC 역시 로고의 가독성과 추상성 사이를 오가며 수차례 디자인을 조율해야만 했다. 그러다 “디자인에 매료된 소비자라면 자연스레 제품명을 찾게 될 것”이라는 배상민 대표의 한마디가 CFC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렇듯 훌륭한 디자인이 탄생하기까지는 디자이너의 노력 못지않게 클라이언트의 결단도 큰 몫을 차지한다.
라벨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암갈색 병은 디자인에 앞서 주질을 개선하기 위한 변화였다. 매출과 직결될 수 있는 큰 디자인적 변화였음에도 국순당은 더 좋은 술을 선보이고자 과감한 시도를 택했다. 이에 CFC는 브랜딩 전략사 비마이게스트와 협업해 병의 브라운 컬러를 ‘흙’의 모티프로 연결한 브랜드 스토리를 설정했다. 땅에서 나는 재료로 술을 빚는 일련의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이 역시 CFC 디자인팀이 양조장을 직접 방문해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지향점을 체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순당과 CFC의 이번 수상은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탄탄한 신뢰 속에서 좋은 디자인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백세주 리브랜딩 프로젝트는 디자인이 소통과 협업의 집약체라는 걸 진정성 있게 입증해낸 사례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