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회사의 ESG 경영 이야기①

에피그램

패션은 스스로의 진정성을 자주 의심받는다. ESG 경영이 화두인 지금, 선한 가치를 좇는 패션 브랜드의 행보는 이벤트에 불과하거나 ‘워싱’을 위한 밑작업이라는 오해를 받기 쉽다. 이 고민을 남들보다 조금 먼저 시작한 곳이 있다. 국내 ESG 경영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 (이하 코오롱Fnc)은 10년 전부터 지속 가능한 가치를 경영 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들의 진정성은 그 지속성으로 증명한다. 패션다운, 패션만이 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코오롱FnC의 행보를 시리즈로 살펴본다. 첫 번째 주자는 에피그램이다.

패션 회사의 ESG 경영 이야기①
경리단길에 위치한 에피그램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날 수 있는 ‘곳간’. 그동안 진행한 다양한 지역의 특산품을 만날 수 있다.

살리기, 로컬 프로젝트

에피그램은 한국만의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해 2015년 론칭한 브랜드다. 한국의 고유함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물론 서울은 매력적인 곳이지만 우리는 안다. 세계적인 대도시에 설계된 경험은 대부분 비슷하고, 서울 또한 그런 도시들을 닮았다는 것을. 에피그램의 발길이 향한 곳은 로컬이다. 인구 감소가 가파르게 진행되는 소도시와 상생을 도모하고, 지역의 고유한 정서를 소개한다. 2017년 봄, ‘제주에 머물다’ 캠페인을 시작으로 경주, 하동, 옥천 등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매 시즌 화보 촬영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단순히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다. 로컬을 탐구하며 발견한 특유의 컬러를 에피그램의 시즌 컬러로 선정해 옷으로도 연결시킨다. 14번째 로컬 프로젝트 울진은 대표 먹거리인 홍게를 모티프로 시즌 컬러로 선정했다. 이름하여 ‘울진 홍게 다홍’. 고창의 복분자, 청송의 백자, 논산의 느티나무도 마찬가지로 지난 시즌 에피그램의 옷에서 발견할 수 있다. 

‘로컬마켓 옥천’에서 선보인 식재료. 옥천살림협동조합과 엄선해 옥천 푸드로 인증받은 농산품이다.

지역의 역사적 배경과 자연환경, 방문할 만한 숍과 흥미로운 주민의 이야기를 엮어 스토리북도 제작한다. 로컬의 상징물 중 빼놓을 수 없는 특산물도 에피그램 매장에서 소개한다. 브랜딩까지 섬세하게 고려하기 힘든 지역 농가를 대신해 패키지 디자인도 한다. 에피그램의 패키지를 입은 특산물은 백화점을 통해 다양한 지역의 소비자를 만난다. 숨겨진 매력이 드러나도록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야말로 패션 회사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경리단길의 에피그램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열었던 ‘로컬마켓 옥천’도 지역 자원을 매력적인 콘텐츠로 소개한 사례다. ‘마마리마켓’의 송하슬람 셰프가 고향 옥천의 식재료로 직접 만든 도시락을 판매하고, 비주얼 아티스트 김건주와 협업해 옥천을 모티프로 한 피크닉 패드, 보냉백 등의 굿즈를 만들었다. 옥천의 정취가 느껴지는 쑥부쟁이와 복사꽃을 모티프로 한 의류 또한 빼놓을 수 없으며 에피그램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상생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2023년 봄여름 시즌 로컬 프로젝트 울진. 울진을 배경으로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로컬 스토리북 울진.

살아보기, ‘올모스트홈 스테이 by 에피그램’

‘올모스트홈 스테이’는 에피그램의 브랜드 철학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프로젝트다. 로컬을 매력적으로 알리는 것을 넘어 로컬에서의 삶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스테이를 만든 것이다. 2019년 고창에 첫 둥지를 틀었고 청송과 하동을 거쳐 지난해 연말, 강진에 네 번째 올모스트홈 스테이를 열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되었을 당시 머물던 주막, 사의재 근처의 한옥 체험관을 리뉴얼해 고즈넉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마련했다. 6개의 객실은 각각 ‘다산’, ‘월출’, ‘청자’ 등의 이름을 붙여 강진만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살린 ‘강진산책’ 콘셉트를 강화하고, 에피그램의 2022 봄여름 시즌 컬러인 ‘강진청자비색’을 공간 연출에 적극 활용했다. 특히 임태희 건축가가 인테리어 설계에 참여한 독채 객실 ‘다산’은 ‘올모스트홈 스테이 강진’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올모스트홈 by 에피그램 강진.

에피그램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지역 호텔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기존 공간을 스테이 공간으로 탈바꿈할 때 리모델링 또한 최소한으로 했다. 또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주민이 운영한다. 덜 정제되고 소박한 공간이라도 그 지역만의 고유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로컬 프로젝트의 상품을 통해 전달하던 소도시의 매력을 마침내 3차원 공간 속 체험으로 확장해낸 것이다. ‘5도2촌’, 즉 일주일 중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농촌에서 보내는 라이프스타일이 새로운 대안으로 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올모스트홈 스테이는 전략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현명한 패션 회사의 ‘노림수’가 제대로 먹힌 걸까? 어쨌든 진정성이야말로 거스를 수 없는 트렌드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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