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뜰리에 에르메스 〈토끼의 질주〉전

크리스티앙 본느프와Christian Bonnefoi의 전시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렸다. 미술사학자, 피카소 전문가로 활동했던 1940년대생 원로 화가는 여전히 회화의 본질을 묻는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토끼의 질주〉전
2013년 작 ‘Babel 19’.

투명한 표면 위에 곡예하듯

토끼가 질주한다. 그러나 전시장에는 토끼가 없다. 대신 피카소와 마티스, 잭슨 폴록 등 지난 100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화가들을 연상시키는 흔적만 있을 뿐이다. 잠시 무언가를 지시하는 듯 보였던 물감은 어느새 형체 없이 투명한 표면 위에 ‘곡예하듯’ 쌓이거나 아예 캔버스를 벗어나 흰 벽 위로 달려 나간다.

물감의 흔적은 앨리스의 토끼가 바쁘게 남기고간 궤적처럼 보이는가 하면 다음 순간에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형상을 잠시 고정해놓은 것 같기도 하다. 수수께끼 같은 이 그림들의 작가는 크리스티앙 본느프와. 미술사학자이자 피카소의 콜라주 전문가로도 활동했던 이력의 이 화가는 회화의 본질을 묻는다. 그는 토끼를 앞세워 미술계의 오랜 질문을 꺼내 든다. ‘우리가 캔버스에서 보는 것은 정말로 무엇인가?’ 그 질문의 끝은 이른바 ‘텅 빈 캔버스’ 혹은 ‘회화의 종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본느프와는 재차 질문을 던지는데, 작가의 이러한 행적은 현재 미술의 흐름 속에서는 오히려 희귀하고 대범하다. 피카소의 콜라주 전문가답게 그의 방법론 중 핵심을 이루는 것 역시 콜라주다. 그는 투명하고 ‘물질성이 희박한’ 재료와 함께 물감을 자르고 덧대어 회화의 평면성을 파괴한다.

티슈 페이퍼에 혼합 매체로 구성한 신작 ‘Composition’.

대표작 ‘Babel’에서 콜라주 조각들을 덧대어 입체적인 장면을 만드는가 하면, 앞뒤를 구분하지 않은 작품 ‘Bi-Face’에서는 공중에 물감만 떠 있는 듯 독특한 효과를 연출하는 등 회화라는 틀을 유지하는 동시에 회화의 한계를 묻는 것이다. 그러나 본느프와를 회화적 실험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작품에 대한 이론적, 역사적 접근법을 내려놓고 문학적 접근법이라는 것을 채택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대형 작업 ‘Composition’에서 잘 드러나는 이런 접근법을 통해 작가는 뚜렷한 지시 대상 없이도 관객을 이상한 이야기의 세계, 혹은 그의 말을 옮기자면 ‘몽상’으로 인도한다. 작가의 이러한 문학적 접근이 미술사학자 특유의 방대한 참고 목록과 맞물려 풍성한 전시를 구성한다.

〈토끼의 질주〉
기간 3월 24일~5월 28일
장소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참여 작가 크리스티앙 본느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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