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대만 디자인 위크
2023년 12월 송산 문화창의공원 일대에서 제1회 대만 디자인 위크가 열렸다. 첫 테마로 ‘탄력적 연결(Elastic Bridging)’을 앞세웠다.
담배 공장을 리뉴얼한 복합 문화 공간
밀라노, 런던, 파리, 헬싱키, 방콕, 싱가포르…. 디자인 위크가 열리는 대표적 도시들이다(참고로 서울 디자인 위크는 2022년부터 ‘서울 디자인’으로 행사명을 바꿨다). 디자인 위크 기간에는 크리에이티브한 에너지가 도시 전역에 넘실거린다. 여기에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가 합세했다. 지난 12월 1일부터 10일까지 제1회 대만 디자인 위크가 열린 것. 행사가 펼쳐진 송산 문화창의공원(Songshan Cultural and Creative Park) 일대는 1937년에 지은 담배 공장을 리뉴얼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대만 디자인 뮤지엄, 라이브러리, 리사이클링 공방 등이 들어서 있다. 로컬 F&B 브랜드, 편집숍, 갤러리, 디자인 회사 등과 더불어 이번 디자인 위크를 주관한 대만 디자인 리서치 인스티튜트(이하 TDRI, 대표 치이 창Chi-Yi Chang)가 같은 건물에 자리한다. 2023 대만 디자인 위크는 ‘시야를 넓히고 교류의 경계를 허물자’라는 미션 아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스마트한 혁신에 초점을 맞췄다. 행사 기간에는 전시와 포럼, 골든 핀 디자인 어워드 시상식, 플리마켓 등이 활발히 이어졌고, ‘오픈하우스 타이베이’의 인기 디자인 스폿을 재개방해 눈길을 끌었다. 모션 포스터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맡은 대만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 ‘하우스’는 나선과 직선, 면의 움직임을 이용해 대만 디자인의 자유로움, 유연함, 연결성을 강조했다.
분야를 잇고 지속 가능성을 강조한 전시
‘탄력적 연결(Elastic Bridging)’은 대만 디자인 위크가 내건 올해의 테마였다. 주제전에는 로컬 디자인 스튜디오 54팀이 참가해 대만 문화를 표상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주제전 기획을 맡은 프랭크 후앙과 초하오 빅터 우는 ‘작은 잎사귀(Small Leaf)’, ‘우리의 사원(Our Shrine)’, ‘재미를 위한 주입식 학교(Cram-school for Fun)’, ‘재료 섬(Material Island)’, ‘상상 구름(Imagination Cloud)’, ‘톱니바퀴 베이스(Gear Base)’라는 여섯 가지 흥미로운 섹션에 맞춰 전시를 구성했다. 건축, 공간·제품·그래픽 등 전통적인 디자인 영역은 물론 미디어 아트, 푸드 디자인, 식물을 주제로 한 작품,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도 전시장에 끌어들였다. 입구에는 호텔 로비를 콘셉트로 모든 프로젝트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작품의 미니어처 샘플을 전시하고,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작은 방을 만들어 원하는 카테고리부터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지속 가능성과 리사이클을 강조한 행사 취지에 맞게 디지털 클라우드 펀딩 플랫폼 ‘굿포인트 익스체인지GoodPoint Exchange’와 협업해 해양 폐기물을 재활용한 전시 패널을 사용한 점도 주목할 만했다. 한편 태국, 독일, 그리스, 멕시코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5팀이 참가한 〈하이퍼링크〉전은 전시장으로 이어지는 통로나 빈 장소, 야외 정원에 예술로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았다. 멕시코에서 활동하는 스튜디오 ALA는 인스털레이션 ‘네일 잇Nail It’을 주제전 천장에 매달았다. 이들의 오리지널 작업은 색색깔의 스틱을 빼곡하게 천장에 매단 형태로, 네일 컬러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콘셉트로 현지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운송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900여 개의 스틱을 대만에서 제작하는 방식을 택했고, 작품에 컬러를 입히지 않고 재료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정원에 설치한 대형 파빌리온은 라움라보어 베를린Raumlabor Berlin의 작업으로, 타이베이에 거주하는 큐레이터와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가 지리적으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화상회의를 한 장소가 공원이었다는 공통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글로벌 행사로 거듭난 디자인 어워드와 포럼
2023 골든 핀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 전시 〈다차원적 증식(Multidimensional Hyperplasia)〉도 대만 디자인 뮤지엄에서 2024년 3월 17일까지 열린다. 1981년에 시작한 골든 핀 디자인 어워드는 2014년부터 해외 출품작을 망라하는 국제 어워드로 거듭났다. 프로덕트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공간 디자인, 통합 디자인 등 네 가지 카테고리로 구성한 가운데, 올해는 23개 국가 8000여 명의 지원자 중 베스트상 25팀, 특별상 2팀을 선정했다. 9개국에서 디자인 전문가 70명을 연사로 초대한 디자인 포럼에서는 미래의 지속 가능성과 연결성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첫날 연사로 나선 네덜란드 예술 기관 헷 니우어 인스티튀트Het Nieuwe Instituut의 디렉터 에릭 첸Aric Chen은 ‘인간 중심’, ‘지속 가능’이라는 표현 자체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며 비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과 그들을 고려한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서 디자이너들의 역할이 ‘문제 해결’에서 더 나아가 ‘시스템을 다시 생각하기’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헷 니우어 인스티튀트의 파일럿 프로그램 ‘뉴 스토어New Store’를 사례로 소개했다(2024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공개할 계획이라니 기대해봐도 좋겠다). 10일간의 대장정을 마친 대만 디자인 위크는 2024년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Interview
치이 창
TDRI 대표
TDRI의 역할에 대해 소개해달라.
대만 디자인 센터가 전신인 TDRI는 2020년 기관명을 바꾸는 리브랜딩을 기점으로 대만 창의 산업의 발전을 위한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정부 기관과 민간 기업의 가교 역할을 하는 우리는 디자인 정책, 기업 혁신, 퍼블릭 서비스, 소셜 이노베이션, 디자인 외교를 핵심 가치로 삼으며, 세계 무대에서 ‘Design in Taiwan’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중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16년 타이베이가 세계 디자인 수도(WDC)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하철(MRT) 중산역 리디자인 등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30여 년 전 개통한 중산역은 시설이 노후한 데다 이용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레노베이션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에 2021년 타이베이 MRT 회사와 컨설턴트, 디자이너와 협력해 사인 시스템부터 티켓 판매대, 키오스크 등 공간을 전면 개편했다. 중산역 리디자인을 통해 디자인 모범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타이베이 지하철역이 전부 현대적으로 탈바꿈되도록 하는 게 우리 역할이었다. 또 화재 진압용 소화기와 소화전, 선거 부스부터 투표함, 투표 용지 등을 리디자인하는 등 대만의 공공 디자인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대만 디자인 커뮤니티에는 어떤 기여를 하고 있나?
골든 핀 디자인 어워드와 대만 디자인 위크를 주최해 역량 있는 디자이너와 디자인 기업을 발굴하는 것은 물론, 이들이 디자인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각종 리서치를 수행하고 결과를 공유한다. 디자인 싱킹 툴 키트를 제작하고 각종 인프라 개발에도 앞장서는 등 디자인계의 발전을 견인한다. 디자인 파워가 곧 국력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2020년 제4회 대통령배 이노베이션 어워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우리의 큰 성과다.
대만 디자인 위크의 다음 계획이 궁금하다.
제1회 대만 디자인 위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앞으로 대만 디자인의 파워를 보여줄 수 있는 쇼케이스로 차츰 자리 잡을 것이라고 본다. 디자인 위크 행사가 열리는 전 세계 주요 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행사로 발전시킬 것이다.
초하오 빅터 우
주제전 공동 큐레이터·아틀리에 TBD 디렉터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달라.
하버드 대학교에서 건축과 랜드스케이프,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2019년부터 아틀리에 TBD를 운영하고 있다. 대만과 멕시코에 기반을 둔 아틀리에 TBD에서 어버니즘, 건축, 그래픽, 오브제 디자인, 큐레이션,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2020년 오픈하우스 타이베이를 공동 론칭하기도 했다.
‘탄력적 연결’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각종 화상회의 앱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등장함에 따라 일하는 패턴이 달라졌다. 물리적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단절이 발생하자 디자이너들은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협업 방식을 찾았다. 이에 단절을 해소하기 위해 해결책을 유연하게 모색하는 디자이너들의 활동을 ‘탄력적 연결’에 비유했다. 대만은 다양한 문화가 녹아든 용광로라 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는 바다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네덜란드, 일본, 중국의 침략을 계기로 다양한 동서양 문화를 받아들였다. 대만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배우고 이를 활용하는 데에 익숙하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탄력적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전시대에 부착된 에어 쿠션은 원래 택배 박스 안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 완충재로 사용하는 것이다. 팬데믹 시기에 배달 주문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충격을 흡수하고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 등장한 사물인 셈이다. 유연한 동시에 투명하고 가벼울뿐더러 구하기도 쉽기에 ‘탄력적 연결’을 은유하는 장치로 전시 디자인에 활용했다.
대만 디자인을 상징하는 여섯 가지 섹션 키워드는 어떻게 도출했나?
건축, 그래픽, 제품 등으로 전시를 구획하는 전통적 방식은 오늘날에는 유효하지 않다.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한 가지 영역에만 몰두하지 않고 다양한 영역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시에 참가한 로컬 디자이너 54개 팀을 대상으로 디자인 프로젝트를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이를 기반으로 전시 섹션을 나눴다. 전시장 입구는 6개로 나뉜 방으로 안내하는 호텔 로비 같은 역할을 한다. 이곳에 서서 호텔 체크인하듯이 각 섹션에 전시된 작품의 미니어처 모형을 살펴보고 원하는 방으로 직행하면 된다. 전시를 관람하는 데에 특정한 순서나 동선을 정하지 않고 자유를 부여했다.
전시 디자인에 지속 가능성 개념을 고려했다.
전시에 사용한 파티션의 대부분은 굿포인트 익스체인지가 해양에서 수거한 폐기물을 리사이클링한 것으로 견고한 내구성을 자랑한다. 이 전시장이 위치한 송산 문화창의공원에서는 매년 2000여 건의 전시가 열린다. 그때마다 엄청나게 많은 목재를 사용하는데 전시가 끝나면 폐기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이에 굿포인트 익스체인지와 협업해 이곳에서 폐기된 목재를 보관할 수 있는 일종의 머티리얼 뱅크를 구축하고 이번 전시 참가 디자이너들이 작품 제작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