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시 브랜딩 프로젝트
롯데칠성음료의 맥주 ‘크러시’는 젊은 세대를 타기팅한 브랜딩과 보틀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다. 크리스털 커팅 형태의 맥주병이 빙산을 연상시킨다.
부수다! 반하다! Krush
최근 몇 년간 국내 맥주 시장이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주류산업정보 실태조사 보고서와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기성 맥주 출고량은 2013년 이후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이다. 와인과 위스키 수요 증가, 사회적 거리 두기, 수제 맥주 열풍의 일상화, 직장의 회식 문화 변화 등의 영향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많은 기업이 새로운 활로를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출시한 ‘크러시Krush’가 이러한 고민 끝에 탄생한 제품이다. 크러시는 롯데칠성음료의 맥주 브랜드 ‘클라우드Kloud’의 확장 버전으로, 젊은 세대를 타기팅한 것이 특징이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맥주가 중장년층 중심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것. 브랜드 컨설팅 전문 기업 더워터멜론은 프로젝트의 협업 파트너로 참여해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브랜딩과 디자인을 내세웠다.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청량감 등을 강조하고자 ‘부수다’, ‘반하다’라는 뜻의 크러시Crush와 클라우드의 K를 결합해 브랜드명을 완성했다.
즐거움을 위한 시원한 폭발
팬데믹 이후 다시 돌아온 술자리의 즐거움을 시원한 폭발에 빗대어 ‘쿨 익스플로전Cool Explosion’으로 브랜드 콘셉트를 설정한 뒤, 이를 일관되게 디자인에 반영했다. 로고는 해방감을 표현하기 위해 좌우로 넓게 확장되는 형태로 디자인했으며, 라벨에는 오로라가 보이는 극지방을 표현해 시원함을 강조했다. 병 디자인도 흥미롭다. 투명한 유리병에 병목이 없는 숄더리스 디자인을 채택했는데, 기존 맥주병이 보통 불투명한 갈색·녹색 유리를 사용한 것과 대조된다.
크리스털 커팅 형태로 맥주병에서 빙산이 연상되도록 하는 등 브랜드 콘셉트를 제품의 디테일한 부분에까지 반영했다. 광고에서도 탄산을 강조하거나 보리밭을 보여주는 맥주 광고의 클리셰를 지양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이에 유진오 롯데칠성음료 맥주BM팀장은 “처음부터 일관성 있게 브랜딩, 디자인, 네이밍을 진행했기에 광고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다”고 답했다. 현재는 식당 외 다른 곳에서도 소비자가 크러시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준비 중이며, 추후 병 외에 캔 등 다른 용기로도 출시할 예정이다.
Designer Interview
박정태 더워터멜론 총괄이사, 김범석 더워터멜론 이사, 권다영 더워터멜론 수석 디자이너
유진오 롯데칠성음료 맥주BM팀장
얼핏 맥주 시장은 레드 오션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크러시를 기획한 이유가 궁금하다.
유진오 수입 맥주와 수제 맥주가 보편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런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곳은 편의점과 마트, 일부 주점 정도에 국한된다. 식당에서 맥주를 마실 때는 이 선택지가 극도로 줄어든다. 40~50대 장년층이 즐겨 찾는 브랜드로 한정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맥주 시장을 크게 가정 채널과 업소 채널로 구분하는데, 롯데칠성음료는 업소 채널에 젊은 세대를 위한 맥주가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Z세대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맥주를 새롭게 기획하게 됐다.
클라이언트의 요청 사항은 무엇이었나?
박정태 소비자들에게 낯선 느낌을 주는 새로운 맥주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존 업계의 성공 공식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프로젝트에 착수한 2022년 11월은 팬데믹 이후 외식 등 술자리가 점차 회복되는 시기였다. 하지만 이미 ‘홈술’ 문화가 부상한 뒤인 데다 위스키·와인·하이볼 등 맥주를 대체할 다양한 선택지가 생겨나기도 했다. 술 없는 술자리 문화도 고려해야 할 점이었다. 이처럼 개인의 취향이 다양해지는 가운데 새 맥주가 좋은 반응을 얻으려면 남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주목성 높은 네이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시선 강탈’을 의도했다.
권다영 클라이언트가 차별화를 강조한 만큼, 더워터멜론도 일반적인 브랜드 개발 과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했다. 통상 브랜드명을 정하고 그 뒤에 제품, BI, 라벨 등을 차례로 디자인하는데, 이번에는 모든 디자인 요소를 병렬로 진행했다. 여러 브랜드 콘셉트를 설정한 뒤, 각 콘셉트에 맞는 브랜드명과 라벨 디자인, 병 디자인 등을 비교했다. 일반적인 프로세스는 아니지만, 덕분에 클라이언트의 의도가 집약된 디자인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가 있다면?
김범석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처음에는 새로움을 강조하지만 의사 결정 과정을 거치면서 적당히 무난한 결과물로 변질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리하게 벼려진 콘셉트가 시간이 갈수록 뭉툭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클라이언트와 더워터멜론이 함께 끝까지 기획 의도를 관철해 일관성 있는 디자인이 탄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