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혼합 현실 상점, 슈퍼 피그로
레벨나인이 최근 혼합 현실 플랫폼 ‘슈퍼 피그로Super Figro’를 론칭했다. 이를 기념해 일종의 메타버스 공간인 ‘슈퍼마켓 피그로’와 레벨나인 스튜디오에서 크리에이터 총 7팀의 온·오프라인 전시를 병행해 눈길을 끌었다.
Designer Interview
김정욱 레벨나인 디렉터
슈퍼 피그로는 어떤 플랫폼인가?
쉽게 말하자면 메타버스 기술을 바탕으로 크리에이터를 소개하는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레벨나인이 그동안 진행했던 전시를 위해 생성한 각종 디지털 에셋을 오픈소스로 공개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전시용 키오스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터치스크린과 PC, 각 전선이 연결되는 위치까지 고려해서 도면을 그리는 작업이 수반된다. 그런데 어렵게 완성한 키오스크 도면 파일은 전시를 마친 후 용량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폐기되거나 외장하드 어딘가에서 잊히기 십상이다. 어느 워크숍 강연에서 이런 아쉬움을 토로했더니 데이터를 지우지 말고 공개해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이에 우리만의 노하우가 다른 이들의 작업 베이스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디지털 에셋을 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대한 발상을 떠올렸다.
디지털 파일을 배포할 뿐만 아니라 실물을 판매하기도 한다.
우리 외에도 6팀이 참가했다. 그중 스튜디오안츠는 우리의 기획 취지에 공감해 디지털 에셋을 공개했고, 다른 팀들은 가구, 오브제, 의상 등을 판매하는 식으로 참가했다. 플랫폼의 첫 공개는 지난 12월 21일부터 3일간 메타버스인 ‘슈퍼마켓 피그로’를 오픈하면서 이루어졌다. 최대 접속자 수 20명만 입장하도록 했는데 현재는 슈퍼 피그로 웹사이트를 통해서 작품을 감상 및 구매할 수 있다. 앞으로는 웹사이트와 메타버스 환경을 연동해 슈퍼마켓 피그로 내에서 접속자가 구입을 원하면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까지 원스톱으로 연결되도록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그런데 왜 ‘슈퍼마켓’이라는 요소를 가져왔나?
크리에이터의 작품을 사고파는 마켓이지만 그것을 초월한다는 뜻에서 앞에 ‘슈퍼’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그랬더니 우리에게 익숙한 ‘슈퍼마켓’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는데 오히려 이 부분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누구나 쉽게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목적에도 부합했다. 접속자들이 상품이 진열된 슈퍼마켓 내부로 들어가면 갤러리나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방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맵이 연결된다. 이곳에서 각각의 작품을 둘러보는 방식으로 메타버스를 경험하도록 했다.
라인 드로잉으로만 이루어진 슈퍼마켓 피그로 공간이 독특하다.
동아시아 감성이지만 정확한 국적을 알 수 없는 사이버 펑크적 분위기를 자아내고자 했다. 레벨나인 멤버들과 리서치하면서 특정 도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거리의 간판 사이니지와 간판 구조물이 건물에 체결된 형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얼핏 보면 태국어나 일본어, 심지어 한자 같지만 자세히 보면 한글로 된 독특한 타이포그래피를 개발해 이를 메타버스 세계 속 간판에 적용했다. 또 의도적으로 컬러 사용을 절제했는데 메타버스 공간이라고 할 때 으레 떠오르는 컬러풀한 맵 이미지에서 탈피해 흑백 만화책 속으로 들어온 듯한 경험을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 프로그램인 런웨이를 활용해 공간을 구현한 것도 새로운 시도였다. 우리가 원하는 도시 골목의 스케치를 학습시킨 후, AI가 제안한 시안을 바탕으로 다시 손으로 그리는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을지로 같기도 하고 대만 야시장, 오사카, 태국 어딘가 같기도 한 골목 분위기가 슈퍼마켓 피그로가 있을 법한 공간으로 완성됐다.
앞으로 슈퍼 피그로의 계획이 있다면?
1년에 2회 크리에이터들의 작품을 드롭하려고 한다. 다음번에는 디지털 에셋 작업 위주로 선보일 예정이다. 다양한 방식의 협업 제안도 물론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