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디자인 컴퍼니, 네임드
전시 공간부터 패션, 주거, 코스메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의 ‘얼굴’을 디자인해온 이들은 최근 개성 넘치는 F&B 브랜드 세 곳과 협업하며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있다.



디테일을 향한 집념
펜타그램Pentagram의 파트너 중 한 명인 사샤 로베Sascha Lobe는 자신의 작업이 “창조와 번역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클라이언트의 철학과 메시지를 시각적인 작업물에 온전히 반영하면서도 디자이너의 창의적 역량을 발휘하는 일이 바로 브랜드 디자인이라는 것. 윤영노 대표가 설립한 네임드 역시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며 한국의 브랜드 디자인 생태계를 다채롭게 만들고 있다.
디뮤지엄 MI 개발,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스푼’ 브랜드 리뉴얼, 하이엔드 주거 브랜드 ‘아크로’의 VI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네임드의 장점 중 하나는 디테일이다. 자사 웹사이트와 명함에 적힌 글귀 ‘detail and detail’은 디테일에 대한 이들의 집념을 보여준다. 실제로 네임드는 컬러의 미묘한 변화와 이미지의 미세한 기울기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프로젝트 하나를 완수하기 위해 100가지가 넘는 시안을 제작하는 일도 부지기수. 윤영노 대표는 “클라이언트가 우리에게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맡기는 만큼, 결과물 하나만 보여주면서 무턱대고 믿으라고 설득할 수는 없다. 디자인의 방향성을 설명하고 신뢰를 얻기 위한 과정이다”라며 디테일에 몰두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비즈니스의 수익 구조에 기반한 디자인. 뛰어난 심미성 외에도 고객의 수익 창출에 기여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 또한 네임드의 몫이다. 올해 공개한 피키위키, 마크홀리, UFO 커피 세 곳의 F&B 브랜딩 프로젝트에는 네임드의 이 같은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슈프림과 반스 사이를 점유한 김치 브랜드, 피키위키
커뮤니티 공간 ‘취향관’을 운영하고 유튜버 ‘영국남자’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킷스튜디오의 요청으로 참여하게 된 김치 브랜드 피키위키 프로젝트는 아이덴티티 디자인부터 용기 디자인, 프로모션까지 통합적으로 이루어졌다. 캔 용기를 기본으로 슈프림과 반스 사이에 놓여도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요청에 따라 세련되고 트렌디하게 디자인했다. 영국의 프리미엄 슈퍼마켓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디자인인데 김치에서 연상되는 고정관념을 멋지게 탈피한 것이다. 용기 상단의 농부 캐릭터와 세심히 다듬은 서체가 이를 뒷받침한다. 또 매운맛은 핑크, 스모키 맛은 옐로로 설정해 소비자가 맛을 미리 짐작할 수 있도록 했다. 출시 이후에는 바비큐 브랜드 매니멀스모크하우스와 협업해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제품을 선보였으며 팝업 이벤트도 진행했다. 디자인의 힘이 발현된 덕분일까? 피키위키는 지난여름 와디즈 펀딩을 통해 첫 공개한 이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치밀한 콘셉트로 구축한 막걸리계의 힙스터, 마크홀리
어메이징 브루어리의 자회사 홀리워터에서 출시한 막걸리 마크홀리는 한국으로 유학 온 미국 학생이 막걸리 맛에 반해 성수동에 양조장까지 차리게 되었다는 콘셉트와 페르소나가 독특하다. 이런 스토리부터 패키지 디자인, 인스타그램 콘텐츠 기획까지 네임드가 맡았다. 당시 홀리워터 김태경 대표의 요청은 한 가지. 힙한 막걸리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에 네임드가 제시한 콘셉트는 코믹스였다. 브랜드 곳곳에 배치한 코믹스풍의 디자인이 눈길을 끄는데 펼쳐진 만화책 윤곽선을 본떠 만든 로고의 주황색 도형이 대표적이다. 라벨의 캐릭터 일러스트레이션 역시 의도적으로 미국 만화풍으로 제작했다. 페르소나에 걸맞은 톤을 구사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섭외하는 것 또한 디자이너의 몫. 전통주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요즘, 마크홀리는 젊은 세대를 공략한 디자인으로 막걸리 시장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커피 브랜드, UFO 커피
UFO 커피는 일상 속 엉뚱한 생각을 커피와 결합해 소개한다는 콘셉트의 브랜드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커피를 쉽고 즐겁게 마시는 모습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리브랜딩을 진행했다. ‘유니크한 맛과 향의 조화(Unique Flavor Orchestration)’의 약칭 UFO에서 착안해 브랜드명에 비행접시를 연상시키는 검정 테두리를 두른 로고와 모션 그래픽을 디자인했다. 정교함과 유머러스함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개성을 표현한 시도가 특히 흥미롭다. 다양한 종류의 대중문화가 태동하던 1980~1990년대 미국의 감성을 반영해 광고 영상을 기획하고 디렉팅한 것이 대표적이다. 영상에 쓸 징글과 테마송 제작에 참여할 작곡가와 보컬을 섭외하는 것 역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네임드의 역할이었다. 이처럼 네임드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이해와 독창적인 해석, 프로모션 기획까지, 방향성을 고민하는 브랜드의 믿음직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named-labs.com @named.design
Interview with 네임드 대표 윤영노

“진정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재해석해야 한다.”
스스로를 ‘브랜드 디자이너’라고 소개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특정 영역을 가리키는 수식어 없이 그냥 ‘디자이너’다. 이는 한 가지 역할에 규정되지 않기 위함이다. 직원들에게도 영역을 구분 짓거나 한정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브랜딩을 위해서는 그래픽부터 영상, 공간, UX·UI까지 다양한 분야를 망라해야 한다. 물론 디자이너가 모든 분야에 능통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전공하지 않은 영역일지라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시야와 올바르게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판단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네임드의 특징이다. 장인 정신으로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스튜디오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네임드의 디자이너에게는 여러 분야를 조망하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해부터 집중적으로 F&B 브랜드 세 곳의 브랜딩에 참여했다.
네임드의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문화 예술 분야를 비롯해 주거, 커뮤니티, 패션 등 여러 분야의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유독 F&B 기업과 작업한 경우가 드물더라.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 식음료 브랜드 프로젝트도 충분히 경험해야 한다고 판단해 피키위키, 마크홀리, UFO 커피와 일하게 됐다. 모두 업계의 전형성을 탈피하고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곳이었다.
브랜드 디자인에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진정성과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자극적인 비주얼을 연출하는 것은 솔직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덴티티는 클라이언트가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눈에 확 띄는 브랜딩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더라도 진정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재해석해야 한다.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을 사전에 확인해 공유해야 하고, 해결책 역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브랜드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계약이 끝난 뒤에도 브랜드가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구조까지 설계하는 것이 브랜드 디자인의 역할이라고 본다.

네임드를 9년간 운영하면서 브랜드 디자인에 대한 인식 변화를 느끼나?
15년 전쯤에는 로고를 새로 개발하면 휴지통, 우산에 이르기까지 전부 다 새 로고를 그대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의 등장 이후 브랜드 경험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디자인 신과 클라이언트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브랜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고도화되었다고 느낀다. 가령 브랜드 경험을 디자인한다고 하면 이제는 비주얼 아이덴티티, 서비스 디자인, 공간의 동선부터 음악, 향까지 고민하며 기획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꼭 진행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호텔 브랜딩에 참여하고 싶다. 흔히 호텔을 라이프스타일의 집약체라고 하지 않나. 그동안 라이프스타일 분야의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진행하며 얻은 인사이트를 반영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네임드가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회사의 성장 단계를 버전 1.0, 2.0, 3.0으로 나누고 있는데 현재는 2.0이며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는 네임드를 브랜드 디자인 컴퍼니, 즉 디자인 전문 회사로 소개해왔지만 3.0이 되면 디자인 회사라는 수식어도 빼고 ‘네임드 글로벌’과 같은 이름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사옥 이전 준비와 동시에 자체 비즈니스도 준비하고 있다. 정확히 어떤 분야에 뛰어들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네임드 3.0은 디자인보다 비즈니스에 가까운 일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철저한 시장조사와 고객의 반응을 통해 성공적인 수익 모델을 구축한 뒤 그에 충실한 디자인을 구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