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FnC 한경애 전무·CSO

지속 가능한 패션으로 코드를 전향하는

한국의 업사이클링을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 래코드. 지역 문화를 알리는 에피그램의 로컬 프로젝트. 패션에 환경 및 지역과의 상생을 더한 코오롱FnC의 이러한 행보의 중심에는 한경애 전무가 있다.

코오롱FnC 한경애 전무·CSO

지구 반대편에서 한 ‘꼬맹이’가 외치는 소리에 전 세계 정상들이 귀 기울이게 됐고, 런던의 다국적 비영리 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이 2014년 발족한 RE100 캠페인은 기업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인류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한편, 의식 있는 소비, 즉 미닝아웃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우리 사회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한때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디자이너의 재료’로 추앙받던 플라스틱이 몰아내야 할 인류의 적으로 몰락한 반면 의식 있는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재생 소재가 시대를 구원할 비밀 병기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아무리 매력적인 소재라도 꿰어낼 디자이너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이는 월간 〈디자인〉이 코오롱인더스트리FnC(이하 코오롱FnC) 한경애 전무에게 주목하는 이유다. 17년간 코오롱FnC에 몸담은 그는 남성복 디자이너로 시작해 디렉터를 거쳐 최근 CSO라는 새 직함을 달았다. 창작자로, 기획자로 걸어온 길을 복기하며 한경애 전무의 명민함에 몇 번이고 놀랐다. 변화하는 온라인 환경에서 새로운 브랜드의 흐름을 읽고, 얼핏 패션과 잘 매칭이 되지 않는 지역과의 상생이라는 메시지를 과감히 투영했고, 무엇보다 모두가 무심히 팔짱만 끼고 있을 때 재빠르게 환경이라는 키워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월간 〈디자인〉 2022년 4월호 기사를 재편집했습니다.

코오롱FnC가 찾은 지속 가능성에 대한 해답

올해 새로 CSO라는 직함을 다셨다고 들었어요. CSO 라는 직함은 기업마다 달리 쓰는데 코오롱FnC에서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CSO는 ‘Chief Sustainability Officer’의 약자입니다. CEO 가 재무적 성과를 책임지는 자리라면 CSO는 비재무적 성과를 책임지는 자리라고 볼 수 있죠. 코오롱FnC가 업계 최초로 이 자리를 만들었는데 기업의 가치가 매출만이 아닌 사회적 책임과 공헌으로 평가받는 시대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봅니다. 패션은 환경을 해치는 대표적인 산업으로 알려져 있기에 CSO로서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분명한 점은 이제껏 그랬듯이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기보다 작은 것이라도 바로 실행에 옮기는 실천적인 CSO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언제부터 환경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나요?

예전에도 문제의식을 갖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08년 남성복 브랜드 ‘시리즈’가 연 2회 발행하는 매거진 〈시리즈〉 3호에서 환경문제를 다루면서였습니다. ‘Save Us Save the Earth’라는 이슈였어요. 저는 환경 운동가가 아니에요.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지속 가능성이라는 화두가 트렌드가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확실히 패션 회사들이 요즘 지속 가능성이라는 화두를 다루는 건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석유와 가스 산업 다음으로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강하니까 말이죠.

패션 산업이 온실가스 배출의 10%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죠. 직접 소비자를 상대하는 소비재 기업에서 이런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다만 지속 가능성에 대한 해법은 회사나 브랜드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최근 폐페트병을 리사이클 원단으로 사용하는 게 보편화됐는데, 래코드는 이미 생겨난 재고에 대한 솔루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향후에는 제3의 방식이 생겨날 수도 있는데, 결국 중요한 건 방식이 아니라 진정성 아닐까요? 그저 시류에 영합한 반짝 마케팅과 철학을 갖고 움직이는 것은 분명 다르니까요.

매거진 〈시리즈〉. 연 2회 발행하는 잡지로 남자의 식탁, 수선, 빈티지 등 다양한 문화 현상을 다룬다. 지난 3월 31호를 발행했다.
래코드 굿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한 안전벨트 키링. 사용하고 남은 의류 부자재, 불량으로 버려지는 카시트 등을 활용해 제작했다.
래코드의 DIY 키트 중 소잉 키트.
하지만 아무리 좋은 취지라고 해도 소비자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성공이 어려운 것 아닌가요? 사업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아직 래코드가 천문학적인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는 아니지만, 현재는 소수라도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이들이 있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 결국 이들로부터 가치가 확산한다고 믿거든요. 래코드에서 지금(2022년 2월 기준)까지 개최한 워크숍이 830회 정도 되는데 참석자 수가 1만 2000명이 넘습니다. 단순히 상품이나 전시로만 지속 가능성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과정에서 그 가치가 사람들의 사고에 각인된다고 생각해 꾸준히 워크숍을 열었죠.

코로나 19 때문에 오프라인 워크숍을 연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많은 부분을 온라인 워크숍으로 전환한 상태입니다. 워크숍 참가자들에게는 저희가 제작한 키트를 전달하고요. 버려진 카시트로 지갑을 만들어보는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초등학생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여전히 환경을 지키는 게 거창하고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래코드라는 브랜드가 가진 가치와 철학도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을 수 있죠. 여기서 리폼이나 텀블러 가방 만들기 같은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벤트가 이런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장치가 되어줘요. 현 단계에서는 당장의 수익보다 생각의 변화를 이끄는 게 더 중요합니다.

프라이탁 사례만 봐도 그렇고, 디자인과 브랜딩이 뒷받침되었을 때 선한 의지도 빛을 발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진정성 못지않게 소위 ‘힙’이라는 게 중요한 시대라는 거죠.

프라이탁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답변에 앞서 에피소드 하나 들려드릴게요. 2005년 베를린 트레이드 쇼 ‘SEEK’에서 래코드 전시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한 남자가 쓱 다가 오더니 “우리랑 콘셉트가 같네요”라며 명함을 하나 건네고 갔습니다. 자기네가 여는 파티 초대장과 함께 말이죠. 나중에 보니 프라이탁의 공동 창업자였습니다.(웃음) 물론 디자인이 중요합니다. 래코드는 처음부터 리디자인이라는 개념을 탑재한 브랜드입니다. 브랜드명 자체에 코드code를 재해석하고 재정의(re-)한다는 뜻이 담겨 있죠. 예전에도 홍대 인근을 중심으로 옷을 리폼하는 작은 가게가 있었는데, 그런 곳들과 다른 점이 단지 규모만은 아니라고 봐요. 옷에 새롭게 디자이너의 창의성과 철학을 불어넣는 것이야말로 래코드의 본질이라 할 수 있죠. 덧붙이자면 지금은 사람들이 프라이탁을 트렌디하다고 여기는데 저는 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상상하는 힘, 그리고 그 가치를 이어가는 게 중요한데 래코드 역시 10년쯤 지나니 사람들이 점점 그 진가를 알아봐주는 것 같습니다.

쌀겨에서 추출한 바이오 플라스틱을 소재로 만든 쇼핑백.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였다.
10년이 지나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처음에는 쉽게 인정받고 공감을 얻기 어려웠다는 뜻도 됩니다.

물론이죠. 분명 새 옷임에도 재고로 옷을 만든다고 하면 ‘그거 냄새 나는 거 아냐?’라는 편견을 갖기 일쑤였죠. 사실 지금도 그런 편견과 싸우는 과정에 있다고 봐요. 하지만 무엇보다 어려웠던 건 전통적인 패션 디자인과 시작점 자체가 달랐다는 점이에요. 다른 패션 브랜드가 디자이너의 아이디어, 패브릭, 시즌 컬러로부터 출발하지만, 저희는 물류 창고에서 시작 합니다. 2년 차까지 팔리지 않아 재고로 남은 옷을 재료로 디자인하니 제약이 많죠. 패션을 소비하는 데에는 컬러 트렌드가 매우 많은 부분을 좌우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따지면 철지난 색상의 옷감으로 승부해야 하잖아요. 즉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일반적인 패션 디자인의 방법론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래코드를 처음 기획하고 팀원을 뽑을 때도 ‘일반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일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디자이너를 뽑을 때 어떤 점을 가장 눈여겨 보나요?

브랜드의 철학을 가슴 깊이 이해하느냐가 제일 중요해요. 현재 래코드에서 실장으로 일하는 디자이너는 예전에 저와 함께 남성복을 만들던 사람이에요. 래코드를 처음 구상하고 동료를 찾다가 이미 다른 팀에 배속받아 일하고 있던 그가 떠올랐어요. 늦은 밤 장문의 카톡을 보냈는데 그때 제가 했던 말이 ‘나와 같이 꿈을 실현해보지 않을래?’였어요. 결국 현실 너머를 꿈꿀 줄 아는 디자이너인가가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지역과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인과 공간 프로젝트

패션 디자이너로 시작해 디렉터, 지금은 사업부장까지 되셨습니다.

사실 패션 디자이너가 디렉터 자리에 오르는 게 아주 생소한 일은 아니에요. 옷을 만들다 보니 내가 만든 상품이 고객에게 어떻게 느껴지고, 판매되는지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더군요. 나름대로 진지한 관점으로 생각하고 만든 디자인인데 판매 과정에서 그런 면이 드러나지 않으면 서글프잖아요?(웃음) 자연스레 일련의 과정을 스스로 조율하고 연출하는 역할까지 맡게 됐죠. 디렉터로서 프로모션 방식이나 디스플레이 연출 방식까지 개입할 수 있으니까요. 사업부장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숫자(이익률, 매출 등)까지 브랜딩의 영역으로 봅니다.

‘올모스트 홈’ 스테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에피그램이 운영하는 스테이다. 고창, 청송 등에서 시즌별로 진행했고, 현재는 하동에서 장기 운영 중이다. 고즈넉한 한옥 공간이 에피그램이 추구하는 슬로 라이프를 대변한다.
업의 영역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역시 영업이겠죠?

글쎄요. 오히려 영업은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갔던 것 같아요. 남들이 술자리를 가질 때 저는 바이어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하나라도 더 주려고 했습니다. 트렌드를 제시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이죠. 골프도 안 치고, 술도 잘 안 마시다 보니 저만의 영업력을 개척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서 매년 피티 워모, 밀라노 패션 위크에 참석하고 시즌마다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려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솔직히 영업보다 더 어려웠던 건 숫자를 다루는 일이었어요. 사업 부장은 결국 숫자를 만드는 일인데 아무래도 디자이너 출신으로 이성과 셈보다 감각과 감성이 더 발달했으니까 말이죠.

디렉터로서 처음 맡은 프로젝트가 ‘시리즈’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리즈는 달라진 쇼핑 환경을 간파한 결과물이었어요. 예전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옷을 사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는데 백화점이 아닌 이상 매장에 들어가면 오직 한 가지 브랜드의 제품만 보게 되죠. 하지만 온라인은 달랐어요. 사람들은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장바구니에 제품을 담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멀티 성향의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브랜드가 편집매장을 운영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 당시에는 내부적으로 잡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시리즈가 온라인 환경을 관찰한 결과물이라는 점이 흥미롭네요. 그런데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된 요즘에는 오히려 오프라인 공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 같습니다.

팬데믹이 우리에게 답을 줬다고 봐요. 말씀하신 대로 쇼핑의 경험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많이 넘어갔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저 옷이라는 상품만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과 연 결된 가치, 철학, 생각을 경험하고 느끼기를 바라죠. 그 욕구는 이 시대에 들어와 오히려 더 강렬해지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만족하지 못한 브랜드 경험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한데 백화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저는 우리의 생각을 전달할 다양한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어찌 보면 서두에 언급한 매거진 <시리즈>도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죠. 공간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패션이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필요해요. 콘텐츠란 결국 이야기죠.

지난해 5월 경리단길에서 열린 에피그램의 팝업 스토어 ‘로컬마켓, 옥천’. 옥천 양조장의 지역 막걸리를 비롯해 각종 친환경 굿즈를 선보였다.
에피그램에서 2017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로컬 프로젝트’도 콘텐츠의 일환이겠군요.

맞습니다. 로컬 프로젝트는 에피그램이 원서동에 팝업 스토어 ‘올모스트 홈’을 열면서 구상하게 됐어요. 당시 1층에는 소셜 다이닝을 할 수 있는 키친, 2층에는 리빙 룸, 3층에는 침실을 두고 운영했는데 3층에서 창덕궁의 아름다운 후원이 훤히 내다보였습니다. 그곳을 바라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아름다운 전통이 참 많구나’라고 생각했고 브랜드의 방향성을 전통의 재해석에 맞춰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일례로 2018년 봄·여름 시즌에 맞춰 진행한 경주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흔히 경주를 천년 고도라고 하잖아요? 전 세계적으로 봐도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는 많지 않아요. 하지만 경주에 대해 깊이 알고 이해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지역으로 더 들어가자’라는 생각으로 지역을 찾고, 로컬 푸드를 비롯한 해당 지역의 문화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솔직히 모든 지역을 처음부터 잘 아는 건 아니에요. 하동, 고창, 청송….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저희도 많은 것을 배우죠. 브랜드가 하는 의식 있는 행동이 좋아 브랜드를 소비하게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역도, 브랜드도, 소비자 의식도 함께 성장하는 거죠.

최근에는 제주도에 솟솟리버스라는 공간도 열었습니다. 청계산 인근에 문을 연 ‘솟솟 618’, 낙원상가의 ‘솟솟상회’에 이어 세 번째 공간이죠.

코오롱스포츠 자체로 보자면 중장년층 등산복 브랜드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었어요. 결국 젊은 세대도 찾는 브랜드로 포지셔닝해야 했는데 그러려면 먼저 환경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브랜드에 신속히 반영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자연이 정복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죠. 자연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자연이 남아 있어야 하잖아요? 제주도에 매장을 연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최근 해외로 나가는 길이 막히며 제주도로 걸음을 옮기는 관광객 수가 늘어났잖아요. 인파가 몰리면서 섬의 환경이 훼손되는 경우도 생기고요. 매장 인테리어를 바다 폐기물로 꾸민 건 이런 변화와 관련이 있어요. 방문객들이 제주의 환경문제를 자연스럽게 인식하면 좋겠다는 취지였어요. 재미있는 점은 제때 팔리지 못한 코오롱스포츠의 재고를 리디자인하면서 오름, 해녀 같은 제주만의 지역 콘텐츠를 활용하니 오히려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제주 에디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비나 캠핑용품 등의 렌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제주에서 특히 반응이 좋아요. 짧은 여행에 장비나 짐을 멀리서 가져오는 건 에너지 소비가 만만치 않잖아요. 렌털 역시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방법이죠.

이번 호 월간 〈디자인〉의 주제는 CMF입니다. 지속 가능성은 최근 재료 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죠.

솟솟리버스는 50주년을 맞는 코오롱스포츠에 첫 단추 같은 공간입니다. 지금도 제품의 25%가 친환경 소재로 구성되어 있지만, 앞으로 그 비중은 더 늘어날 거예요. 업사이클링과 친환경 소재로 만드니 더 말할 필요도 없죠. 그런데 이는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앞으로 디자인계 전반에 실천주의적 태도가 더 많이 요구될 거라고 봐요.

디자인을 대하는 디자이너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기겠네요.

만드는 과정 자체에 대해 디자이너가 더 신중히 고민해야 되는 시대가 됐어요. 예전에는 유행에 맞춰 최대한 많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중요했죠. 그런데 그것이 소비자의 손에 한번 들려보지도 못하고 소각되는 경우가 종종 생겨요. 뼈 아픈 말일 수도 있지만, 안 팔리는 디자인이 의도치 않게 지구를 아프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래코드나 에피그램 컬렉션을 잘 살펴보면 컬러나 스타일 수가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 거예요. 굳이 다 꺼내보지도 못할 디자인을 그렇게 많이 생산할 필요가 있나 싶었거든요. 래코드에서도 디자이너의 태도 변화를 엿볼 수 있어요. 저는 래코드 팀의 디자이너를 ‘닥터’라고 불러요.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해 죽은 옷에 새로운 삶을 제공하니까. 예전에 해외에서 강연한 적이 있었는데 행사를 주관한 분이 ‘래코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패션의 모든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말을 해줬어요. 하나를 디자인해도 오늘날의 디자이너는 제품을 둘러싼 순환 구조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솟솟리버스. 제주 탑동에 위치한 코오롱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친환경 업사이클 공간을 지향한다. 스키마타 건축 사무소의 나가사카 조가 디자인했는데 공간의 지향점에 맞게 마감재를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집기류 또한 제주도에서 수거한 해양 폐기물로 제작했다. 코오롱스포츠가 자체 제작한 ‘코오롱스포츠 리버스’ 상품으로 구성한 것도 특징이다.
지금까지 하신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언제나 일반적인 관습에서 비켜나 계시다는 생각이 드네요.

관행에서 벗어나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이야말로 디자이너를 비롯한 모든 창작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범주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여기에 이질적인 무언가, 새로운 무언가를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죠.

그렇다면 디렉터의 덕목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시장의 흐름을 읽는 능력, 그리고 소비자의 마음을 파악하는 능력. 둘 중 어느 하나만 갖고는 안 돼요. 패션은 실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바탕에 깔고 있는 산업입니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 영화, 책, 예술 등 자양분이 될 만한 것을 최대한 많이 섭취하려고 해요. 무엇보다 저는 패션이 실제 움직이는 현장을 자주 찾아요. 백화점은 물론이고 화제가 되는 편집매장, 팝업 등등이죠.

지금은 3개 브랜드를 관리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시리즈, 커스텀멜로우, 캠브리지멤버스 등 7개 브랜드를 총괄하신 것으로 압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네요.(웃음)

좋은 팀원들이 있으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웃음) 저는 브랜드마다 각기 다른 문제점을 읽고 이를 토대로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집중했던 것 같아요. 이익률이나 매출을 살펴보는 건 중요하지만 숫자만 봐서는 문제가 개선되지 않아요. 고객이 누구인지, 유통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브랜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브랜드를 관리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나요?

시리즈 이야기로 돌아가야 하는데, 사실 콘셉트 자체가 어려운 브랜드잖아요? 성장하고 인정받기까지 저나 팀원들 모두 고생깨나 했죠.(웃음) 하지만 차근차근 성장해 회사에서 상까지 받았어요. 그때 받은 상금으로 팀원들과 일본 나오시마로 여행을 갔습니다. 브랜드가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향유하고 추억할 수 있다면 정말 좋다고 생각했죠.

CSO로 활동을 시작하신 만큼 코오롱FnC의 ESG 프로젝트도 박차를 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올해 계획하고 있는 활동이 있나요?

현재는 리버스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소각 재고 상품뿐 아니라 1년 차, 2년 차 재고에 대한 새로운 쓰임을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코오롱FnC 브랜드만이 아니라 타 브랜드와의 협업도 적극 추진 중입니다. 첫 주자로 글로벌 캐주얼 브랜드와 힘을 합치고 있고요. 눈치챘겠지만 제주 솟솟리버스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환경에 주력해온 래코드는 올해 사회적 측면에 방점을 찍을 예정입니다. 싱글맘이 참여하는 수선 및 리폼 서비스를 운영하는 한편 이들과 함께 가벼운 액세서리나 키트도 생산할 계획입니다. 또 보호기관에서 생활하다 만 18세가 되어 자립해야 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단기 인턴십을 제공하려고 해요. 우리의 브랜드 활동이 곧 배려가 필요한 사회적 취약층을 돕고 상생하는 구조가 되도록 만드는 과정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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