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CSO

게임 산업은 디자인의 총아

리니지, 블레이드 & 소울, 길드워 등 수많은 히트작을 선보이며 한국 게임의 역사를 새로 써온 엔씨소프트. 게임은 그 자체로 종합 디자인 산업이다. 뛰어난 공학자이자 인공지능 전문가인 윤송이 엔씨소프트 사장은 게임이야말로 디자인의 총아라고 말한다.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CSO

기술과 디자인의 융합 자체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윤송이 엔씨소프트 사장은 개발자와 디자이너를 구분하지 않는다. 게임은 오래전부터 메타버스였으며 인공지능(AI), AR, VR, 클라우드 등의 신기술과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보편화되기 훨씬 전부터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게임이 가장 탐험가에 가까운 산업이라고 설명한다. 엔씨웨스트 홀딩스 대표와 엔씨문화재단 이사장을 겸직하는 윤송이 사장을 줌zoom으로 만났다.

*본 기사는 월간 〈디자인〉 2022년 3월호 기사를 재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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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엔씨소프트 부사장으로 합류한 이후 엔씨소프트 사장(CSO) 겸 엔씨웨스트 홀딩스 대표(CEO), 엔씨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KAIST 졸업 후 MIT에서 컴퓨터 신경과학 뇌·인지과학 전공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IT 분야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리더로 맥킨지앤컴퍼니, SK텔레콤 등을 거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유지해왔다.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의 ‘주목할 만한 세계 여성 기업인 50인’(2004),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차세대 지도자’(2006)에 이름을 올렸다.

‘엔씨소프트’라는 브랜드

즐겨 하는 게임이 궁금한데요.

얼마 전 확장 팩을 출시한 ‘길드워’를 해요.(웃음) 게임을 잘하는 건 아니고 즐기죠. 조금씩 다 해봐요. 게임 출시 전 점검하는 차원에서 하는데 업무의 일환이죠. 퍼즐 게임 ‘모뉴먼트 밸리’처럼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는 게임을 좋아합니다.

엔씨소프트 사장 겸 엔씨웨스트 홀딩스 대표, 엔씨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각각 어떤 역할인지 간단히 설명 부탁드려요.

최고전략책임자는 조직과 정책, 신규 사업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전략적 의사 결정을 하는 역할인데요. 북미 법인인 엔씨웨스트에서는 좀 더 실무적인 일을 많이 해요. 엔씨문화재단은 2012년에 엔씨소프트 창립 15주년을 맞아 지속적인 사회적 책임 활동을 위해 설립한 공익 목적의 비영리 재단입니다.

한 기업의 브랜딩은 리더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2019년 브랜드 전략 센터 설립을 직접 주도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계기와 목적으로 만들었나요?

계기나 목적이 따로 있진 않았고요. 브랜딩은 기업의 비전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구성원을 하나로 모으는 중요한 툴로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작업이죠. 또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해서 항상 신경 썼습니다. 엔씨소프트가 창립한 지 20년 된 2019년에 회사의 프로덕트 라인을 비롯해 그동안 추구했던 것들을 체계적으로 다잡아볼 때가 되었다고 판단해 전담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브랜드 전략 센터는 전사 차원의 아이덴티티 구축을 비롯해 디자인 관리,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등 기업 브랜딩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합니다.

2020년에는 펜타그램과 함께 한 CI 리뉴얼을 비롯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적극적으로 재정비하고 새로운 일을 많이 진행했습니다.

다양한 디자인 전문 회사를 만나보면서 우리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의도를 잘 반영해줄 수 있는지 살펴본 끝에 펜타그램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조앤 롤링과 일해본 경험이 있는 덕분인지 엔씨소프트의 세계관을 잘 이해한 파트너였어요. 뉴욕에서 직접 만나 브레인스토밍도 하고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CI 리뉴얼 외에 NC 다이노스 야구장의 사이니지를 비롯해 다양한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특히 디자이너 조규형과 함께 한 ‘엔씨 타입 플레이’는 게임 회사의 정체성까지 반영한 인상적인 프로젝트였어요.

엔씨소프트의 게임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타입 플레이’는 그림 서체를 이용해 흥미로운 이미지를 만들면서 놀 수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게임을 하나의 언어로 보자는 시도로, 디자이너 조규형과 함께 게임 속 요소를 재해석해 ‘타입 플레이’를 디자인하고 무료 배포했습니다. 로마자로 이루어진 ‘레귤러’와 캐릭터들의 액션을 가미한 ‘레벨업’ 두 가지 타입으로 선보였고요. 게임 콘텐츠로 새로운 놀이 경험을 제안하기 위해 기획한 ‘엔씨플레이’ 프로젝트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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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 타입 플레이. 게임 속 캐릭터를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그림 서체를 이용해 흥미로운 이미지를 만들면서 놀 수 있는 것이 특징. 게임을 하나의 언어로 보자는 엔씨소프트의 시도로, 디자이너 조규형과 함께 ‘타입 플레이’를 디자인하고 무료 배포했다. 로마자로 이루어진 레귤러와 캐릭터들의 액션을 가미한 레벨업 두 가지 타입이다. 엔씨 타입 플레이의 개발 스토리와 폰트를 활용한 온라인 전시회를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nctypeplay.com
메타버스와 관련된 계획은 없습니까?

메타버스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일 것 같은데, 게임은 그 자체로 이미 메타버스예요.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이미 20년 이상 메타버스를 해왔다고 봅니다. 게임을 통해 가상과 현실이 어떻게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지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메타버스를 한다기보다는 우리가 하던 일을 더욱 확장하면 된다고 봐요.

2021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참여해 엔씨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창의 활동 커뮤니티 ‘프로젝토리Pro-jectory’를 선보였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프로젝토리를 설명하려면 사내 어린이집 얘기부터 해야겠어요. 판교 사옥을 지으면서 본격적으로 어린이집을 고민했고 운영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아이들과 부모님, 선생님들의 니즈와 가치 등을 디자인 싱킹 측면에서 고민했어요. 예를 들면 운영 시간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가 아니라, 일하는 부모님의 편의를 고려해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앞뒤로 연장했습니다. 늘어난 선생님들의 업무 시간은 3교대로 해결했고요. 그리고 디자인 싱킹 관점에서 파악한 니즈와 사용자 행동을 기반으로 공간 디자인과 운영 프로그램 등을 기획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연령대인 만 1~5세 아이들에게 뇌가 급격한 성장이 이뤄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뇌는 자극을 통해 발달하는데 균형 잡힌 발달이 이뤄지려면 좋은 자극이 필요해요. 시각, 청각, 공간 감각 자극 모두 중요한데, 특히 공간 감각과 관련된 자극은 전두엽과 연관되어 있어요. 따라서 뉴로 사이언스 측면에서 접근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다양한 공간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천장 높이를 다르게 하고 교실마다 무대를 만들어 바닥의 높이 차를 두고, 방마다 피아노를 두는 등 공간 디자인에 많이 신경 썼어요. 단순히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놀이와 환경, 학습, 경험, 영양 공급을 통해 뇌 성장에 필요한 자극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집을 만들면서 교육과 창의성에 대한 생각이 심화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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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어린이집 웃는땅콩. 어린이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연령대인 만 1~5세 아이들에게 뇌가 급격한 성장이 이뤄지는 시기다. 웃는땅콩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놀이와 환경, 학습, 경험, 영양 공급을 통해 뇌 성장에 필요한 자극을 제공하는 곳이다. 웃는땅콩은 배를 잡고 행복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지은 이름이다. 공간 디자인 김주연 홍익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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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전시. 엔씨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창의 활동 커뮤니티 프로젝토리를 공개했다. 프로젝토리Projectory는 각자의 프로젝트project를 자유롭게 펼치는 실험실(laboratory)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자기 주도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다.
창의성을 고양시키는 프로젝토리의 배경에는 어린이집이 있었군요.

21세기를 인공지능의 시대라고 하면서 정작 아이들에게는 100년 전과 똑같은 지식 위주의 교육을 시키고 있어요. 인공지능이 지식을 서비스하게 되면 인간은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에 집중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졸업한 이후 창의성을 어떻게 고양시킬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가 프로젝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프로젝토리는 자기 주도적으로 원하는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를 모듈화한 프로젝토리 프로그램을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기간에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앞서 뇌가 성장하는 연령대의 아이들에게는 자극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프로젝토리는 창의성이 폭발하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학습을 경험하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곳이에요. 자신에게 내재된 크리에이티브 잠재력을 알려주는, 미래 인재를 키우는 데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미래 인재는 인간 특유의 창의성으로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게임은 새로운 기술의 테스트 베드

크리에이티브가 매우 중요한 조직입니다.

엔씨소프트는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비중이 50 대 50에 가까워요. 회사 전체가 디자인 마인드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완전히 구분하지 않고 모두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IT 미디어랩에서 공부하다 보니 디자인과 기술의 융합 자체가 자연스러워서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역할을 구분한다는 발상이 더 이상하게 여겨져요.

게임 관련 비즈니스에서 좋은 디자인, 크리에이티브는 무엇일까요?

게임의 인터랙션이나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데에서 디자인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요. 디자인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게임이야말로 디자인의 총아예요. 캐릭터, 그래픽, 사운드 디자인, UI 등을 통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멀티센서리 인풋multi-sensory input을 구현합니다. 게임 자체가 하나의 프로덕트로 산업 디자인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죠. 게임을 하다가 의도치 않은 창발적 행위가 발생하고 그것을 공유해서 커뮤니티가 다 같이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디자인 아닐까 싶어요.

인공지능 전문가로도 잘 알려졌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인공지능 같은 기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면 좋을지 조언 부탁드려요. 토마스 프레이 같은 미래학자는 2030년이 되면 자동화로 인해 20억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 예상하고, 인간만의 창의성이 더 중요해질 거라고 흔히 얘기하지만 구체적으로 와닿지가 않아요.

너무너무 많죠.(웃음)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또 다른 일자리가 생기겠죠. 포드 자동차가 나와 마부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걱정하는 것과 같아요. 인류의 진화론에 기반한 알고리즘에 관한 논의를 하다 보면 활용(exploitation)과 탐험(exploration) 두 가지 진화 방향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개미가 먹이를 찾는데, 앞으로 30cm만 가면 확실하게 먹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아주 효율적이죠. 그런데 먹이보다 더 혁신적인 것을 발견하려면 용기를 갖고 가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답사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탐험이에요. 그런데 탐험만 하다 보면 굶어 죽을 수 있고, 활용만 하면 언젠가는 자원이 고갈되겠죠. 인류와 조직이 균형 있게 진화하려면 활용과 탐험의 비율이 적절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사회에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 크리에이터의 역할은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보고 엉뚱한 짓도 하면서 획기적인 가능성을 발견하는 탐험자라고 생각해요.

스탠퍼드 대학교 인간 중심 AI 연구소(Human-Centered AI Institute) 자문 위원입니다. 인공지능과 데이터가 광범위하게 쓰이는 사회에서 야기될 수 있는 일들에 문제 의식을 가진 각계 인사들을 주축으로 운영하며 에릭 슈미트 전 구글 회장, 제리 양 야후 공동 창업자, 제프 딘 구글 AI 책임자 등이 자문 위원으로 활동한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진행 중인지 궁금합니다.

인간 중심 AI 연구소는 인공지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특히 사회적 불평등을 예방하기 위한 각종 보고서를 발표하고, 일자리를 비롯해 데이터 프라이버시 등에 관한 다양한 연구도 진행합니다. 인공지능의 장점이 많지만 문제는 우리 사회가 완벽하지 않다는 데 있어요. 사회 구성원들은 알게 모르게 많은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또 이런 편견은 사회 제도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지요. 인공지능은 우리 사회의 데이터를 코딩합니다. 즉 사회의 데이터를 모아서 학습하는데, 편견마저 그대로 받아들여 더욱 극대화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데 문제가 있어요. 인공지능의 가치판단에 대한 논의를 할 때마다 인간도 어쩌지 못하는 윤리와 도덕적 딜레마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이런 거예요. 내리막길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오른쪽에는 아이가 있고 왼쪽에는 할머니가 있을 때 어느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 하느냐는 질문이죠.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얼굴 인식에 관한 이슈가 도사리고 있어요. 인공지능은 백인 남자의 경우 98%의 확률로 정확하게 인식하는 데 반해 흑인 여자는 64%의 확률로 인식해요. 나머지 36%는 동물 혹은 다른 것으로 인지할 수 있죠. 자율 주행 자동차가 왼쪽에는 사람, 오른쪽에는 동물이 있다고 인식했을 때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지 않으면 인공지능은 편견을 더욱 증폭해서 학습하게 될 거예요.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관해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합니다. 엔씨문화재단에서도 대학의 연구를 지원하는 등 인공지능의 윤리 정립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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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 리뉴얼. 활자 모서리를 45도로 날카롭게 커팅한 커팅 에지cutting edge 디자인에는 마스터피스 개발을 목표로 하는 진지한 장인 정신을, 볼드한 서체에는 대담한 시도와 혁신 정신을 담았다. N과 C가 이음매 없이 연결된 형태는 새로운 세계로의 연결이라는 가치를 담고 있다. 디자인 펜타그램Pentagram
IT 분야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리더로 맥킨지앤컴퍼니, SK텔레콤 등을 거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유지해왔습니다. 2004년에는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의 ‘주목할 만한 세계 여성 기업인 50명’에 선정되었고, 2006년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차세대 지도자’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금과 같은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가진 리더의 위치에 올라서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짐작해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경험담이 있을 텐데요.

이 주제로 인터뷰 시간 따로 잡는 거죠?(웃음) 글쎄요, 저라고 특별히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건 아니에요. 우수한 여성 인재가 많지만 엄마가 되면 육아에 더 큰 부담을 지게 되는 건 사실입니다. 어린이집을 만들게 된 것도 그런 부분이 크게 작용했어요. 전 미국 국무부 장관 콘돌리자 라이스의 자서전을 보면 엄마가 ‘너는 흑인 여성이라 두 배로 더 잘해야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고 가르쳤대요. 그런데 시간은 제한된 자원이잖아요. 같은 일을 하는데 누군가는 10시간을 사용하지만, 여성이 육아 때문에 5시간밖에 투자하지 못한다면 불리하겠죠. 누구나 같은 조건에 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또 사회 전체가 그런 차이에 대한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리더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본인에게 일이란 무엇일까요?

일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창출한 가치의 혜택을 보기도 합니다. 내 일을 잘하면서 스스로를 키우지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일이죠.

그렇다면 사회에서 게임 산업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게임은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는 서양 속담이 있듯이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놀아요. 아이들은 노는 게 배우는 거예요. 놀면서 사회 적응력을 키우고 학습하는 거죠. 사람들은 새로운 재료가 나오면 일단 갖고 놀아보고 나서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요. 엔씨소프트가 발전해온 과정도 그래요. 1997년 설립 당시를 기억해보면 이메일 계정이 있는 사람도 드물었고, 넷스케이프도 출시 전이라 모자이크로 인터넷을 했어요. 하지만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이걸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놀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만들어본 게 온라인 게임이에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일단 갖고 놀면서 이것저것 해보고 기술의 한계를 테스트한 다음에 실제 산업에 적용하는 거죠. 아직 완전하지 않은 기술을 자율 주행 자동차에 쓸 수는 없잖아요.

게임이 새로운 기술의 테스트 베드라는 관점이 흥미롭습니다.

엔씨소프트가 인텔과 전략적 제휴를 한 적이 있어요. 286, 386, 이런 식으로 CPU가 향상될 때마다 이전 제품보다 더 빠른지 테스트하기 위해서 저희 게임을 돌려본 거죠. 엔씨소프트는 2005년부터 인공지능을 활용했습니다. 보스 몬스터들을 인공지능으로 만든 거예요. 또 저희는 지금처럼 클라우드가 각광받기 훨씬 오래전부터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보유하고 있었어요. 2000년 초에 많은 인터넷 기업이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못해 닷컴 버블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게임에서 파생된 비즈니스 모델이 다양한 디지털 기반 비즈니스에 활용되고 있어요. 게임에서 시작된 서브스크립션이나 프리투플레이 비즈니스 모델이 대표적이죠. 이렇게 게임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할 수 있어요. 메타버스, AR, VR, XR 등 새로운 기술이 나왔을 때 게임을 통해 활용 방법을 테스트해보고 이 과정에서 기술이 더욱 성숙해지면 다양한 분야로 퍼져나가는 패턴이 계속될 거라고 봅니다. 게임은 신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산업이고, 또 그게 바로 기술이 진화해온 방법이에요. 즉 게임은 새로운 길을 찾아 탐험을 지속하는, 가장 탐험가에 가까운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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