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트릭트 이상진 부사장
실패라는 양토 위에 내려앉은 디지털 초목
삼성 코엑스 LED 스크린 프로젝트 '웨이브'로 세계적 관심을 끈 몰입형 미디어 아트 플랫폼 '디스트릭트'. 브랜드가 실패와 시련을 딛고 더 단단하게 나아가는 방법에 관하여.
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서가 “가상이 기만을 한다면, 이 세상에 기만하지 않는 것도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한 지 어느덧 30여 년이 흘렀다. 그사이 가상과 현실을 가르던 낡은 이분법의 경계는 흐려졌고, 여기에는 디지털 디자이너들의 활약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디스트릭트는 디지털 디자인 분야를 선도적으로 이끌며 국내 몰입형 미디어 아트 시장을 개척해왔다. 2020년 코엑스 K-POP 스퀘어의 LED 스크린을 통해 선보인 ‘웨이브’로 세계적 관심을 끈 디스트릭트는 같은 해 아르떼뮤지엄 제주를 오픈하며 흥행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해외 진출까지 성공하며 지경을 넓혀가는 중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이 회사가 탄탄대로만 걸었다고 오해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아픈 실패를 맛봤고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버텼다. 그 수렁이 너무 깊어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것이란 잿빛 시선도 견뎌야 했다. 그러나 본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드는 법. 실패와 시련은 디스트릭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이상진 부사장은 회사의 그 모든 과정을 함께 겪고 지켜보았다. 그를 통해 과감하지만 신중하게, 도전적이지만 전략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딛는 디스트릭트의 행보를 살폈다.
디스트릭트의 성공적인 프로젝트
지난 4월 오픈한 아르떼뮤지엄 청두 이야기부터 해보죠. 디스트릭트의 중국 진출 배경이 궁금하네요.
2020년 애월읍에 오픈한 아르떼뮤지엄 제주를 시작으로 여수, 강릉을 잇달아 오픈하고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자연스레 해외로 눈길을 돌렸는데 지난가을 홍콩 K11에서 연 스페셜 전시관 ‘아르떼M’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중국 본토 진출 전 테스트 베드의 의미도 있었죠. 이후 중국과 미주 지역으로 동시에 진출을 꾀했는데 미국이 좀 더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 보니 중국에서 먼저 선을 보이게 됐네요.
현재까지 국내외 통틀어 총 5개의 전시관을 운영 중입니다. 각 공간에 대한 콘텐츠는 동일한가요?
아닙니다. 플라워, 가든 등 굵직한 콘셉트는 일부 공유하지만, 세부 작품과 공간 동선은 각기 다르게 구성했습니다. 예를 들어 여수의 키워드는 ‘오션’이었습니다. 해안 도시의 특성을 콘텐츠에 반영한 것이죠. 강릉을 기획할 때는 ‘밸리’를 테마로 관동팔경의 배경이 되는 아름다운 경관을 녹여내고자 했고요. 특히 아르떼뮤지엄의 가든 존은 전시관이 위치한 지역의 특징을 최대한 반영합니다.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전하는 다른 존과 구별해 사운드 역시 각 작품에 맞는 사운드를 별도 제작하죠. 아르떼뮤지엄 청두에서는 의도적으로 붉은색, 초록색, 금색 등 중국이 연상되는 색상을 활용했습니다. 현지 사업팀의 의견을 반영해 관람객의 심금을 울릴 음악도 삽입했어요. 일종의 맞춤화 전략인데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반응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감동받았다’는 리뷰도 많이 받았습니다.
제주도야 대표적인 관광지이니 그렇다 쳐도 여수나 강릉을 선택한 건 다소 의외였어요. 수도권에서 떨어져 있는 만큼 모객 면에선 다소 리스크가 있다고 보는데요.
몰입형 미디어 전시는 특성상 넓은 부지가 필요합니다. 국내에서 ‘빛의 벙커’로 알려진 미디어 아트 역시 최초 시작은 프랑스 남부의 버려진 채석장이었잖아요? 수도권에서 5000㎡에 달하는 공간을 단독으로 구하기는 힘들죠. 여수는 여수 엑스포가 열렸던 곳이기에 행사 후 활용하지 않는 장소가 많았습니다. 제주의 경우 공장을 개조한 공간이다 보니 넓은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고요. 물론 물리적 구현 조건만 따진 것은 아닙니다. 일례로 강릉의 경우 교통 발달로 수도권과 일일생활권 안에 들어왔다는 계산이 있었어요. 굳이 숙박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기고 돌아갈 수 있는 거리가 된 것이죠. 게다가 강원도는 제주에 버금가는 국내 관광지이고 여수도 가고 싶은 관광지에서 늘 상위권에 뽑히는 지역이라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디스트릭트는 아르떼뮤지엄 이전에도 여러 차례 몰입형 미디어 전시관을 시도했습니다. 라이브파크는 2012년 코리아디자인어워드 디지털 미디어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죠.
아르떼뮤지엄은 디스트릭트가 선보인 세 번째 공간 프로젝트입니다. 2011년에는 일산 킨텍스에 라이브파크를, 2016년에는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홀로그램 기술로 구현하는 플레이 케이팝을 오픈했죠. 화제성 면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지만, 흥행 면에서는 모두 실패를 맛봤죠. 특히 제주도 중문에 오픈한 플레이 케이팝의 경우 공교롭게도 오픈 시기가 메르스 사태와 맞물렸어요. 당시 케이팝의 글로벌 인기에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던 중국인들의 입국이 제한되면서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됐죠.
하지만 팬데믹 시국에 오픈한 아르떼뮤지엄 제주는 결과가 완전히 달랐어요.
진짜 ‘삼세번’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했습니다. 특정 군을 타기팅했던 이전 프로젝트의 실책을 반면교사 삼아 남녀노소 아우를 수 있는 콘텐츠에 주력했어요. 그 결과 ‘이터널 네이처’라는 콘셉트를 도출했습니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소재니까요. 저희가 가장 신경 쓴 것은 명확성이었어요. 복잡하게 의미를 꼬지 않고, 직관적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죠. 플라워, 비치, 스타 등 자연을 각 공간의 타이틀로 삼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총 11개 공간을 구현했습니다.
말 그대로 절치부심해 마련한 공간이네요. 그런데 11개 공간 중 명화를 주제로 한 공간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저희도 사실 그 부분에 고민이 많았어요. 제주와 여수에 마련한 가든 존에 서양 미술사의 작품들을 미디어 아트로 구현했는데 크게 보면 ‘이터널 네이처’라는 대주제에 정확하게 부합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비즈니스 면에서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화를 배치한 배경에는 나름의 리서치와 계산이 깔려 있었어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계속 테스트해봤는데 사람들의 추이를 보니 먼저 익숙한 명화에 반응하고, 그다음 관심사가 자연으로 옮겨가더군요.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오픈 전날 저희 모두 걱정이 극에 달했어요. ‘300명만 와줘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첫날 입장객 수를 집계해보니 800명이 넘더군요. 속으로 ‘됐다’ 싶었죠.(웃음) 지금은 하루에 많게는 6000~7000명이 찾는 공간이 됐습니다.
iF 디자인 어워드 골드를 비롯해 각종 어워드에서 수상하며 2020년을 디스트릭트의 해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같은 해 선보인 퍼블릭 미디어 아트 ‘웨이브’도 아르떼뮤지엄 제주가 초반 흥행을 이어가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처음부터 아르떼뮤지엄을 염두에 두고 선보인 프로젝트였나요?
두 프로젝트는 사실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2020년은 디스트릭트에 좋은 기운이 모인 해였나 봐요.(웃음) 내부적으로 OOH 마케팅이 새롭게 부상하리라 전망하고 있었습니다. 계속 시장과 산업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죠. 예전에는 빛 공해라는 인식이 강했고 규제도 따랐지만, LED 기술이 발달하면서 디지털 옥외 광고가 다시금 주목받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역시나 다양한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저희는 일반적인 광고로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어렵다고 생각해 공공 미디어 아트 차원에서 접근했습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를 최초 공개한 건 그해 6월이었는데 화제가 된 건 9월이었어요. 트위터를 타고 바이럴이 되면서 저희도 놀랄 정도의 반응이 왔죠. ‘웨이브’를 계기로 국제갤러리에서도 전시를 할 수 있었고요.
아르떼뮤지엄의 부지 및 콘텐츠 선정, ‘웨이브’의 탄생 배경까지 들어보니 다방면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과 직관에 의존하는 회사도 적지 않은데.
아무래도 그동안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경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뼈아픈 실책을 통해 배운 게 많아요. 회사에서 제가 맡고 있는 파트는 제작이지만, 콘텐츠 외의 요소도 두루 고민하죠. 앞서 말한 명화 콘텐츠처럼 디자이너로서 딜레마를 겪기도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아르떼뮤지엄 제주의 콘텐츠 중 명화가 가장 좋았다는 관람객도 적지 않아요. 디자이너의 생각이나 합리성도 중요하지만, 데이터나 현장 운영팀 및 마케팅팀의 피드백도 결코 무시할 수 없어요.
실패를 통해 배웠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제가 막 회사에 합류했을 때만 해도 여유가 좀 있었어요. 편했다는 뜻은 아니고 고사양의 장비나 프로그램을 구매하는 데 투자가 용이한 편이었죠. 하지만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남들보다 적은 리소스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 같아요. 투자 대비 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을 계속 고민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 같은 결과물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려는 태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소재를 단순화하면서도 작품의 디테일을 살리는 방향을 고민하다 보니 동시대 크리에이티브 신에서도 관심을 갖고 봐주는 것 같습니다.
몰입형 미디어 플랫폼 디스트릭트
처음 어떻게 디스트릭트에 합류하게 됐나요?
범박하게 나누자면 저는 2세대 웹 디자이너에 속할 거예요. 그때만 해도 웹 디자인을 포함한 디지털 분야가 지금처럼 전문화되지도, 세분화되지도 않았습니다. 저도 대학에서 디자인이 아닌 일본어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어요. 제 어떤 면에 가능성을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모 웹 에이전시로부터 취업 제안을 받으면서 UI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섰어요. 사실 저는 그때 개인 메일 주소도 없었거든요.(웃음)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그저 ‘와서 배우면 된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웃음) 아무튼 그렇게 3개월 정도 디자이너 일을 하다가 최은석 대표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습니다. 디스트릭트와의 인연의 시작이었죠. 당시 대표는 직접 책상에 그림을 그려가며 기획 방식부터 html이 무엇이고, 코딩을 어떻게 짜고, IA 정보 구조를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었어요.
디지털 네이티브로 태어난 Z세대 디자이너의 약진을 보면 감회가 새롭겠네요.(웃음)
돌아가신 최은석 대표가 제게 해주었던 말이 있어요. “언젠가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입찰하는 그날이 오는 게 너무 두렵다”고, “그래서 회사를 키우고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계속해나가야 한다”고 하셨죠. 당시만 해도 새파란 신입 디자이너라 와닿지 않았는데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젊은 디자이너들을 보면 같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래도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글쎄요. 아무튼 우리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나 제품을 파는 게 아니잖아요? 늘 새로운 결과물을 창조해내는데 그 자체가 태생적으로 소모적일 수밖에 없어요. 규모 확장에도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고. 물론 꼭 규모를 확장하는 게 답이 아닐 수는 있어요. 중요한 것은 언젠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성향상 프로젝트와 사업의 규모를 늘려가며 비즈니스를 하는 쪽이 맞는지, 아니면 뾰족하고 단단하게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아티스트가 될 것인지 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디스트릭트는 지난 10여 년간 많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웹사이트 디자인부터 모바일을 거쳐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관까지. 조직의 체질도 바꿔야 하고, 디자인 방식도 달라져야 했을 텐데 그에 따른 피로감은 없나요?
다행히 그 부분은 제 성격과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뭐든 쉽게 질리는 성격이라서 오히려 직장 생활을 오래 할 수 있을지 걱정했거든요. 디스트릭트는 질릴 틈을 주지 않는 회사라고 할까?(웃음) 적응이 될 만하면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를 종용했는데 그게 오히려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 같아요.
조직의 규모와 구조 역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죠. 아트 디렉터로서 디자인 조직을 이끄는 데 고민이 많겠어요.
맞습니다. 현재 현지 운영 스태프를 제외하면 50여 명이 근무하는데 여전히 작은 회사이지만 20명대였던 과거와 비교하면 스케일업을 했다고 볼 수 있죠. 과거에 없던 시공팀도 생겼고, 한 팀이었던 아트팀은 네 팀으로 확장됐어요. 회사 차원의 체계가 공고해지고 있는데 저는 디렉터로서 어떻게 팀원들을 효율적이면서 뾰족하게 관리할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에이스트릭트라는 미디어 아트 유닛을 만든 것도 그런 고민의 발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에이스트릭트는 일종의 컬렉티브라고 보면 됩니다. 프로젝트에 따라 유닛별로 투입되는 멤버가 달라지죠. VFX 신에선 시뮬레이션, 3D, 리터칭 등 제작 업무가 세분화되어 있는 게 보편적인데 저희는 작품 하나당 한두 명의 창작자가 모든 것을 소화합니다. 필요한 기술이 있으면 그때그때 배우면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구조죠. 그러다 보니 같은 파도를 만들어도 ‘나의 파도’를 제작할 수 있어요. 여러 인력이 파트를 나눠 만드는 영화 속 파도는 리얼하긴 해도 감성을 느끼기 힘들죠. 하지만 에이스트릭트의 파도에는 크리에이터가 생각하는 ‘나만의 리얼함’을 담을 수 있어요.
그런데 조직 차원에서 이처럼 별도의 유닛을 조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회사 운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선순환 구조를 잘 세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디스트릭트가 매체로서 기능하는 물리적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봐요. 콘텐츠를 제작해 보여줄 무대가 있기 때문에 갤러리 등 다른 공간에 의지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거죠. 그런 방식으로 꾸준히 작업을 하다 보면 제안이 들어와요. 소더비나 아트 바젤도 그렇게 제안받았죠. 미디어 아트 유닛으로 활동할 때 강점은 결과물에 대해 더 다양한 고민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에요.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우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고심하는 것이죠. 우리의 색깔을 더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요.
줄곧 다양한 시도와 실험에 관해 이야기 나눴지만, 의외로 디스트릭트가 VR이나 AR, 메타버스 등 최근 몇 년 사이 주목받은 기술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진 않아요.
물론 저희도 일련의 현상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현실로 옮길 때는 신중을 기해요. 우리가 진짜 잘할 수 있는 일인지, 정말 필요한 기술인지 살피고 최적의 시기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죠. 사실 지금 거론한 기술들은 과거에도 존재하던 것입니다. 이전에 비해 촬영이나 투사 방식 등이 고도화된 것뿐이죠. 중요한 것은 어느 시기에 대중이 반응하느냐입니다. 일례로 VR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압도적인 퀄리티의 콘텐츠가 아닌 이상 사용자가 감내할 불편함이 필요 이상으로 크다고 봐요.
꼭 필요한 기술인지 숙고한다는 뜻으로 들리네요.
맞습니다. 예를 들어 첨단 기술이 오히려 사람들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어요. 현란한 기술에 감탄할 수는 있지만, ‘이건 기술이야’라는 생각이 무의식에 침투하는 순간 집중할 수 없게 되죠. 아르떼뮤지엄에서 인터랙티브 요소를 최소화한 이유이기도 해요.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콘텐츠를 구현하는 게 몰입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신 저희는 좀 다른 방식의 인터랙션 기술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플라워 존의 ‘웨더’라고 이름 붙인 공간의 경우 외부의 날씨 데이터를 가져와 실내에서 구현합니다. 전시관 밖에 비가 오면 비 오는 모습을, 눈이 오면 눈 오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몰입형 미디어 기술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결국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건 현실과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잖아요? 저는 현재 디스트릭트가 추구하는 몰입형 미디어 기술이 익숙한 공간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좀 더 실감 나는 환경을 구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데 이건 디지털 기술만으로 충족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영상을 투사할 벽면이 쿨 그레이냐, 웜 그레이냐, 다크 그레이냐에 따라 감도가 달라지죠. 물리적 공간을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마지막으로 디스트릭트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인터뷰 서두에 말한 것처럼 아르떼뮤지엄의 글로벌 확장을 꾀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청두 외에 다른 도시 두어 곳을 살피고 있고, 미국에는 올해 안에 라스베이거스점을 오픈할 것 같아요. LA와 뉴욕도 가능성을 타진 중이고요. 처음부터 계획에 있었던 것은 아닌데 연이 닿아 두바이에서도 올해 안에 새로운 공간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이 밖에 제주도에 아이들을 위한 아르떼 키즈를 오픈하고, NFT 관련 프로젝트도 조만간 공개할 계획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