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의 새로운 랜드마크, 솔올미술관의 백색 건축 미학
백색 건축의 대가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 미학으로 완성한, 마이어 파트너스의 강릉 솔올미술관
'백색 건축의 대가', '백색 건축의 찬미자' 등으로 불리며 백색 건축의 한 획을 리처드 마이어의 작품이 강릉에 들어섰다. 건축물과 자연, 그리고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솔올미술관이다.
‘백색 건축의 대가’ ‘백색 건축의 찬미자’라 불리는 미국 현대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 그의 건축 미학을 승계한 건축사무소 ‘마이어 파트너스’는 지난 2월 14일에 개관한 강릉 솔올미술관의 설계 및 건축을 진행했다. 리처드 마이어는 미국을 대표하는 3세대 건축가로 ‘백색은 모든 자연색 중 가장 기본적인 색채이며 빛과 그림자의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2021년 마이어의 은퇴 소식이 전해진 후, 그의 건축사사무소 ‘리처드 마이어 앤 파트너스 아키텍츠Richard Meier & Partners Architects‘는 ‘마이어 파트너스Mier Partners‘로 사명을 리브랜딩 했다. 이후 그와 긴 시간 동고동락한 건축가들은 ‘마이어 파트너스’라는 새로운 이름 아래 백색 건축 디자인 유산을 승계하는 중이다.
강릉 솔올미술관은 마이어 파트너스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미술관 프로젝트다. 마이어의 건축 디자인 이념을 대입한 이곳은 하얀 콘크리트 외관, 투명한 유리, 건축적 산책을 제안하는 경사로 등 건축물과 자연, 그리고 예술이 한데 어우러지는 건축 작품으로 완성했다. 솔올미술관의 건축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리처드 마이어의 백색 건축 디자인을 톺아보고, 마이어 파트너스 연덕호 수석 디자이너와 나눈 인터뷰를 통해 솔올미술관 건축 스토리를 들여다 보았다.
리처드 마이어의 백색 건축 디자인
미국 현대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는 로버트 벤츄리Robert Charles Venturi, 케빈 로쉬Eamonn Kevin Roche, 프랭크 게리Frank Owen Gehry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제3세대 건축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매 건축마다 자연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자연축과 주변 조건으로부터의 대지축을 찾아 배치 계획에 반영해왔다. 또한 정확한 프로그램을 통한 공간 구성과 합리적인 건축 구조 체계, 인지도(인지하고 있는 땅의 경사)를 높인 위치에 입구 설정, 체계적인 수직 동선의 위치 설정, 공간을 에워싸는 윤곽 등을 통해 논리적 디자인을 표현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미국 LA의 <게티 센터Getty Center>, 미국 아틀란타 <하이 뮤지엄 The High Museum of Arts>, 독일 프랑크프루트의 <응용미술관Museum Applied Art> 등이 있다. 특히 그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와 알바 알토Alva Alto의 이념을 자신의 건축 작품에 대입시켜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실용적이면서도 명료하고 복합적이며, 고도로 세련되고, 절제되고, 위엄 있으면서도 편안한 시적인 공간을 실현해온 것이다.
마이어는 동시대 작가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자신의 작품 특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를 비판하는 이들은 르 코르뷔지에의 연장선에서만 마이어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마이어는 언제나 ‘나의 건축 스타일은 누구의 것을 계승하려기 보다 오히려 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왔다’고 주장해왔다. 그가 말하는 백색 건축 철학이란 ‘백색은 자연색 내에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색채로 백색 표면을 이용하면 딱딱한 벽과 부드러운 개구부, 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연출이 가능하다. 백색은 전통적으로 완벽함과 순수함 그리고 명료함의 상징이며, 가장 인상적인 색채이므로 나의 작업에서 가장 개성적인 특성을 내포한다’ 또한 ‘백색을 이용하면 시각적인 형태의 힘이 강화되고 건축 개념이 명백해지며, 추상적 공간이나 스케일 그리고 자연과의 조합과 관련하여 공간을 정의하고 질서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렇다면 마이어의 백색 건축이 절정에 달한 건축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마이어는 1960년대에 주거 건축을, 1970년대에는 공공 건축을 진행해오다 1980년대부터는 뮤지엄, 박물관 설계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게 된다. 건축가 인생의 정점이자 건축가에겐 꿈의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미술관 프로젝트를 맡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에 완성된 독일 프랑크푸르트 <응용미술관>과 미국 아틀란타 <하이뮤지엄>을 통해 그는 세계적 건축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는데, 1984년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세계적 권위를 가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신의 건축 이념을 논리정연한 사고로 정리하기 때문에 독자적인 건축 접근 방법은 초기 주택에서부터 공공 건축, 뮤지엄 건축에서부터 일관되게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백색을 통해 조화로운 공간과 실험으로 명확성을 추구했고, 밝고, 생기 있고, 독창적이며, 개성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흰색은 빛의 투영과 여러 가지 색이 가지고 있는 강렬한 시각 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색깔이 아니라 항상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색이다. 흰색은 결코 흰색이 아니며, 하늘과 구름, 태양과 달과 같이 거의 항상 빛에 의해 전달되고 변화된다.
프리츠커 수상소감에서 엿볼 수 있는 백색 건축을 대하는 마이어의 가치관
마이어 파트너스의 첫 미술관 프로젝트, 솔올미술관
Interview with 마이어 파트너스 수석 디자이너 연덕호 파트너
솔올미술관은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 디자인과 양식을 승계한 마이어 파트너스 수석 디자이너 연덕호 파트너가 총감독을 맡았다. 2021년 마이어의 은퇴와 동시에 30년의 세월을 함께 동고동락한 한국계 미국 건축가 연덕호 파트너가 수석 디자이너의 자리에 앉은 것. 마이어 파트너스의 이름으로 처음 공개되는 미술관 프로젝트 솔올미술관에는 마이어의 건축 언어를 녹여냈다. 여러 축에 따른 배치, 경사로의 사용, 진입부의 포디엄, 조형적으로 기하학적인 형태와 백색 건축까지. 공교롭게도 리처드 마이어의 한국 첫 프로젝트 씨마크 호텔을 선보인 강릉에서 4년의 기간을 거쳐 또 한 번 미술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솔올미술관 건축 총감독 연덕호 파트너 인터뷰를 통해 순수하고 미니멀한, 우아하면서도 서정적인 형태로 완성한 솔올미술관 건축 스토리를 들여다보자.
리처드 마이어 앤 파트너스 아키텍츠 시절부터 현 마이어 파트너스가 되기까지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건축사에서만 근무한 이력이 눈에 띕니다. 맨 처음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사무소에 합류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외교관이었던 탓에 유년 시절부터 스위스,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스페인, 케냐 등등 해외 곳곳에서 살았어요. 제 인생에 한국에 머물렀던 시간은 정말 짧은 편이에요. 코넬 대학에서 건축 학사를 하버드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고 유럽으로 건너가려던 차에 리처드 마이어 사무실이 굉장히 바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때 인연이 닿아 면접을 보러 갔고 그날로 이곳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소를 옮겨 다니지 않고 30년을 한곳에 있었다고 하면 모두들 깜짝 놀라곤 합니다.(웃음)
2015년에 오픈한 씨마크 호텔에 이어 다시 한번 강릉에서 프로젝트를 선보이게 된 소감은 어떤가요?
지금 여기 솔올미술관에서도 씨마크 호텔이 보이는데요. 한국에서 진행한 첫 프로젝트이면서 바다 바로 앞에 위치한 사이트였기 때문에 저희에겐 굉장히 중요한 의미의 건축 작품이었습니다. 당시 마이어 선생님이 총감독을 맡고 제가 프로젝트 건축가로 함께 했기 때문에 저에게도 의미가 깊은 작업물이에요. 그러한 강릉에서 또 한번 건축가들의 꿈과 같은 미술관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강릉에 세계적인 미술관을 짓기 위해 설계 초반부터 미술관 본연의 의미에 대해 많은 고민을 거쳐 완성했고, 많은 분들의 기억에 남는 미술관이 되었으면 해요.
마이어 파트너스가 솔올미술관 건축을 맡았다는 소식이 큰 화제였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아세아 종합 건설사현재 솔올 미술관이 위치한 교동7공원 조성사업을 담당하는 민간업체와 교동파크홀딩스로부터 강릉에 자리하게 될 미술관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어요. 기부 채납으로 미술관을 짓고 싶은데 기부 채납 조건 중 하나가 해외 건축가와 함께 진행하는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대략 어떠한 규모의 미술관인지 사전에 자료를 보내주셨고, 부지가 아름다워 저희가 직접 방문해 사이트를 살펴보고 왔어요. 최종적으로는 강릉이라는 도시에 열정을 갖고 있는 클라이언트 분들의 마인드를 인상적으로 보아 저희도 그 뜻에 함께 하기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솔올미술관은 2020년부터 설계에 들어가 4년 만에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작업에 들어가기 앞서 클라이언트가 강릉 공공미술관 건축에 관해 특별히 요청했던 점이 있었을까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아세아종합건설, 교동파크홀딩스 그리고 강릉시 관계자까지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강릉 시민을 위한 미술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완성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달받은 것 외에는 마이어 파트너스가 추구하는 건축 디자인을 이미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저희에게 모든 것을 맡겨주셨어요. 무엇보다 저희는 관람객들의 미술 관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건축물이 고요하면서 그 자체만으로 조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감동을 주는 동시에 상호작용을 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모든 건축 설계는 의도적이어야 해요. 무엇 하나 의미가 없는 것이 있어선 안되죠. 저희는 우아함과 절제됨 그리고 시적인 형태로 하나의 건축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솔올미술관 부지는 가파르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지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연환경 위로 건축물을 올리는 데 있어 가장 도전적인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이번 프로젝트가 쉬운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미술관이 위치한 부지가 해발 약 62m인데요. 교동7공원 내에서도 고도가 제일 높은 곳입니다. 부지의 가파르고 완만한 경사들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지형을 형성해 자연스럽게 언덕을 조성하고 있어요. 진입로에서부터 미술관까지 올라오는 길이 굉장히 가파르기 때문에 지금처럼 굽어진 출입로를 만들었고, 보행이 불편한 이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배치했어요. 무엇보다 교동 공원 전체의 풍경을 강화하고 보존하기 위해 공원 전체에 다양한 야외 공간, 정원, 숲 그리고 산책로 및 등산로를 만드는 것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부지가 중간지대에 위치한 탓에 도심에서는 미술관이 보이지 않습니다. 언덕을 올라야만 미술관의 파사드를 마주할 수 있는 시퀀스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데 이 또한 건축적 의도일까요?
진입로에서 메인 건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행로를 따라 걷다 보면 백색 미술관의 프리뷰가 서서히 드러나게끔 설계했습니다. 이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것이 아닌 관람객이 이 길을 올라오면서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하게끔 의도한 시퀀스이고, 그렇게 올라오면 미술관의 파사드를 만날 수 있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미술관에 진입하는 시퀀스가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이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부분 중 하나입니다.
솔올미술관은 건축물과 주변 자연, 사람이 어우러져 순환하는 구조로 의도하였습니다. 이는 리처드 마이어가 자연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건축 미학 특징과도 맞닿아있죠.
교동7공원의 전체 부지가 꽤나 큰 편인데 미술관 부지는 3221.76㎡으로 그리 넓은 편은 아니에요. 공원 내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저희 미술관으로 연결이 됩니다. 반대로 미술관에서 공원으로 나갈 수도 있고요. 또한 야외 예술 마당의 원형 계단, 야외와 2층을 연결해 주는 경사로가 있어 관람객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전시 관람을 즐길 수 있도록 했어요. 공원과 미술관이 이어지면서 자연과 예술과 건축이 하나가 되는 그런 경계선 없는 미술관을 상상하며 설계도면을 그렸습니다. 주변 공간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차경을 고려해 내부의 감동을 극대화하려 했고요.
자연과 예술의 연결뿐 아니라, 한국 전통 건축에서 영감을 얻은 구조로 완성되었다고요.
중정을 가운데에 두고 한옥이 둘러싸는 구조처럼, 미술관 안마당을 중심으로 세 개의 파빌리온이 둘러싸는 구조에요. 웅장한 볼륨감을 자랑하는 캔틸레버(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되어 있는 보)의 북쪽 윙, 전시실과 사무실이 위치한 큐브, 주 출입구와 카페가 위치한 중앙의 투명 파빌리온 크게 이 세 개로 구성되어 있어요. 건물과 조경 속에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시그니처 램프(경사로)는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머무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내부와 외부, 두 층을 연결하는 중요한 조각적 요소에요.
또 이 안마당 구조는 날씨가 포근해지는 봄, 여름이 오면 중앙마당에 예술 작품도 놓일 예정입니다. 그러면 전시장 밖에서도 작품을 관람할 수 있고 반대로 전시장 내부에서도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레이어링 구조라고도 할 수 있죠. 저희의 건축 스타일은 심플하지만 공간적으로는 굉장히 시적인 공간입니다.
건축가로서 사람들이 하나의 건축물을 경험하고 그 건축물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요소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마다 건축물을 바라보는 요소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의 경험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분명히 있을 텐데 가령, 다른 건축물들과는 색다른 진입로라던가 생소한 마감재, 디자인 등이 있겠죠. 마이어 파트너스는 특히 ‘빛’과 ‘외부와의 소통’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러한 탓에 미술관 어느 곳에서든 자연이 보이고 곳곳에 빛이 들어오게끔 설계해 놓았고요. 그중에서도 솔올 미술관의 경우 메인 전시장 한편에 시원하게 뚫린 천창과 빨간 벤치가 놓인 공간이 있어요. 작품을 관람하다 벤치에 앉아 공원의 나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둔 거죠. 미술관 곳곳에 쉼을 위해 마련한 공간 시퀀스가 저희가 의도한 요소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솔올미술관 프로젝트는 리처드 마이어가 은퇴하기 이전부터 설계에 착수한 건축물입니다. 솔올 미술관과 관련해 그가 남긴 코멘트가 있었다면요?
솔올미술관 작업 초기 선생님께 저희가 생각하는 디자인을 보여드리고 조언을 받았었어요. 이후에는 저와 팀 리더인 기에르모 무르시아Guillermo Murcia, 프로젝트 건축가 오샤론Sharon Oh이 함께 디자인해 완성한 프로젝트이고요. 한 명의 노력으로 완성된 것이 아닌 팀 전체가 노력해 선보인 첫 결과물인 만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희는 그동안 전 세계에 다양한 랜드마크를 디자인 해왔지만, 이제 강릉 솔올미술관 역시 그러한 곳 중 하나입니다. 그동안 저희가 진행한 다른 작업들에 비해 솔올미술관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에 속하지만 보다 많은 관람객들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는 건축물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