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재단 `라 베리에흐´의 네 번째 전시, 〈EME E DAMES MESSEUR〉
어느 개념 미술가의 매혹적이고 난해한 호기심의 캐비넷
벨기에 라 베리에흐에서 개념 미술가 '코엔라드 데도벨레르(Koenraad Dedobbeleer)'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타이틀은 ‘EME E DAMES MESSEUR’. 에르메스 재단과 큐레이터 조엘 리프(Joël Riff)의 네 번째 시리즈 전시다.
미스터리한 전시 제목, 그 정체는?
‘EME E DAMES MESSEUR’ 이라는 국적을 알 수 없는 문장을 접한 관객들은 당황스럽다. 어떻게 읽는지 모를 단어들의 조합. 연상되는 이미지도, 전시에 대한 추측도 불가능하다. 이 미스터리 한 제목은 벨기에 라 베리에흐(La Verrière)에서 열리는 개념 미술가 코엔라드 데도벨레르(Koenraad Dedobbeleer)의 개인전 타이틀이다.
에르메스 재단 라 베리에흐(La Verrière)는 ‘증강된 솔로(solos augmentés’)라는 테마로 큐레이터 조엘 리프(Joël Riff)와 함께 2023년부터 새로운 시리즈의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증강된 솔로(solos augmentés’)의 네 번째 전시로 선택된 작가는 ‘코엔라드 데도벨레르’다.
1975년 브뤼셀 근교의 할레(Halle)에서 태어난 그는 앤트워프와 암스테르담에서 교육을 받았고, 2019년부터 뒤셀도르프의 쿤스트아카데미(Kunstakademie)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큐레이터 및 세트 디자이너로 일하며 25년 동안 지속적으로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전시를 해온 그는 장소 및 방법에 대한 탐구를 담은 다소 실험적인 형식의 설치 작업을 보여주는 아티스트로 유명하다.
예술가보다 관찰자에 가까운 그의 시선과 시도는 이번 전시에서도 특유의 빛을 발한다. 가장 먼저 신비로운 제목에 대한 궁금증은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해답을 찾게 된다. 정교하게 계산된 세노그래피를 통해 작가의 개인적 삶에 관객들은 발을 들이게 되는 셈.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객들은 작가가 임의적으로 정해 놓은 동선에 따라 오브제와 그림들을 접하면서 이 곳이 매우 사적인 영역임을 눈치챈다.
그렇다. 이 곳은 작가의 주방이다! 라 베리에흐의 큐레이터 조엘 리프는 항상 아티스트의 작업실을 방문해 그들의 환경과 작업 언어를 직접 보면서 작품을 이해 하려 한다고 설명하는데, 코엔라드 데도벨레르의 작업실 또한 방문한 적 있는 그는 이번 전시장의 모습이 실제 그의 주방과 흡사하다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주방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걸까?
작가가 주방을 이야기하는 이유
어떤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공간을 뜻하는 ‘방(room)’이라는 단어의 관점에서 보면, 주방은 고대부터 존재했던 기능적으로 분화된 가장 오래된 공간이다. 현재는 가족의 공동 생활 영역이며 계층의 통합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전시장에서 발견되는 많은 오브제들이 실제 그의 주방에서 왔다. 그가 사용하는 백과사전의 일부도 있고, 아이가 만든 쿠키도 보인다.
작가는 해체와 조작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일상적인 사물과 모티프의 맥락적 변화와 변형을 꾀한다. 이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사물의 본질적 특성과 새로 생성된 기준의 틀 내에서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도록 유도하는 데 사전을 관객들과 공유하려는 이유는 요리하다(cook)라는 단어가 날조, 조작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전달하기 위해서다. 비 전문 화가를 의미하는 ‘썬데이 페인터(Sunday painter)’처럼 긍정적으로 들리지만 부정적 의미도 가지고 있는 사소한 자극이 되는 정보들이 의문의 토대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새로운 관점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리고 이 곳에 새롭게 창조된 오브제는 없다. 이미 생산된 것을 재생산한 오브제로만 구성된 전시는 이런 재생산이라는 행위를 통해 ‘무엇을 보는가’가 아닌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상적 사용에서 해방된 사물들
에르메스 매장 전체를 직선으로 통과해야 라 베리에흐 전시장이 나오는 특수한 구조는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전시 세노그래피에 반영시키는 작가에겐 흥미로운 환경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에르메스가 사용하는 컬러 팔레트와 정교한 디스플레이가 전시장으로 이어져 연결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작가는 또한 의도적으로 하나의 공간처럼 느껴지도록 전시장에서 외부로 통하는 문의 상단에 세모 패턴을 그려 브랜드 컬러를 칠해 출구 표시를 알렸고, 병풍 형태의 파티션, 상감세공으로 제작된 나무 프레임 등 완벽한 마감을 보여주는 공예품 수준의 설치작업으로 브랜드 정신 또한 반영하는 듯 했다. 이렇게 두 공간이 연결되고, 볼륨이 강조됐다.
코엔라드의 설치작업에는 18명 작가들의 작품이 발견된다. 20세기 유명 작가부터 벨기에 만화작가 클레어 브르테쉐(Claire Bretécher)의 만화, 현재 라 베리에흐 전시 도록에 글을 싣고 있는 젊은 작가 아멜리 루카-가리(Amélie Lucas-Gary)가 본인의 주방에서 그린 그림까지 다양하다. 일상이라는 평범함 속에 놓인 친숙해 보이지만 기능적 또는 미적인 오브제와 가구, 그림들은 새로운 관점과 다양한 해석으로 수많은 가능성을 창출한다. 그리고 명백히 일상적인 사물이 일상적인 사용에서 해방되어 재맥락화 과정을 통해 재평가되기도 할 것이다.
이런 작가의 탐구적 영역을 이해한 후 전시 타이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코엔라드가 집에서 나와 일주일에 한 번씩은 지나가는 길에서 마주하는 알파벳이 훼손된 간판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즉 이는 작가의 시야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무의미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부조리한 간판의 모습이 날것이 가진 아름다움처럼 매혹적으로 다가온 것. 마치 뒤샹의 ‘샘’이라는 타이틀의 변기를 보고 매혹적으로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