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 라 로즈 누아르 드롭테일

롤스로이스모터카(이하 롤스로이스)가 지난 8월 새로운 코치빌드 모델 ‘드롭테일Droptail’을 공개하고 첫 차인 ‘라 로즈 누아르La Rose Noire’를 선보였다. 롤스로이스는 영국 굿우드 본사에서 이례적으로 치른 사전 공개 행사에 월간 〈디자인〉을 초대했다.

롤스로이스 라 로즈 누아르 드롭테일

디자인, 클라이언트의 목소리가 되다


“우리는 자동차 회사가 아닙니다. 오트 쿠튀르 하우스죠.”
롤스로이스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엠마 베글리Emma Begley의 말에서 브랜드의 지향점이 명확히 드러났다. 달리는 예술품. 세기를 관통하는 롤스로이스의 정신이다. 그리고 지난 8월 공개한 코치빌드 모델 라 로즈 누아르는 이들의 말이 결코 과장된 수식이나 허언이 아님을 증명했다. 코치빌드는 고객이 콘셉트 기획부터 디자인, 엔지니어링 등 각 프로세스에 긴밀히 관여해 맞춤형 차량을 완성하는 롤스로이스의 브랜드 최상위 제작 방식. 이 중 드롭테일은 현대 롤스로이스 역사상 최초의 2도어 2인승 로드스터 모델로, 라 로즈 누아르는 총 4대의 드롭테일 커미션 중 첫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롤스로이스의 디자인 디렉터 앤더스 워밍Anders Warming은 비스포크 테일러링을 예로 들며 “비스포크란 결국 무언가를 대변하는(Bespoke is to be spoken for)” 것이라고 말했다. 롤스로이스 차는 운송 기기 이상의, 의뢰인의 생각과 가치, 취향과 관점을 압축해 드러내는 메시지이며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장인들은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롤스로이스는 이 메시지를 완성하기 위해 무려 4년여의 제작 기간을 투입했다. 중간 과정에서는 1:1로 완벽히 구현한 클레이 모델을 제작해 의뢰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세부 사항을 조율해나갔다.

장인 정신으로 구현한 흑장미


라 로즈 누아르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색상이다. 프랑스 남부 지역에 주로 식생하는 블랙 바카라 장미(이 꽃은 의뢰인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꽃으로도 알려졌다)에 착안해 품종 특유의 미묘하고 다채로운 색상을 차체 곳곳에 적용했다. 실제로 외장 색상은 어두울 때는 블랙에 가까워 보이지만, 햇빛을 받으면 붉은 색상을 띠며 진주 같은 광택이 난다. 각도에 따라 마치 외장 색상이 바뀌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블랙 바카라 장미의 변화무쌍한 색을 구현하기 위해 도색 작업을 150회에 걸쳐 반복한 결과다.

차량 내부에 적용한 목재에서도 동일한 특징이 확인된다. 흩날리는 장미 꽃잎을 표현하기 위해 롤스로이스의 디자이너와 장인들은 쪽모이 세공(parquetry)으로 차량에 1600여 개의 블랙 시커모어 나무 비니어 조각을 정교하게 세팅했다. 각기 다른 1070개의 대칭적 조각 패턴으로 배경을 이루고, 비대칭으로 배치한 533개의 붉은 조각으로 꽃잎을 형상화했다. 또한 목재의 색이 바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래커 처리 방식 개발에만 1년 이상을 소요했다고. 이 패턴은 리어 데크와 맞춤형 샴페인 체스트 측면까지 이어진다.

혁신 너머로 보이는 헤리티지


사실 이번 모델을 포함한 드롭테일 자체가 파격 일색이라 얼핏 전통의 계승보다 단절에 가까워 보인다. 2도어 2인승 로드스터 차체를 사용한 것, 롤스로이스의 상징과 같은 일명 판테온 그릴에 미묘한 변주를 준 것이 대표적이다. 그뿐인가. 다른 롤스로이스 모델에서 볼 수 없었던 짧은 오버행, 이와 대조적으로 길게 뻗은 리어 데크, 캔틸레버 모양의 팔걸이와 낮은 시트 포지션 등은 브랜드 고유의 중후함을 일정 부분 덜어내는 대신 날렵한 인상을 부여한 듯하다. 그럼에도 코치빌드 디자인 총괄 알렉스 이네스Alex Innes는 “전통과 현대성의 접목이 롤스로이스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라 로즈 누아르의 가장 큰 미덕을 혁신과 헤리티지의 조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말의 근거는 100여 년 전 자동차 제조 산업의 태동기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유럽에서는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롤링 섀시 rolling chassis에 보디를 만들어 올려 자동차를 제작하는 ‘보디 온 프레임’ 방식이 성행했다. 자동차는 왕족이나 귀족, 일부 부유층만 소유할 수 있는 귀중품이었고 그들은 자동차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했다. 달리 말하면 개인화가 정점에 달했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라 로즈 누아르를 비롯한 롤스로이스의 코치빌드 프로젝트는 이러한 문화적 유산을 복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Strive for perfection everything you do(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완벽을 갈망하라).” 본사 로비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헨리 로이스의 말은 드롭테일 모델을 통해 전승되고 있었다.

롤스로이스 디자인 디렉터
앤더스 워밍

“롤스로이스 창업자 헨리 로이스는 ‘존재하지 않으면 디자인하라’고 말했다. 고객의 상상력과 결부한 라 로즈 누아르 드롭테일은 그의 말을 충실하게 이행한 결과다. 이 모델은 롤스로이스 코치빌드가 구상한 가장 진보적인 형태의 표현이다. 고객의 비전과 브랜드가 보유한 최고의 디자이너들을 통해 롤스로이스 코치빌드의 미래를 시사하는 동시에 디자인 분야에서 업계 선두의 창의력을 보여주고자 했다.”

롤스로이스 코치빌드 디자인 총괄
알렉스 이네스

“코치빌드 모델은 롤링 섀시가 성행하던 1920년대의 2인승 차체에 주목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마름모꼴로 모던하게 표현한 후방부는 요트를 연상시키며, 캔틸래버로 좌석 사이가 부유하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해 민첩함을 표현했다. 블랙 바카라 장미의 풍부하고 복잡한 특징을 차량에 구현하기 위해 기존 현대 디자인의 콘셉트와 과거의 정교한 공예 기술을 결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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