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의 아이콘으로, 디자이너 김하늘
재밌고 ‘쿨’한 업사이클링 가구와 오브제들
CGV, 나이키, 현대백화점, 롤스로이스, 우리은행, 무신사 스튜디오 등 다양한 브랜드가 그와 협업한다.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협업을 통해 더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는 디자이너 김하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김하늘 디자이너의 작업실은 버려진 것들의 천국이다. 그는 재활용 소재를 사용해 가구와 오브제를 만든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4년 전, 폐마스크들을 모아 공업용 열풍기로 녹여 의자를 만들어 낸 이래로 그는 넘쳐나는 지구의 재활용 소재들을 탐구했다. 그렇게 1998년에 태어난 젊은 디자이너가 즐기며 만든 쿨 한 업사이클링 가구와 오브제는 미술계와 컬렉터는 물론 다양한 브랜드에서 주목받았다. “이후의 작업은 수월했어요. ‘저희가 이런 재료를 갖고 있어요. 같이 작업해 봅시다’ 하는 브랜드가 많았기 때문에 재료를 수급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죠. 오히려 어떻게 더 멋있게 할지 신경 썼어요.” 화장품 브랜드가 수거한 플라스틱 공병, 정부의 환경규제로 인해 생산이 중단돼 폐기될 예정이었던 백화점의 비닐 쇼핑백, 버려진 박스 수백 개가 그의 작품의 재료가 됐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으로 브랜드들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는 그는, 이 시대의 새로운 협업의 아이콘이 되어 가고 있다.
Interview
김하늘 디자이너
테이블 조명이 된 영화관 스크린
최근 작업부터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폐스크린으로 만든 무선 조명이었어요.
CGV와 협업한 작업이에요. 기업마다 골칫덩어리인 폐기물들이 있는데, 제가 주로 다루는 소재가 폐기물이다 보니 이전 작업을 보고 감사하게도 먼저 연락을 주세요. CGV에서는 영화관 스크린이 버려져요. 영화관을 폐점하거나 이전하는 경우, 아니면 퇴장하는 관객들의 손에 닿아 스크린이 손상된 경우 이를 폐기하는데, 그 폐스크린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셨다고 해요.
폐스크린을 처음 봤을 때 어떠셨어요? 사실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보았다고 해도 그걸 화면으로 인식하지 소재로 접근한 건 아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그게 폐소재의 재밌는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목재나 금속처럼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라 우연히 발생하는 이런 폐기물들은 영화를 아무리 많이 보러 간다고 해도 사실 잘 모르잖아요. 또 흥미로운 것은 가까이에서 스크린을 보니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는 거였어요. 스크린 뒤편에 큰 스피커가 있는데, 여기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로 인해 화면이 흔들리는 것을 막고 영화의 사운드를 더 잘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소리를 빛으로 치환해서, 스크린 구멍에서 빛이 나온다면 어떨까 하며 조명을 떠올렸죠.
조명에서 열이 발생할 텐데, 스크린이라는 소재 자체가 조명을 만들기에 적합했는지 궁금해요.
맞아요. 그것도 굉장히 중요했어요. 실제로 지금 CGV 프리미엄관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렇게 영화관에서 쓰여야 하다 보니 방염에 대해서도 논의했죠. 그런데 운이 좋기도 했고, 아귀가 잘 맞았던 게 이미 스크린에 방염 처리가 되어 있어요. 영화관이 화재에 민감한 장소이기 때문에 스크린에 방염 처리를 해서 설치한다고 해요. 조명을 하기로 마음먹고 그 뒤에 여러 가지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는데, 이 부분은 알아서 해결됐어요.
다른 과정은 수월했나요?
이전에 유선 조명은 만들어 봤는데, 무선 조명은 처음 도전하는 거라 쉽지 않았죠. 을지로부터 시작해 남양주 공장까지, 부품을 하나하나 수소문해 구하며 샘플을 만드는 식으로 힘들게 작업했어요. 1년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였어요.
그 이후 폐스크린으로 아르떼미데의 쇼군 테이블 램프를 오마주한 작업을 선보였어요.
그 작업은, 일단 재밌어서 했어요. 마스터피스를 오마주한 사례가 많은데, 평소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리서치를 하다가 쇼군 램프의 조명갓 부분의 알루미늄 타공판이 스크린과 시각적으로 비슷하게 느껴져서 이를 스크린으로 대체하고 감싸서 오마주했죠.
디자인과 업사이클링 소재 이야기
재활용 작업을 하다 보니 자꾸 소재에 집중하게 되는데, 디자인을 보면 심플하고 색감이 돋보여요. 디자인적으로 추구하는 게 있다면요?
봐주신 게 거의 맞아요. 저는 형태가 단순한 게 취향인 것 같아요. 굳이 나누자면 정형과 비정형 디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형된 형태 안에서 변주하는 걸 좋아해요. 비정형적인 스케치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내가 뭘 잘할 수 있을까’ 했을 때, 저는 심플한 디자인 안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담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대한 스토리에 힘을 주려고 해요.
공예품 같기도 한 ‘오가닉 시리즈’가 정말 예외적인 작업이었네요.
오가닉이 조금 비정형적이긴 하죠. 팬데믹 때 버려지는 마스크로 의자만 만들면서 다른 작업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오가닉은 마스크를 녹이며 우연히 발생하는 텍스처가 중심이 된 작업이고, 이것이 아마 비정형으로 만든 첫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 ‘번들 시리즈’ 같은 경우에도 마스크를 소재로 작업 방식을 다르게 가져 가면서 질감 표현에 차이를 주고자 했어요.
폐마스크에서 시작해 이제는 정말 다양한 폐기물을 소재로 작업하고 계세요. 작업 이전에 재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탐구하고 연구하시나요?
먼저 이론부터 접근할 때가 있고, 그냥 무작정 만지고 냄새를 맡는 것에서 출발할 때도 있어요. 그때그때 다른데, 어쨌든 이해하기 위해 일단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봐요. (태워 보기도 하고요?) 태워 보기도 하고 녹여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소재에 맞는 공법을 하나씩 추리는 거죠. 이렇게 하면 멋있겠다, 쿨 하겠다 싶은 게 있으면 그걸 가지고 또 이야기를 나누고요. 함께하는 팀원들이 있으니 이렇게 모아서 하나씩 버리고 챙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업실에 옥상이 필요한 거군요. 작업실이 실험실 같아요.
맞아요. 보고, 만지고, 데어 보기도 해야 ‘아, 이렇구나’ 하고 좀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나이키 협업 같은 경우에는 나이키의 TPU(Thermoplastic PolyUrethane) 소재의 특성을 먼저 공부했는데요. 충격을 흡수하는 것에서 복싱 글로브와 펀칭백을 떠올렸어요. 결과를 먼저 도출하고, 그걸 구현하기 위한 작업을 하기도 해요.
매번 새로운 소재가 미션처럼 주어지는데,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은 어떨지 궁금해요. 재밌겠다? 아니면 어떻게 하나 하며 우선 걱정부터 하나요?
완전 전자예요. 그러니까, 일단 너무 재밌으니까 이 일을 하는 건 당연하고요. 그리고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그런 촉박한 순간을 좋아해요. 예를 들어 재료가 전시 오픈 한 달 전에 도착했다고 하면, ‘한 달 안에 어떻게 하지?’ 하기보다 거기에서 희열을 느끼는 거죠. 하하
소재 자체가 영감이 되고 작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외에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요?
잘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으면 디자인 매거진만 봐서는 안 된다. 다른 분야에도 적용되는 말이겠죠?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이 말이 도움이 됐어요. 음악 업계나 뮤지션, 뮤직비디오가 자극이 되기도 해요. 혹시 ‘바밍타이거’라고 아세요? 진짜 제가 너무 좋아해요. 그리고 그냥 숫자가 영감이 될 때도 있어요. CGV 스크린 조명을 보면 사이즈가 다 배수예요. 기둥의 지름과 길이가 1대2이고, 갓 부분도 1대2예요. 그런 숫자놀이도 즐겨요.
‘스택 앤 스택’으로 주목받은 초기에는 100% 재활용만 사용했다고 들었어요. 그동안 작업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작업할 때도 그렇고 일상에서도 느꼈는데, 100%가 고집이더라고요. 고집이 좋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저는 좋지만은 않은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100%를 고집했어요. 사람들한테 잘 보이고 싶으니까. 내가 이 작품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열심히 했습니다’로 잘 되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100% 폐마스크만 녹여서 작업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래서 여러 인터뷰에서 그렇게 얘기했죠. 그 이후 100% 재활용 소재만 사용한 적은, 솔직하게 없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100%도 좋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폐소재를 더 멋있게 만들 수 있는 스케치가 있는데 거기에 기존 소재를 사용하는 게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사용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무인양품과 협업해 만든 스퀘어 체어는 등받이와 좌판은 폐마스크 판재이고, 나머지는 무인양품에서 사용하는 애쉬 나무예요. 애쉬 나무가 환경을 해치는 소재는 아니지만, 재활용 소재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하니 저 나무 프레임에 닿아 있는 폐마스크 판재가 더 멋있고 돋보였어요. 이런 결론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어요.
CGV에 있는 조명도 그렇고 알게 모르게 한국 곳곳에 디자이너님의 작품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찾아갈 수 있는 장소들을 몇 곳 소개해 주세요.
무인양품 롯데월드몰점 ‘오픈 무지’라는 공간에 앞서 말한 의자가 있고, 아모레퍼시픽 본사 2층에 ‘번들 시리즈’의 테이블과 스툴이 있어요. 많지는 않고, 정말 군데군데 있어요.(웃음)
협업의 아이콘, 한국의 버질 아블로를 꿈꾸며
‘환경’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도 재미있을 수 있을까 늘 생각하는데, 계속 재밌다고 얘기하세요. 그게 새롭게 느껴지고 덩달아 신이 나요. 보는 사람한테도 잘 전달되는 것 같고요.
너무 듣고 싶던 말이에요. 말씀주신 거에 공감하는 게, 왜냐하면 저도 환경에 관심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무엇보다 재미가 없고 멋이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이전의 저 같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원래 제가 그랬는데 이제 저는 생각이 바뀌었으니까요.
작업과 관련해 요즘 관심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비슷한 말이긴 한데, 계속 재밌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지난 3년 동안 협업하기에 바빠서 처음에 했던 것처럼 개인 작업을 한 번도 못했어요. 그래서 멋지고 재밌는 개인 작업을 해보려고 해요. 이미 약속된 것들은 당연히 열심히 재밌게 준비하고 있고요.
데뷔 후 3년 동안 계속 협업을 해온 것도 굉장한데요. 그동안 몇 곳과 협업을 했나요?
한 번도 세어 본 적은 없는데, 30군데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협업’이 디자이너님의 캐릭터 같아요. 혹시 이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버질 아블로 아세요? 협업의 아이콘이잖아요. 그분이 마흔 초반에 돌아가셨는데, 패션 디자이너이긴 하지만 크리에이터로서 존경받는 인물이었고, 협업 소식이 들리면 모두가 기대했어요. 그의 협업이 너무 대단하니까. 지금 제가 겪고 있는 과정들을 꾸준히 잘 해내서 10여 년 뒤 버질 아블로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 같은 멋진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언젠가 그렇게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다른 협업을 계속 준비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중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국립현대미술관과 협업해 친환경 디자인 상품을 개발하고 있어요. 미술관 숍에서 친환경 소재의 상품을 판매한지 1~2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은 펜과 달력 같은 소품만 다뤘다고 해요. 스툴, 조명, 트레이 같은 가구류를 함께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올가을에 릴리즈될 예정이에요.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