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오양스튜디오 양태오 대표
스포트라이트 너머의 진짜 양태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21세기를 살았던 한 명의 디자이너로서 인류를 위한 벽돌 역할을 하고 싶다.” 양태오 디자이너는 ‘스타’ 디자이너라는 수식어와 더불어 올해 11년째 스튜디오를 이끌며 여전히 전통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본질과 맥락을 강조하며, 시대의 유익을 말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너머로 보이는 ‘디자이너’ 양태오의 이야기를 들었다.
‘스타’ 디자이너. 양태오에게 으레 따라붙는 수식어다. 물론 이러한 시선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디자이너로서는 드물게 방송에 얼굴을 비치고 모 셀러브리티의 공간을 디자인한 게 알려지며 이름을 알린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양태오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올해 11년째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는 그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전통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본질과 맥락을 강조하며, 시대의 유익을 말한다. 계동의 한옥 사무실 한쪽에 놓인 장미셸 오토니엘의 모듈식 벽돌 작품을 가리키며 그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21세기를 살았던 한 명의 디자이너로서 인류를 위한 벽돌 역할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놀라울 정도로) 순수한 사명감을 조근조근 읊조리는 그의 모습에서 꽤 단단한 내공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너머로 보이는 ‘디자이너’ 양태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됐다.
동시에 30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태오양 스튜디오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지난 주말까지 각종 프리즈 관련 행사에 참여하고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네요. 이제 다시 서울 뷰티 트래블 위크 준비에 들어갑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감독을 맡게 되었죠. 이 밖에도 설악산에 오픈하는 한화리조트의 새로운 공간을 디렉팅하고 있고 뉴욕에서 꽃Cote이라는 한국식 스테이크 하우스 공간 프로젝트도 진행 중입니다. 미슐랭 1 스타를 받은 F&B 공간인데 데이비드 록웰의 록웰 그룹과 함께하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어요. 저희가 공간에 내러티브를 설계하고 데이비드 록웰이 디자인을 하는데 정말 꿈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죠. 뉴욕 외에 LA에서도 연말에 완공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요. 저희 스튜디오 인원은 7명밖에 안 되는데 보통 한 번에 25~30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꽤 벅찬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많은데 스튜디오 규모를 늘릴 생각은 안 해보았나요?
인원을 늘리는 건 항상 고민하는 이슈입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봐도 인원과 디자인 결과물의 수준이 꼭 정비례하지는 않더군요. 수가 많아지면 조직을 컨트롤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앗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 에너지 분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게다가 저희 스튜디오는 한국의 전통과 지역성에 대한 동시대적 표현을 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요. 그 취지에 공감하고 동참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버틸 수 있죠. 책도 정말 많이 읽어야 하고. 참, 넨도는 한 번에 프로젝트를 400개나 소화한다고 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 정말 게으르구나’ 싶었습니다.(웃음)
왜 이토록 다들 양태오라는 브랜드를 찾는 걸까요?
앞서 스튜디오에 명확한 목표가 있다고 말했는데 그 미션에 공감해주는 클라이언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 로컬리티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하면서 프로젝트가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또 한 가지 저희를 찾는 이유는 비전을 확장시켜드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머릿속에 정확히 그려지지 않던 그림을 가시화해주는 거죠. 그래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그래, 내가 생각했던 게 바로 저거야”라며 무릎을 치는 클라이언트도 많습니다. 때로 그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부분을 이야기해주고 역제안하기도 합니다.
고갈되지 않는 창의성의 비밀
클라이언트에게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제안하려면 디자이너 본인이 내면에 더 많은 것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양태오만의 비결이 있나요?
딱히 왕도가 있는 건 아니고 역시 독서가 최고의 자산 같습니다. 사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은 이후로 배움의 시간이 잘 주어지지 않잖아요. 이를 보완하는 가장 좋은 답이 책에 있다고 생각해요.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관련 서적을 한 장이라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시선 자체가 달라지죠. 때로는 프로젝트 중간에 읽고 체득한 것을 반영합니다. ‘내가 왜 이걸 생각 못 했지?’ ‘이걸 더 추가했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마지막까지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편입니다.
저 같은 잡독가 스타일은 아니군요.(웃음) 그럼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넨도의 온도〉를 읽었습니다. 오키 사토가 필립 스탁, 토머스 헤더윅, 재스퍼 모리슨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 17명을 인터뷰해 소개한 책이죠. 사실 책을 잡으면 그 자리에서 끝을 보는 타입이라 어제도 저녁 8시부터 읽기 시작해서 새벽 3시에 완독했어요. 저는 보통 목적을 갖고 독서를 하는 편입니다. 일과 상관없는 책도 자주 구매는 하는데 좀처럼 읽을 여유가 생기지 않네요. 그래도 ‘언젠가는’이라는 생각에 에세이나 픽션, 여행 서적도 한쪽에 쌓아둬요. 책이라는 게 원래 존재만으로 위안이 되기도 하잖아요.
귀국 전 약 1년간 마르셀 반더스의 스튜디오에서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것을 배웠나요?
마르셀 반더스가 굉장히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하는 것 같지만 결국 뿌리는 전통에 있습니다. 실제로 더치 디자인의 기수로 꼽히는 그의 작업 중 상당수가 전통적 오브제를 전위적으로 재해석한 것이죠. 그런 점이 제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당시 스튜디오에 출근한 제가 가장 먼저 한 것도 네덜란드 전역의 박물관과 갤러리, 그중에서도 앤티크 갤러리에서 보내주는 브로슈어를 스캔해 디지털 파일로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제작 동기와 방식, 시기와 장소, 소재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하면 마르셀 반더스가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했죠. 제가 참여한 종 모양 조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안다즈 암스테르담 호텔 등에 설치했는데 이 또한 네덜란드 목장에서 사용하던 종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주로 종교적인 목적으로 종을 사용하던 우리 문화와 달리 네덜란드에서 종은 좀 더 일상 깊숙이 스며든 오브제입니다.
그런데 마르셀 반더스 하면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이 떠오르는데 태오양스튜디오의 작업에선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네덜란드는 역사적으로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데 우리만큼 단절을 경험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여기에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 같은 교육기관이 있어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토양을 마련해주었죠. 한국은 상황이 다릅니다. 따라서 제 위치 역시 마르셀 반더스와 같을 수 없다고 봐요. 저의 역할은 다음 세대에 마르셀 반더스 같은 디자이너가 배출될 수 있도록 한국성을 아카이브하고 기반을 닦아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튜디오를 한옥에 마련하게 된 계기
귀국 후 바로 스튜디오를 오픈했습니다. 국내에 네트워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시작해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국내에서 아무런 검증이 되지 않았는데 누가 일을 주겠어요. 솔직히 귀국 후 일을 찾기 어려워 구직 활동도 잠깐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도 어느 정도 찼고 가방 끈도 긴 편이라 디자인 회사들이 채용을 부담스러워하더군요. 결국 첫 사무실을 제 방에 마련했어요. 월세 내기도 버거웠기 때문이죠.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전통 그리고 지역성의 재발견과 미래’를 스튜디오의 미션으로 정했을 때도 “한국적 디자인을 화두로 삼는다면 당연히 환경도 그렇게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한옥으로 이사 갈 것을 제안해주셨어요. 이런 전폭적인 지지가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부담도 많이 느낍니다. 엄연한 제 사업이고 부모님이 일종의 투자를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서 이 빚을 갚아야 한다는 부채 의식 같은 게 있죠. 한편으로 부모님의 기쁨과 보람이 제가 디자인을 열심히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스튜디오 초기에는 다양한 한옥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한옥의 가능성을 어떻게 처음 발견하게 됐나요?
오히려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했던 게 우리 문화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유의 미학을 꾸준히 발전시키는 그들의 모습에 늘 감동했으니까요. 이러한 감탄은 우리 안의 결핍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것을 잘 활용하고 있는지 되짚어보게 되었고 자연스레 귀국 후 그게 무엇인지 살피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으로서 처음 눈에 들어온 게 한옥이었던 것이고요. 그런데 저는 한옥이 서구 사회에서 아프리카 가면처럼 이질적이고 이국적인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만큼은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더 우리의 선비 문화에 집중하고 이른바 무미無味의 미학에 파고들었던 것 같습니다.
흥미롭네요. 많은 유학파 디자이너들이 서구 디자인을 그대로 흡수해 국내에 이식하거나 오리엔탈리즘을 전략적으로 부각했던 것과는 다른 행보입니다.
요즘처럼 하루면 지구 반대편에 가닿을 수 있는 시대에 그게 무슨 의미인지 묻고 싶어요. 그러한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에 제가 우리가 가진 것을 새롭게 탐색하고 재해석했을 때 호응해주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에는 한옥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죠. 한옥을 디자인 스튜디오로 이용하는 디자이너도 늘어났고요. 이게 하나의 문화로 보편화되고 있는 듯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가 발견하지 못한 한옥의 매력을 그분들이 찾아서 보여줄 수 있겠다 싶고요.
하지만 여전히 한옥을 현대화하는 데 보수적인 시각도 존재합니다.
처음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을 때 달린 댓글을 다 기억해요. ‘그건 한옥이 아니다’ ‘한옥을 망쳐놨다’…. 그런데 그건 한옥에 대한 얕은 지식과 편견 때문에 생긴 오해입니다. 물론 지방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아카이브의 가치가 높은 한옥도 있죠. 우리의 전통 그대로를 간직한 집은 분명 계승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서울 도심 복판에 지은 보급형 한옥은 상황이 달라요. 한 채 정도는 원형 그대로 남겨둘 필요가 있겠지만 나머지 한옥조차 개량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우리의 전통 주거를 유리관 안에 박제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없죠. 그렇게 된다면 결국 한옥 문화는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앉아 있는 이 한옥을 언제, 왜 지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개조할 수 있었어요. 21세기 현대인의 일상에 맞춰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받아주는 공간으로써 한옥을 제안하는 것 역시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위성이 없는 공간은 무용지물
태오양스튜디오는 한국적 공간 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디자이너로서 공간에 접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당위성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예쁜 공간도 당위성을 찾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하죠.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한솥도시락의 사옥 프로젝트입니다. 그런데 이 사옥이 청담동 명품거리에 들어서요. 처음 제안이 들어왔을 때 한솥 회장이 먼저 ‘당위성을 만들어달라’고 하셨어요. 클라이언트와 저의 가치관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죠.
저는 한솥의 가장 큰 자산이 오랜 시간 합리적인 가격대의 도시락을 만드는 바탕이 된 양질의 식재료라고 봤어요.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럭셔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청담동 인근의 사람들에게 좋은 식재료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고, 청담동이 상실한 지역과의 관계성을 전해주는 장소로 기획했습니다. 지역사회와 연계된 플리마켓이 열릴 수 있고, 한국의 공예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장을 마련하고 있어요. 이렇게 저는 당위성과 철학을 부여하는 게 공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브랜드를 론칭해 활동 중입니다. 특히 가구 브랜드 이스턴에디션이 눈길을 끌어요.
이스턴에디션은 조선 후기 미학인 무미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보통 다른 나라를 보면 제작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화려하고 기교적으로 변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조선이라는 나라는 기술이 발달했음에도 점점 장식을 덜어내고 본질에 집중했어요. 이러한 매력적인 미감을 부여하는 게 바로 이스턴에디션입니다. 내면이 있는 사물을 추구하는 것이죠. 최근에는 스스로 새로운 태스크를 하나 더 부여했어요. 바로 우리의 소재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통 소재를 활용하는 브랜드는 이미 존재하지만 많은 경우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사용합니다. 저희는 이런 오인과 오용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최근에는 도자 상품을 새롭게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토기부터 시작해 고려청자, 분청사기, 그리고 조선백자까지 흐름을 담은 세트입니다. 단순히 컵을 팔려는 게 아닙니다. 이 브랜드를 통해서 한국 도자기의 역사를 공유하려는 것이죠.
이스턴에디션의 경우 NFT 발행이 함께 이뤄져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과거에 천착하는 디자이너는 아니구나 싶기도 했죠.
많은 분들이 제가 과거에 초점을 맞춘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제 목표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만들고 더 나아가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산으로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죠.일례로 저는 전통적인 조형의 토기를 모두 3D 스캐닝해서 데이터베이스로 만듭니다. 그리고 3D 프린트 등 새로운 제조 기술을 더해 다른 미감을 실험하죠. 과거를 고스란히 복원하는 것과는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최근 예올북촌가에서 열린 〈우보만리: 순백을 향한 오랜 걸음〉전에도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전시 기획자로 참여해 한기덕 화각장에게 색을 칠하지 않을 것을 제안했다고 들었어요.
처음에는 많이 놀라고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더군요. 화각에 색을 칠하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고요. 그런데 저는 이 시점에서 화각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화각이라는 분야는 태생적으로 무언가에 붙여야 유지될 수 있습니다. 가구 표면을 장식할 때 사용하기 때문에 소목장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었죠. 저는 여기서 한계를 봤고 화각이라는 공예를 시대에 맞게 재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첫 단계로 소재의 물성을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색을 배제하고 대신 옻칠을 입혀 화각의 순수한 흰색에 풍부한 명도를 더했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를 보면 흑백영화임에도 풍성한 색감과 깊이가 느껴지잖아요. 화각도 오방색을 입히기 전 다양한 미색의 변주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입니다.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아내인 엘레나 포스터가 전시한 램프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구매했어요.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한기덕 장인 역시 만족스러워했죠.
말이 나온 김에 화제를 이어가볼게요. 현재 전시 기획자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본인에게 전시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저는 우리가 추구하는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그 결과물이 공간이 되었든, 가구나 소품이 되었든, 전시가 되었든 무방하다는 주의입니다. 전시를 기획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마치 두 세계가 섞이는 느낌이랄까? 저는 작가와 장인을 통해 세계를 넓히고 있고, 그들 역시 저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고 믿습니다. 지난해 공예트렌드페어 총감독을 맡았을 때도, 최근 호림박물관 전시장 연출을 기획하면서도 다시 한번 그것을 깨달았어요. 조선 시대 사람들은 풀 한 포기를 갖고도 깊이 있고 다양한 창조를 이뤄냈어요. 팬데믹 기간 동안 플랜테리어라는 말이 성행했는데 과연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요? 우리는 그 기간에 식물을 통해 무엇을 배웠죠? 조선 시대 사람들의 100분의 1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시를 통해 이러한 배움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최근 전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러한 관심이 한국의 디자인 신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갖게 됩니다.
저도 분명 그러한 기운을 체감하고 있어요. 한국 디자인의 달라진 위상과 시선에도 공감하고요. 아직 우리 디자이너가 콘텐츠로 전달하지 않은 부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나 음식, 요즘 들어 미술도 많이 알려진 것과 대조적입니다. 그런데 결국 관심이 높아질수록 원류를 따지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된다는 것이죠. 이렇게 봤을 때 우리가 우리의 것을 얼마나 제대로 바라보고 있고, 아름답게 보여주느냐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내실과 퍼포먼스를 함께 챙겨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 이러한 관심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