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과 2025년을 잇는 작품의 의미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창적이고 상징적인 환경 예술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부부를 기리며 2025년 9월 퐁네프 다리가 또 한 번의 변신을 한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Christo and Jeanne-Claude)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창적이고 상징적인 환경 예술가들이다. 이들을 가리켜 ‘대지 미술가’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평생에 걸쳐 작업했던 거대한 설치 미술 작업 덕분이다. 이들은 1960년대부터 건물이나 다리 같은 거대한 구조물을 포장하기 시작하며 그림, 조각, 건축의 전통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시도를 했다.


‘무언가를 감싼다’는 발상은 작은 물건에서는 비교적 간단해 보이지만, 그 규모가 커질수록 해결해야 할 문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들의 대부분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정부·국가적 차원의 협력이 요구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또한 기부, 후원을 거부하고 스스로 작품을 판매하여 자본을 마련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막대한 끈기와 인내심이 요구되는 작업이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예술 활동을 위해 기꺼이 고생을 자처했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은 공개될 때마다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 세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은 작품 중 하나는 1969년에 선보인 ‘포장된 해안(Wrapped Coast)’ 프로젝트였다. 이는 호주 시드니 근처 해안인 리틀 베이(Little Bay)에서 진행되었으며, 약 2.5km 길이에 26m 높이의 해안을 산업용 직물과 밧줄로 감싼 대규모 설치 예술 작품이었다. 자연환경과 인간의 창작물이 결합된 작품으로 자연과 인공물 사이의 경계를 재조명하며 그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 노력의 흔적이 엿보였다.

2005년에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선보인 ‘더 게이츠(The Gates)’는 도시 속에 있는 공원의 아름다움과 그 의미를 재조명한 작품이다. 샤프란 색의 직물 패널이 37km 길이의 산책로를 따라 설치되었으며, 16일 동안 전시된 후 철거되었다. 센트럴 파크의 유기적인 산책로와 도시의 격자 패턴을 반영하여 제작된 이 작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했다. 누군가는 산책로를 따라 흐르는 황금빛 강을 연상했으며, 또 누군가는 삭막한 도시 속에서 따스함을 느꼈다.

영혼의 동반자이자 든든한 예술적 동료였던 잔 클로드가 2009년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크리스토는 깊이 애도했다. 그러나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예술은 계속된다’라는 아내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나갔다. 아내 없이 크리스토가 처음으로 진행한 대규모 프로젝트 ‘플로팅 피어(The Floating Piers)’는 방문객으로 하여금 물 위를 걷는 듯한, 또는 고래의 등을 걷는 것 같은 초현실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최근에 선보인 작품으로는 2021년 9월에 선보인 ‘개선문, 포장(L’Arc de Triomphe, Wrapped)’이 있었다. 1961년에 구상한 작품이 60년 만에 완성된 것부터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한 작품이다. 2020년 크리스토가 사망하면서 두 사람 모두 작품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은 이들의 대담함에 또 한 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작품의 거대한 규모와 함께 거론된 것은 ‘친환경’이었다. 바다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단체인 팔리 포더 오션(Parley for the Ocean)과 협력했으며, 철거 후에는 2024년 파리 올림픽 및 패럴림픽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재활용되었다. 이렇듯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부터 이 부부는 작업과 철거 과정에서 늘 환경을 보호하려 애썼다. ‘둘러싸인 섬들(Surrounded Island)’을 완성하기 위해 섬 주변에 있는 쓰레기를 수거했고, ‘포장된 독일의회의사당(Wrapped Reichstag)’은 철거 후에 사용되었던 천을 판매하며 작품의 효율적인 활용을 이끌기도 했다.

두 사람은 이제 세상에 없지만, 이들이 구상했던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1977년에 구상한 마스터바(The Mastaba)가 아부다비에서 진행 중이다. 41만 개의 다양한 통으로 구성될 이 작품은 정부 승인이 내려지면 건설 기간은 최소 3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완성되면 세계에서 가장 큰 현대 조각품이 될 예정이다.

그와 더불어 이들의 이전 작품 또한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영감을 선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 있다. 1985년 선보인 ‘포장된 퐁네프(The Pont Neuf Wrapped)’이다. 말 그대로 300명의 전문가가 41,800제곱미터의 금빛 직물을 사용하여 퐁네프 다리를 감싼 작품이다.


1975년에 구상한 이 작품은 10년 동안의 협상과 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포장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색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한 모습에 논란은 눈 녹듯 사라지게 된다. 사람들은 작품을 보며 도시와 예술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수백 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에서 탈피한 작품이 가져온 파장은 전 세계를 넘어섰고,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회자되고 있다.

올해 9월에 다시 퐁네프 다리는 새로운 작품의 무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지난 연말,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재단은 9월 22일부터 2주간 몰입형 설치 작품이 진행될 계획을 밝혔다. 작가 부부를 기리며 설치될 작품을 기획하는 총감독은 프랑스 거리 예술가이자 사진작가인 ‘JR’이다.

중절모와 검정 선글라스가 트레이드마크인 이 작가는 클로드 부부처럼 거대한 규모의 작품을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콜라주와 트롱프뢰유* 기법을 통해 관람객과 행인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현실에서 신비로운 세계로 떠나게 만드는 작업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다.
*트롱프뢰유(Trompe l’oeil) : 프랑스어로 ‘눈을 속이다’라는 뜻으로 회화나 건축 등에서 실제처럼 보이도록 표현하는 기법을 일컫는다. 평면적인 표면에 3차원적인 착시 효과를 만들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림 속 대상이 실제 공간이나 물체인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JR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저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예술가 중 한 명입니다.”라며 “그들의 독립성, 공공 공간을 변화시키는 능력, 독특한 펀딩 모델은 항상 저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라며 작가 부부에 경의를 표했다. 이어 파리 한복판에서 진행될 프로젝트가 지금까지 작업한 것 중 가장 미친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선보인 영상과 사진을 통해서 앞으로 펼쳐질 작품의 모습을 어렴풋이 예측해 볼 수 있다. 거친 돌 질감이 다리를 휘감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를 통해 도시의 기반이 되는 돌과 돌이 채취되는 채석장을 떠올릴 수 있다. 그와 더불어 다리가 도시의 일부가 아닌, 자연 속에 있는 어느 동굴처럼 느껴질 것으로도 보인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가 의도했던 것처럼 이 작품 또한 오랜 시간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했던 도시의 구성 요소를 바꾸는 시도로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작품의 모습을 담은 석판화 한정판 50점을 판매하며 사람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JR의 퐁네프 프로젝트는 파리 시장의 적극적인 지지와 민간 후원자의 재정 지원을 받아 진행되고 있다. 재단에 따르면, 2025년은 이 작가 부부를 세계적으로 기념하는 특별한 해가 될 예정이다. 2월에는 뉴욕에서 더 게이츠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고, 9월에는 파리에서 JR이 꿈꿔온 기념비적인 예술 작품이 설치되며 부부를 기리는 행사의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특히 9월 말, 약 2주 동안 파리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건축, 예술, 그리고 역사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이 작품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유산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