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공예작가 인영혜, 울퉁불퉁한 덩어리의 정체를 말하다
손끝으로 전하는 울퉁불퉁한 위로
인영혜 작가는 손으로 원단을 일일이 엮어서 작품을 만든다. 그녀만의 작업 방식인 소잉 기법이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은 다소 독특한 외형을 지닌다. 무엇보다 울퉁불퉁한 덩어리들이 눈길을 끈다. 과연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태원에 자리한 파운드리 서울이 2024년 첫 전시로 섬유 공예 디자이너 겸 작가인 인영혜의 개인전을 바이파운드리에서 선보인다. 바이파운드리는 실험적인 매체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국내외 작가를 소개하는 파운드리 서울만의 플랫폼이다. 최강혁, 손상락, 장명식, 서신욱, 오세린, 한지형 등 고유의 아이디어와 독창적인 작업 방식으로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작가들을 소개해왔다. 2024년 첫 전시의 주인공이 된 인영혜 작가도 마찬가지. 섬유 조형을 전공한 그녀는 소잉 드로잉부터 오브제와 아트 퍼니처까지 다양한 형태로 섬유 작업을 선보여 왔다.
특히 직접 손으로 원단을 엮어 만드는 핸드소잉 기법은 작가만의 고유 시그니처이다. 이를 통해 표현된 작품의 울퉁불퉁한 표면 질감은 작품의 독특한 시각적 이미지를 이루는 동시에 복잡한 관계에 대한 작가의 경험과 고민을 관객에게 전하는 창구로 기능한다.
한편 오는 3월 22일부터 5월 11일까지 진행되는 전시 <무방비;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사람>에서 작가는 모든 작품을 설치 신작으로 꾸렸다. 전시 공간 전체를 점유하는 작품들을 통해서 관객에게 다채로운 감각의 경험을 전할 예정이다. 아울러 직접 어루만질 수 있는 작품들은 촉각적인 경험 속에서 작가의 개인적이고도 내밀한 위안을 전달한다. 이는 곧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상아색 벨뱃을 사용한 이유
전시장에 들어서면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으로부터 매달린 작품들의 풍경에 시선을 단번에 빼앗긴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든 작품은 상아색을 띤 벨벳 소재로 만들어졌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벨벳 원단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라고. 이전까지 작가는 주로 내구성이 좋고 잘 늘어나는 스판덱스 원단을 활용해 작품을 제작해왔다. 손으로 직접 원단을 엮는 작품 제작 방식에서 강도를 견디지 못한 원단이 쉽게 찢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늘어나는 소재가 아니더라도 작가는 자신의 작업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소재가 있다면 새로운 작품의 코드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 부드러운 소재의 벨벳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상아색 벨벳을 이용해 작품을 제작해 눈길을 끈다. 여기에는 시각적으로, 또 촉각적으로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깃들어 있다. 부담 없이 작품을 만지고, 밀어 보고, 안겨 보는 등 관객의 촉각적인 경험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또한 이전까지 팝(pop) 한 색상을 활용해 온 작품들과는 다르게 보다 차분하게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사와 왜곡 시리즈
이번 전시에서 소개한 작품은 크게 두 가지이다. ‘반사’와 ‘왜곡’. 작품 ‘반사’ 시리즈는 천장으로부터 공중에 매달려 있는 설치 작품이다. 각기 다른 형태와 높이로 불규칙하게 매달린 작품은 관객이 의식적으로 피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몸에 닿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여 있다. 이러한 작품 배치는 현대 사회의 복잡한 관계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무엇보다 작품은 관객이 직접 힘을 가해 밀어낼 수 있다. 작용과 반작용 물리 법칙에 따라 강하게 밀수록 강한 힘으로 돌아오는데 이는 타인을 향한 혹은 타인으로부터의 관계 속에서 받는 감정과 그 영향력의 인과관계를 이야기한다.
전시장 벽면에는 작품 ‘왜곡’ 시리즈가 자리한다. 마치 버섯이 피어난 것처럼 벽면에 피어있는 작품은 ‘반사’와는 반대의 개념이다. 작품 ‘반사’에서는 가하는 힘만큼 돌아오는 힘을 이야기했지만, ‘왜곡’에서는 가하는 힘을 흡수하는 ‘포용’에 대해 말한다. 작가가 선택한 벨벳 소재 특유의 부드러움은 가해진 힘을 흡수하며 천천히 안정적인 상태를 회복해 원래의 모양을 되찾는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관계 속에서 불거진 다양한 갈등과 상처를 이해와 수용으로 받아들이며 치유와 회복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신의 태도를 드러낸다.
울퉁불퉁한 덩어리의 정체
인영혜 작가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아트 퍼니처인 의자 시리즈는 기능과 매체의 틀 안에서 흥미로운 작업이었다면, 이번 전시에 소개한 설치 작품은 기능과 매체를 벗어난 자유로운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의 세계관이 이어진다면 이는 바로 작품의 기본 단위인 ‘울퉁불퉁한 덩어리’ 덕분이다.
작가는 이 덩어리를 얼굴이라고 소개한다. 의자 시리즈에서부터 ‘반사’와 ‘왜곡’ 시리즈까지 자신의 얼굴이라고 이야기하는 덩어리들이 모여 작품을 이룬다. 이는 자조적인 모습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앉고, 눕고, 기대고, 밀치고, 품어 안는 등 타인의 평안을 바라는 작가의 희생정신과 이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더욱이 작가는 이 덩어리를 필수 도구를 제외하면 자신의 손을 사용해서 제작했다. 노동집약적인 공예 작업 방식까지 더해져 울퉁불퉁한 덩어리는 형용하기 어려운 숭고함까지도 느껴진다. 현대 공예와 현대 미술을 오가는 작가의 고유한 세계가 궁금하다면 바이파운드리 전시를 찾아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