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HEE BONG KIM
반복적 자기 쇄신에 능한 디자이너
“S/O프로젝트가 달라진 것은 꼭 회사 내부의 변화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장의 변화 탓이 크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만 고집했다면 회사도 저도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새롭게 도전하고 몰입하고 배워가면서 성공과 실패를 오갔던 것이 지금의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김희봉 팀장은 벌써 13년째 S/O프로젝트(대표 나애노) 를 지키고 있다. 2005년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은 셈이다. 소위 몸값을 올리기 위해 이 회사 저 회사를 전전하는 것이 일반화된 요즘 경향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여기에는 통상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첫째는 안정감 있는 조직, 둘째는 끊임없는 자기 쇄신이다. 그는 눈 코 뜰 새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흘러 있었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S/O프로젝트가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되짚어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타이포그래피와 편집 디자인을 주 무기로 삼던 회사의 활동 영역이 이제 전방위로 확장됐다. SK텔레콤이 젊은 층을 타깃으로 선보인 LTE 브랜드 ‘ ’은 아예 네이밍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고 지난해까지 총 4년간 진행한 아우디 디자인 챌린지 포스터의 경우 3D 프린터나 형광등 같은 오브젝트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활용했다. 그때마다 몰랐던 프로그램을 배우거나 금형에 대해 따로 공부해야 했는데 이런 끝없는 자극과 실험, 공부가 계속되다 보니 어느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다.
함께했던 동료들 중에는 이런 회사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김희봉 팀장은 오히려 이런 변화무쌍함이 되레 슬럼프 없이 10여 년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한다. “S/O프로젝트가 달라진 것은 꼭 회사 내부의 변화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장의 변화 탓이 크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만 고집했다면 회사도 저도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새롭게 도전하고 몰입하고 배워가면서 성공과 실패를 오갔던 것이 지금의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책이나 글자 같은 평면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이제 다양한 입체물과 만나며 광범위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툴로 진화했다. 마이크로와 매크로, 평면과 입체, 유형과 무형 등 서로 상충하는 요소들을 결합시키는 것이 S/O프로젝트의 방법론인데 지난해 홍콩에서 열린 <플랫-폼: 서브젝트-오브젝트>전은 이런 회사의 색깔을 잘 보여줬다.
디렉터란 단순히 개인 아트워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아무리 디자인을 잘해도 크리에이티브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의견을 조율할 재간이 없으면 50점짜리 관리자일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조직이 자유롭고 중간 관리자가 회사 생활에 크게 터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팀원들과의 마찰만큼은 아트 디렉터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의견이 부딪칠 때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싸워야죠”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는 동료 디자이너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에 기인한다. “저는 단 한 번도 저보다 연차가 낮은 디자이너들을 후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시장에서 과연 연차가 의미가 있을까요?” 풀이하자면 선배 혹은 디렉터라는 이름으로 팀원들의 생각을 묵살시키는 대신 동등한 디자이너 입장에서 치열한 진검 승부를 펼치는 것이 곧 그의 조율 방식이라는 뜻이다. 결국 더 좋은 결과물을 산출해내기 위해 잘 싸우는 것 또한 디렉터의 몫이 아닐까? 역동적인 변화를 담담히 수행해내는 것. 인터뷰 내내 이것이 결국 회사의 역사와 결을 같이하는 김희봉 팀장의 롱런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저는 단 한 번도 저보다 연차가 낮은 디자이너들을 후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시장에서 과연 연차가 의미가 있을까요?”









조현 디렉터가 말하는 김희봉
“김희봉 이사는 S/O프로젝트의 시작을 함께 연 최초(最初)의 디자이너이자 현재진행형인 최고(最高, 最古)의 디자이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