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목으로 수집가를 사로잡은 가구 디자이너, 배세화
2011년 월간<디자인>이 주목한 디자이너 15
바람이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나무를 깎아나가는 작업에 질리지 않았으면 하는 거예요. 나무는 참 솔직한 재료입니다. 정성을 조금만 덜 들여도 바로 티가 나거든요.”

월간 <디자인>이 올해 자신 있게 소개하는 15명의 디자이너는 어느 날 아침 눈 떠보니 스타가 된 디자이너는 아니다. 지난해 케이블 TV 방송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슈퍼스타 K 2>에 ‘허각과 존박’만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매회 아쉽게 떨어진 탈락자에게서 성실하고 빛나는 재능을 발견한 사람도 많다. 월간 <디자인>이 올해 발견한 디자이너는 지금까지 혁혁한 업적을 남겼다기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디자인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야무진 포부를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미 유명하거나 유명해질 것 같아서가 아니라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월간 <디자인>이 취재할 수 있을 만큼 꾸준히 디자이너의 길을 갈 것 같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로서 사춘기를 지나 산전수전을 겪고 있는 이들을 소개한다.
“지금 하고 있는 나무를 깎아나가는 작업에 질리지 않았으면 한다”

가구 디자이너 배세화 씨를 처음 만난 건 2008년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였다. 드라마틱하게 휜나무 각재가 모여 만드는 긴장감 있는 형태의 의자는 단연 눈에 띄었다. 나무를 4~5시간 동안 찐 다음 10~20초 안에 형태를 잡아 고정해서 만드는 스팀 벤딩(steam bending) 방식을 활용한 디자인이었다. ‘배세화’ 하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스팀(steam)’ 시리즈의 시작이다. 관람객이 유독 득실대는 전시 부스에서 자신의 작업을 열심히 설명하던 그를 취재하는 동안 소위 ‘뜨겠구나’ 감이 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8년 8월 아사히카와 국제가구디자인공모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후 그는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인한마당, 밀라노디자인위크, 디자인 마이애미 등 국내외 전시에 ‘스팀’ 시리즈를 부지런히 선보이며 ‘곡목 가구’를 자신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로 만들었다. 전 세계를 떠돌며 디자인 전시마다 도장을 찍지만 막상 클라이언트를 찾지 못해 ‘전시 피로’를 느끼는 젊은 디자이너도 수두룩한데, 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쳐 보였다. “제가 운이 좋아서 전시를 할 때마다 한 작품씩 꼭 팔렸어요. 판매로 연결이 잘되는 디자이너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겸손하게도 모든 공을 운으로 돌렸다. 패기만만한 젊은 디자이너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어깨에 힘주지 않는 수더분한 사람이었다. “지난 3년 동안 ‘스팀’ 시리즈로 17번(제품에 이름이 아니라 숫자를 붙인다)까지 나왔지만, 실제 스케치는 수천 장을 했을 거예요. 이 스케치를 3D 프로그램으로 옮기고 완벽한 도면을 뽑아냅니다. 완벽한 도면이 아니면 작업이 불가능해요.”
그렇기에 의자 하나를 제작하는데도 한 달이 걸린다. “사람들이 아무리 좋아해줘도 가끔 과한 곡선이 들어간 작업도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요소를 하나씩 버리며 절제하는 중이에요.” 그는 지난해 8월 갤러리 서미의 전속 디자이너가 되었다. 자신의 작품이 얼마에 거래되는지조차 모르지만 판매나 미팅 같은 디자인 외적인 업무에 시간을 뺏기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6월에는 서울에서 일산으로 작업실도 옮겼다. 나무만 다룰 줄 알지 금속류는 까막눈이라 아예 철물 공장이 밀집한 성재 공단으로 들어온 것이다. 자발적으로 독거 디자이너 생활을 하고 있다. “바람이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나무를 깎아나가는 작업에 질리지 않았으면 하는 거예요. 나무는 참 솔직한 재료입니다. 정성을 조금만 덜 들여도 바로 티가 나거든요.” 현재 모든 작품은 디자인 마이애미 전시 때문에 ‘출장’ 간 상태다. 올해 디자인 마이애미 포스터의 주인공은 그의 작업이었다. 장인 정신과 목수의 자세, 그리고 디자이너의 감각까지 고루 갖춘 그가 앞으로 어떤 곡목 가구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