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동시대적인 술
이쁜꽃 양유미
가장 동시대적인 술이란 무엇일까? 충무로에 위치한 이쁜꽃은 맥주와 전통주를 오가며 매번 새로운 술맛을 블렌딩해내고 있다. 이쁜꽃의 액체는 1.8L짜리 됫병에 담긴 내추럴 와인 같기도 하고, 와인병에 담겨 있어 마셔보니 맥주 같기도 하며, 취하지 않고도 취하는 경험을 선사하기도 한다. 가장 동시대적인 주류 회사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쁜꽃은 술맛, 술 마시는 방법에 대해 독자적인 장르를 구축하고 있다.

‘동시대적’이라는 말은 전위적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고, 기존의 정의로는 완전한 설명에 다다르지 못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장 동시대적인 술이란 무엇일까? 충무로에 위치한 이쁜꽃은 맥주와 전통주를 오가며 매번 새로운 술맛을 블렌딩해내고 있다. 이쁜꽃의 액체는 1.8L짜리 됫병에 담긴 내추럴 와인 같기도 하고, 와인병에 담겨 있어 마셔보니 맥주 같기도 하며, 취하지 않고도 취하는 경험을 선사하기도 한다. 가장 동시대적인 주류 회사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쁜꽃은 술맛, 술 마시는 방법에 대해 독자적인 장르를 구축하고 있다. @official.epkkot

이쁜꽃의 술은 단연 눈에 띈다. 우선 로고의 표정부터 상당히 묘하다.
반가사유 미륵불상의 표정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미소 같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하고, 음흉한 것 같기도 하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이쁜꽃의 술은 이런 술이야!’’라고 직접 드러내기보다 경험하는 사람마다 다른 것을 느꼈으면 했다.
그동안 라벨 디자인도 직접 했다고 들었다. 특히 크래머리 브루어리와 만든 ‘Love’, ‘Faith’, ‘Fantasy’의 라벨은 한 번만 봐도 쉽게 기억에 남는다.
이쁜꽃의 라벨은 ‘너무 많이 말하지 않는 것’에 주안을 둔다. 마시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투영할 수 있게끔 여백을 남기는 것. 한국 술의 경우,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제 막 브랜딩과 디자인 개념을 받아들이다 보니 반드시 주목을 받겠다는 의지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빼곡히 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쁜꽃은 보는 사람이 ‘이게 뭘까?’ 궁금해지도록 여지를 남겨두고 싶다. 프로젝트마다 키 컬러를 정하는데 이쁜꽃과 크래머리의 라벨 컬러는 화려하면서 직설적인 핑크로 정했다. 이쁜꽃을 상징하는 레드와 크래머리를 상징하는 옐로를 양옆에 점으로 찍었다.
이전까지는 주로 외부 양조장과 협업했는데, 이쁜꽃 충무로점에 아예 양조 시설을 설치했다. 직접 양조장을 운영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
대외적으로는 이쁜꽃이라는 이름으로 된 술을 꾸준히 만들고 싶다는 것이 이유고, 개인적으로는 양조를 하며 얻는 쾌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쁜꽃 이전의 활동까지 합치면 양조장을 만드는 게 벌써 네 번째고, 5년간 직접 양조를 했다. 양조는 정말 매력적이고 한번 빠져들면 돌이킬 수 없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재료를 다듬고 찌고 술을 빚고 병입해서 뚜껑을 닫는 순간까지 모두 손으로 해낸다. 정말 고통스럽고 힘든데 내 손끝에서 술이 완성될 때 느끼는 희열이 있다.

주조사가 되리라는 걸 옛날부터 알았나?
아니다. 양조 교육기관을 따로 다니지 않았고 배울 기회도 없었다. 원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만화를 10년째 그리고 있었다. 주위에 꿀술을 만들던 친구가 있었는데 판매가 활발히 이뤄지지는 않았다. 직접 먹어봤더니 맛이 괜찮았고 이걸 좋아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마케팅과 브랜딩만 담당하려고 했지만 이름을 바꾸고, 디자인 시스템도 재정립하던 중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인 밍글스에 소개가 되고, 모 기업 부회장이 마시면서 크게 화제가 됐다. 소규모 양조장이었기 때문에 너무 바빠지자 담당 업무와 상관없이 생산 과정도 경험하게 됐다.
흥미롭다. 양조를 배우지 않고 술을 만들고, 디자이너로 일한 적 없지만 디자인을 한다.
그래서 디자인 툴에도 서투르고 감리 보는 시간도 엄청 걸린다.(웃음) 최근에 시시호시와 만든 ‘매일매일 좋은 날’의 라벨은 사키 작가가 일러스트를 그리고 신재호 디자이너가 레터링을 작업해줬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일인데, 이쁜꽃을 직접 운영하면서까지 계속 술을 만드는 이유가 있을까?
시대적 변화가 작용한 것 같다. 한국은 고도로 성장하는 시기를 통해 집단 중심의 음주 문화를 형성했다. 코로나19 이전의 설문조사를 보면 회식이나 직장 동료와 갖는 술자리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가족, 배우자, 친구와 함께하는 사적인 영역에서 술을 찾는 사람이 훨씬 많다. 난 새로운 술을 통해 세상에 이런 맛도 있다는 것을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술을 마시는 행위는 굉장히 단순하고 쉬운 것, 일상적이고 편안한 행위인데 이것을 통해 사람들한테 일정 부분 자유를 기여하고 싶다.
피터앤코와 논알코올 리큐어를 만들 때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취하지 않으면서 술이 주는 경험을 설계해야 했을 텐데.
‘술을 왜 먹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부터 다시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 취하지 않지만 취한 것 같은, 그러면서도 일반 음료와는 구별되는 경험이 필요했다. 이쁜꽃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만화에서도 이 얘기를 했는데, 술의 ‘어딘가 가고 싶은데 그곳이 어딘지 모르는 마음을 달래는 기능’을 재현하고 싶었다. 스포이트 공병 형태에 리큐어를 담아 응축된 몇 방울만으로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전환하는 느낌을 극적으로 표현해봤다. 제품에 막 뜨거운 반응이 있었던 건 아닌데 논알코올 음료에 대한 관심은 현재 주류업계의 새로운 흐름이니까 라연 같은 레스토랑 관계자들이 주목했던 것 같다.



듣다 보니 술 한 병에도 경험 디자인이 있다.
맛을 잘 느낄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해야 하니까. 구름아 양조장에서 일할 때 만든 ‘만남의 장소’는 막걸리였는데, 코르크로 마감했다. 사용자에게 한 번에 다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사인을 주는 거다. 쌀술은 산소와 얼마나 접하느냐에 따라 다이내믹하게 맛이 달라진다. 오래 두면 산미가 강해질 수도 있고, 더 오래 두면 오히려 밸런스가 맞아질 수도 있다. 사람들이 술을 한 번에 다 마시지 않고 두고두고 마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1.8L짜리 ‘황새’를 만들었나?
일본의 큰 술, 됫병으로 된 술은 2주에 걸쳐 먹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꼭 그런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마주’라는 술을 처음 접했을 때 이 술이라면 산소를 접하는 시간에 따라 생기는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쁜꽃의 방식대로 재해석해 ‘황새’를 만들고, 또 황새를 증류해서 불소곡주 ‘뱁새’도 만들었다. 황새가 내추럴 와인 같은 인상이라고 설명한다면 뱁새는 딱히 비유할 만한 술이 없다. 생강, 구절초 같은 부재료가 많이 들어갔고, 그냥 먹으면 이것저것 뭉쳐 있는 맛이다. 나는 종종 맛을 색깔처럼 느끼기도 하는데 온갖 색이 뭉쳐진 검정의 상태에서 뱁새를 탄산수에 타 먹으면 색의 스펙트럼이 활짝 열린다. 소주로 하이볼을 만들어 먹는 것도 새롭지 않나?
뱁새뿐 아니라 이쁜꽃의 술은 대체로 기성 주류에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에 고객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쁜꽃의 술이 어떤 범주에 속하는 것 같느냐고 질문했다. 그런데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이쁜꽃의 술은 그냥 이쁜꽃의 술’이라고 대답하더라. 이쁜꽃은 지금까지 업계에서 ‘쟤넨 뭐 하는 애들이지?’ 하는 인상이었는데(웃음),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은 것 같아 기쁘다.
이쁜꽃을 운영하며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술을 사 간 사람들이 가족과 마셨다고 말해줄 때. 친밀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술은 보편적인 영역에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술을 잘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이쁜꽃의 술을 함께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짜릿하다. 또 다른 보람은 새로운 액체의 완성에서 느낀다. 술을 기획하고 구상하는 일은 사실 내게 공상의 영역이다. 그런데 이리저리 하다 보면 실재하는 병에 담겨 완성되어 있다. 매번 신기하다.
앞으로 이쁜꽃의 목표는?
이쁜꽃의 이름으로 나오는 술에 집중하고 싶다. 이쁜꽃의 베이스캠프는 강원도인데, 강원도에서만 자라는 어떤 원료 때문이다. 아직은 뭔지 말할 수 없지만 아무도 그걸 가지고 술을 만들지 않았다. 한국의 주류 시장은 여전히 소주와 맥주로 양분되어 있고 전통주와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 한 나라에서 메인인 주류가 딱 두 가지라는 게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술을 만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