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대화, 북촌

2015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 - 공간 디자인 부문 수상작

“시각을 차단한 채 일상을 체험하는 전시지만, 그렇다고 어둠 속의 대화가 장애 체험 시설은 아닙니다. 밝음과 어둠 사이에 있는 무언가를 성찰하는 프로그램이죠. 우리는 시각 외의 감각, 즉 촉각이나 청각을 건축 안에 구현했습니다.”

어둠 속의 대화, 북촌

1983년 월간 <디자인>이 선정한 ‘올해의 디자이너’를 모태로 출발한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는 한국 디자인계의 성장을 도모하고 격려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아이덴티티, 제품, 리빙, 그래픽, 디지털 미디어, 공간 등 6개 부문에 걸쳐 진행되는 이 어워드는 각 전문가들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수상자가 결정된다. 특히 좋은 디자인은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의 탄탄한 신뢰 안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2011년부터는 클라이언트에게도 함께 시상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약 1년간 진행한 디자인 프로젝트 중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받은 수상작들을 소개한다.


클라이언트 더작은재단(대표 오승환) 
디자인 와이즈 건축(대표 전숙희, 장영철), www.wisearchitecture.com 
디자이너 (왼쪽부터)전숙희, 장영철 
발표 시기 2014년 12월 

올해 공간 디자인 부문에선 젊은 건축 스튜디오의 약진이 돋보였다. 뉴욕 MoMA-PS1과 현대카드,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2015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선정작인 SoA의 지붕 감각, 공일스튜디오의 코워킹 스페이스 카우앤독 등이 B&A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의 신개념 예식장 드레스 가든, 책가도를 모티브로 한 스튜디오 베이스의 꽃피는 봄이 오면 오피스 디자인과 함께 최종 후보에 올라 막판까지 각축전을 벌였고 수상은 와이즈 건축의 ‘어둠 속의 대화, 북촌’에 돌아갔다. 심사위원들은 프로젝트가 지닌 사회적 의미와 여러 제약 조건을 역이용해 건축의 아이덴티티로 승화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감각을 확장시키는 건축

“’어둠 속의 대화’는 좋은 클라이언트가 절반을 완성했죠.” 와이즈 건축 장영철 소장은 수상 소감을 묻자 이렇게 운을 뗐다. 2년에 가까운 프로젝트 기간 동안 변함없는 신뢰를 보내준 더작은재단 덕분에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 이 건물은 글로벌 체험 프로그램 ‘어둠 속의 대화’ 를 위한 상설 전시장으로 전시 체험 암실과 레스토랑, 사무 공간 등을 갖추었다. 건축주의 든든한 지원 사격 아래 와이즈 건축이 집중한 것은 바로 감각의 확장. “시각을 차단한 채 일상을 체험하는 전시지만, 그렇다고 어둠 속의 대화가 장애 체험 시설은 아닙니다. 밝음과 어둠 사이에 있는 무언가를 성찰하는 프로그램이죠. 우리는 시각 외의 감각, 즉 촉각이나 청각을 건축 안에 구현했습니다.” 대나무 발에서 모티브를 얻은 스크린은 이런 감각의 확장을 잘 보여준다. 이는 북촌의 지역적 특징을 반영하는 동시에 빛을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또 시선을 적절히 차단하는 블라인드 기능도 있어 전시 성격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며 비바람 등 날씨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청각을 자극한다. 와이즈 건축은 이 스크린을 만들기 위해 워터젯으로 자른 발 가닥을 아세탈 (acetal) 구슬로 한 땀씩 꿰고 엮어 한 층에 9채씩 3개 층에 총 27채를 엇갈려 걸었다.

이런 노력 덕택이었을까? ‘어둠 속의 대화’는 2015 올해의 서울시 건축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어둠 속의 대화는 그 어떤 건축보다 많은 난제를 안고 있었다. 특히 건물 터 옆구리 부분을 비집고 들어온 단단한 경질 암반이 계륵이었다. 그러나 와이즈 건축은 이런 제약들을 오히려 독창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재료로 승화시켰다. 암반을 드러내지 않고 계단 형태를 활용해 건축과 주변 환경의 조화를 꾀한 것. 암반을 끼고 도는 계단은 위로 갈수록 좁아지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넓어지는 형태여서 마치 계곡 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건물의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실 어둠 속의 대화의 진가는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있다. 특히 시각장애인이 함께 사용하는 건물인 만큼 이들의 행동 패턴을 면밀히 관찰하고 반영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앞서 언급한 외부 계단의 경우 양 끝 층계의 소재를 달리했는데, 이는 시각장애인이 발에서 느껴지는 촉감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도록 한 작은 배려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헬렌 켈러의 명언이 떠오르는 대목.

와이즈 건축은 현 지점에 대한 고민도 솔직히 털어놨다. “건축 스튜디오로서 정체성 및 소재에 대한 철학은 앞으로도 지켜나가겠지만 지금까지 추구하던 스몰니스(smallness)나 일상성에 대한 본질적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 같아요.” 이제 자신들을 ‘젊은 건축가’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이런 고뇌와 성찰이야말로 와이즈 건축의 젊음을 유지해주는 동력 아닐까.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50호(2015.12)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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