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왕의 서고,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실
공간 디자인의 핵심은 위계, 균형, 대칭, 조화다. 조선 시대 ‘반차도’에 착안해 행렬의 질서 감각과 운율감을 공간에 불어넣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외규장각 의궤를 보관하는 전시실을 공개했다. 외규장각 의궤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무단 반출했던 조선 왕실의 기록물이다. 100여 년이 지난 뒤 프랑스에서 그 존재를 확인하고, 고 박병선 박사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노력 끝에 2011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프랑스 정부와의 협약에 따라 영구 대여 형식으로 귀환했는데 수많은 표지가 해지고 찢겨 가슴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은 두 차례 특별전을 개최하고 7권의 학술 총서를 발간하며 전시와 연구에 힘썼다. 그러나 외규장각 의궤에 담긴 복합적 의미를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구심점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결국 2층 서화관 내에 전용 전시실을 조성했다. 실제 외규장각의 면적과 유사한 규모로 마치 왕의 서고에 달빛이 스며드는 듯한 느낌으로 전시실을 계획했다.




설계는 텍토닉스랩 건축사사무소가 맡았다. 공간 디자인의 핵심은 위계, 균형, 대칭, 조화다. 국가 의례에 참여하는 문무백관과 각종 기물의 세세한 위치를 기록한 조선 시대 ‘반차도’에 착안해 행렬의 질서 감각과 운율감을 공간에 불어넣었다. 특히 232권의 의궤 표지를 좌우로 도열시킨 공간은 관람 동선의 진행 방향에 따라 점점 좁아지는데 이렇듯 긴장감이 이어지는 연출은 외규장각의 장소성을 담으면서도 지난 역사의 무게를 반추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다. 상설 전시실에서는 왕이 보던 어람용 의궤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본 의궤를 언제든 관람할 수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은 한 번에 8권씩, 1년에 4번 의궤를 교체해 연간 32권의 의궤를 공개할 예정이다. 진열장에 들어간 의궤는 접근이 제한적이기에 직접 넘겨볼 수 있는 디지털 책을 만들었다. 첫 상설전에서는 병자호란 이후 종묘의 신주를 새로 만들고 고친 일을 기록한 〈종묘수리도감의궤〉, 장렬왕후에게 존호를 올릴 때의 의식 절차를 기록한 〈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 등을 전시하고 있다.
